영화평 〈컴플리트 언노운〉:
다시, 세차고 세찬 비가 내릴 것 같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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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반은 냉전과 핵전쟁 위기 속에서 흑인 평등권 운동이 부상하고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시작하던 시기다.
노벨문학상(2016)을 수상한 가수 밥 딜런은 저항과 전쟁의 시대 1960년대가 낳은 혁신적인 음악가들 중 한 명이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1961년 1월부터 1965년 7월까지 19세에서 24세까지 가수로서 그의 초기 삶을 다룬 일종의 전기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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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변주와 가상을 빼면, 영화상의 시간 순서는 그의 실제 연대기와 거의 일치한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작은 광산도시에서 성장한 밥 딜런은 대학을 중퇴하고 19세에 뉴욕 그리니치빌리지로 간다. 그곳은 가수, 작가, 배우 등 예술가들과 자유로운 영혼(반세기 전에는 존 리드와 엠마 골드먼 같은 극좌파)들의 아지트로 유명한 동네다.
영화는 그가 뉴욕에 도착한 1961년 1월에서 시작한다. 그는 곧장 자신의 우상 우디 거스리를 찾는다. 국립정신병원에 유폐된 우디 거스리는 불치의 유전병이 악화되고 있다. 밥 딜런은 그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실제로 그의 첫 자작곡은 ‘우디에게 바치는 노래’였다.
거인들
우디 거스리는 1930년대와 1940년대 이주 노동자들의 노래를 찾아내 채록했고, 박해받는 이주 노동자들이 즐겨 부를 많은 노래들을 만들고 불렀다. 그는 미국 공산당 기관지에 매주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자신의 노래집에 대해선 “28만 년 동안 저작권 승인을 내린 하나님과 바람 소리에 판권이 있습니다. 사용하세요. 베껴 써요. 노래를 부르세요. 주변에 돌리세요.”라고 했다.
우디 거스리의 자서전을 읽은 18세의 밥 딜런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그의 모든 노래를 외웠고 사투리까지 모방했다.
밥 딜런의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Chronicles)》과 영국의 좌파 활동가 마이크 마퀴스가 쓴 《밥 딜런 평전(Chimes of Freedom: The Politics of Bob Dylan’s Art)》에 따르면, 밥 딜런이 어깨를 빌린 음악의 두 거인은 우디 거스리와 로버트 존슨이다.
로버트 존슨은 1938년 27세에 요절한 흑인 블루스 음악가다. 그 시절 미시시피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해 전기와 라디오가 거의 보급되지 않았을 정도였다. 초기 블루스의 다른 중심지들도 사정이 비슷했다. 가장 잔인하고 체계적인 인종 억압과 빈곤 속에서 가장 선구적이고 혁신적인 연주 기법과 창법이 탄생했다.
블루스 음악의 해방감과 기쁨은 밥 딜런에 앞서 어린 시절 엘비스 프레슬리에게도 음악적 열정을 불어넣었다. 이는 마치 아프리카 미술이 파블로 피카소에게 미친 심대한 영향과 비슷할 것이다.
인류 역사와 유물 및 풍습을 종합해 볼 때, 음악에 대한 인간의 욕구와 능력은 인간 본성의 하나다. 게다가 노래는 속박된 자들 즉 노예, 죄수, 빈민, 문맹, 이주민에게도 허락되는 소유물이다. 따라서 모든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음악과 노래를 가져온다. 이는 새로운 문화에 녹아들어 변화된 풍경과 시대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딜런의 포크 음악에도 시골과 도시, 흑과 백이 공존한다.
1962년
1962년 3월, 데뷔 앨범을 낸 20세의 밥 딜런은 한 해 동안 엄청난 속도로 자작곡들을 쏟아냈다. 힐빌리 스타일로 가난한 이들의 애환을 담은 ‘뉴욕 토킹 블루스’, ‘뉴욕의 불경기’, ‘푸어 보이 블루스’, ‘도널드 화이티의 발라드’.
당시 사회의 지배 사상인 냉전주의와 지배계급인 반공 극우를 나치에 빗대고 신랄하게 공격하는 ‘토킹 존 버치 파라노이드 블루스’는 1년 뒤 TV쇼에서 부르려고 했지만 CBS가 거부하는 바람에 딜런은 방송국을 나가버렸다.
핵 공습 지하대피소 안이 아니라, ‘걷다 죽게 해달라(Let Me Die in My Footsteps)’는 노래.
인종학살에 대한 폭로와 흑인 평등권 운동에 대한 응원을 담은 ‘먼 옛날, 어느 먼 곳(Long Ago, Far Away)’, ‘슬퍼하지 않으리(Ain’t Gonna Grieve)’, ‘에밋 틸의 죽음(Death of Emmett Till)’.
‘불어오는 바람 속에(Blowin’ in the Wind)’도 1962년 초봄에 만들었다. 이 곡에는 “얼마나 많은”으로 시작되는 아홉 개의 질문이 있다. 질문은 점점 고조되어 억압받는 자들과 정의로운 자들의 울분을 표현한다.
통렬한 ‘전쟁의 귀재들(Masters of War)’도 이때 만들었다.
“오라, 너희 전쟁의 귀재들이여 / 모든 총을 만든 너희들 / 모든 죽음의 비행기를 만든 너희들 / 모든 커다란 폭탄을 만든 너희들 / 벽 뒤로 숨은 너희들 / 책상 뒤로 숨은 너희들 / 그저 너희가 알았으면 좋겠어 / 그 가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걸 말이야”
많은 사람들에게 핵전쟁의 공포를 떠올리게 한 ‘세찬 비가 쏟아질 거야(A Hard Rain’s A-Gonna Fall)’도 1962년 처음 공연됐다(이 장면이 영화에 나온다). 노래가 마치 예언이 된 듯, 몇 주 뒤 미국과 소련이 전면적 핵전쟁에 가장 가까이 다다른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했다.
1963년
1963년 밥 딜런은 저항 운동에 더욱 함께했다.
4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체포됐다. 5월, 인종차별 극우의 거점인 앨라배마주 버밍엄에서 1천여 명의 흑인 어린이들이 행진했다. 아이들은 경찰견에 물어뜯기고 소방관이 조준한 고압 물줄기에 튕겨나갔다. 아이들은 경찰들에게 짓밟히거나 곤봉으로 구타당했다. 흑인 어린이 최소 600명이 구금됐다. 다음 날 1922명이 체포됐고 셋째 날 4163명이 체포됐다. 10주 동안 186개 도시에서 758회 시위가 일어났고 1만 4733명이 체포됐다.
6월,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의 미시시피주 잭슨 지역위원 메드거 에버스가 암살자의 총격에 숨졌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Blowin’ in the Wind)’가 공개됐다. 노래는 빌보드 차트 2위에 올랐다. 하지만 딜런은 남부를 돌면서 투쟁에 함께 했다.
“얼마나 자주 위를 올려다봐야 / 한 인간은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을까? / 그래, 그리고 얼마나 많은 귀가 있어야 / 한 인간은 사람들의 울음소릴 들을 수 있을까? / 그래, 그리고 얼마나 많은 죽음을 겪어야 / 한 인간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걸 알 수 있을까? / 그 대답은, 나의 친구여, 바람 속에 불어오고 있지 / 대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네”
7월, 옥스퍼드 타운의 미시시피대학에 입학한 단 한 명의 흑인 학생을 공격하기 위해 백인 극우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이에 딜런은 ‘옥스퍼드 타운’을 만들고, 불렀다.
8월, 20만여 명이 수도 워싱턴으로 행진했다. 마틴 루터 킹이 “꿈”에 대한 연설을 한 그 자리에서 딜런은 다른 가수들의 노래나 다른 연사들의 발언과 사뭇 다른 어조의 노래를 불렀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노래를 떠올리며 쓴 ‘배가 올 그날(When the Ship Comes In)’이었다.
“적들이 양손을 쳐들고 / 원하는 건 다 들어주겠다고 하겠지만 / 우린 뱃머리에 서서 외칠 거야 너희의 시대는 끝났다고 / 파라오의 부족처럼 적들은 파도에 휩쓸려 죽을 거야”
영화의 결말을 장식하는 1965년 7월 뉴포트 포크 페스티발에서 밥 딜런이 일으킨 소동은 일련의 시대적 흐름이기도 했다.
1965년
1965년부터 시작돼 1970년대 초반까지 정치는 격렬했고 문화는 폭발적이었다. 음악 역시 격변했다. 혁신과 재창조가 시대정신이었다. 선두에 있던 음악가들도 마치 돌아올 다리를 불태워 버리듯 자신의 스타일을 스스로 전복하고 혁신하려 들었다(비틀즈도 그랬다).
다른 한편, 저항이 가장 고조되어 가던 시기에 정작 밥 딜런은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반면, 다른 수많은 가수들이 저항의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니나 시몬은 계속 선두에 섰고, 샘 쿡과 지미 헨드릭스는 딜런의 노래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그 후로 커티스 메이필드, 제임스 브라운, 마빈 게이, 에드윈 스타, 빌 위더스 같은 흑인 소울 가수들… 그레이트풀 데드,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스티브 밀러 밴드, 크로스비·스틸스·내시앤영과 같은 록밴드들… 자니 캐시, 존 레넌, 부르스 스프링스턴, 고든 라이트풋… 등이 나섰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다(The Times They Are A-Changin’)’, ‘장기판의 졸일 뿐(Only a Pawn in Their Game)’, ‘해티 캐럴의 외로운 죽음(The Lonesome Death of Hattie Carroll)’ 등 밥 딜런의 수많은 노래들은 다른 저항의 노래들보다 선명한 계급적 투시가 돋보인다(1964년까지. 그 후 가끔).
그 영향은 급진적인 흑표범당과 좌파들에게까지 미쳤다.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러시아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위대한 예술 작품이 창작자의 정치나 세계관의 결함이나 약점에도 불구하고 “진실”할 수 있다는 점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금
19세기까지 포크 음악의 다수는 귀족적이었다. 따라서 이 영화가 포크 음악이 시위 음악으로서 부활하게 된 1960년대를 다루면서 극도로 양극화되어 가던 당시 정치 상황을 곁눈질만 하고 넘어가는 것은 너무 수박 겉핥기다. 다시 말해 〈컴플리트 언노운〉은 할리우드 전기 영화의 흔한 경계 안에 머물고 만다.
하지만 딜런의 노래와 시대를 연결해서 듣고 읽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세찬 비, 세찬 비가, 세차고 세찬 비가 / 세찬 비가 쏟아질 것이다.”
다시, 세찬 비가 쏟아질 것(A Hard Rain’s A-Gonna Fall) 같기 때문이다. 1960년대처럼 사회는 다시 한번 장기적인 혼란에 빠지고 있다. 쿠데타가 감행되고 트럼프가 귀환하고 거리와 정부에서 극우가 성장하는, 어쩌면 세차고 세찬 빗속에 이미 우리가 들어서 있다. 그러나,
“상하원들이여 오라 / 사람들의 요구를 경청하라 / 출입구를 막아서지 말라 / 홀을 틀어막지 말라 / 결국 상처 입는 건 / 시간을 벌려는 자이니 / 바깥에선 싸움이 일어나 갈수록 치열해진다 / 그것이 곧 그대의 창문을 덜컹거리게 하고 그대의 벽을 뒤흔들리라 / 시대가 변하고 있으므로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2월 26일 개봉한다.
*번역된 가사들은 《밥 딜런 :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문학동네, 2016)에서 참조/인용했다. 가장 잘 번역돼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