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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힐러리가 당선되면, 한반도는?

미국 지배계급의 일원인 두 “최악”이 대결하는 미국 대선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성추문 폭로를 계기로 공화당 지도부가 돌아서 버린 도널드 트럼프보다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 가능성이 좀더 높다.

힐러리는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내며 아시아·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패권을 지키기 위한 외교 · 군사 · 경제적 시도에 앞장선 자다. 2011년 힐러리가 《포린 폴리시》에 기고한 ‘미국의 태평양 세기’라는 글을 보면, 그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데 관심이 컸음을 알 수 있다.

당선하면 오바마 정부의 동아시아 · 대북 정책을 계승할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 ⓒ사진 출처 아프간 미 대사관

힐러리는 이렇게 주장했다. “정치의 미래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결정될 것이다. 미국은 그 결정 과정의 중심에 있고자 한다. … 아시아의 열린 시장은 미국에게 전례 없는 투자, 무역, 최첨단 기술 접근의 기회를 제공한다.” 힐러리는 아시아에서 군사동맹 강화, 지역 다자기구 참여, 무역·투자 확대, 광범한 지역의 미군 주둔 방침 등을 강조했다.

위키리크스

최근 위키리크스가 힐러리의 과거 비공개 연설들을 폭로하고 있다. 그 연설들에서 힐러리는 미국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제국주의자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는 시리아인들이 많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미국의 군사개입을 서슴없이 주장한다.

2013년 골드만삭스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힐러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북한이 소형 핵무기를 탑재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손에 넣는다면 참지 않겠다고 중국에 전했다. … [그리 되면] 미사일방어체계(MD)로 중국을 에워쌀 것[이다.]”

힐러리는 “해당 지역에 더 많은 함대를 배치할 것”이라며 “중국이 북한을 통제하지 않으면 우리가 북한을 막아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북핵 문제를 지렛대 삼아 중국을 에워싸고 견제하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런 생각은 힐러리 캠프의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도 공유하는 바다. 그만큼 동아시아?·대북 정책에서 큰 변화가 없을 공산이 크다.

예컨대, 힐러리 당선시 외교·안보 최고위직을 맡을 인물로 꼽히는 미셸 플루노이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이 기존의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매우 분명한 신호를 보내지 않는 한 절대로 대화해서는 안 된다.” 즉, ‘선 비핵화, 후 대화’라는 기존의 ‘전략적 인내’(악의적 무시)가 힐러리 당선 후에도 지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대북 제재와 대북 군사 행동도 계속 강화될 것이다.

플루노이는 “중국이 북한 도발을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면 미국과 한국이 함께 협력해 방어 능력을 더욱더 강화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는 오바마 정부가 사드 배치를 비롯한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을 밀어붙이고 한·미·일 군사 동맹을 강화하며 내놓은 주장과 판박이이다.

따라서 미국의 새 정부는 동아시아에서 미사일방어체계 구축 등 중국을 겨냥한 군사 행동을 계속 추진하고, 한·일 군사협정 등 한·미·일 동맹 강화 정책을 실행하려고 애쓸 것이다. 지금 트럼프가 동맹국들에게 방위비를 분담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힐러리 측도 “동맹국에 미군 주둔 비용을 더 부담시키는 데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있다.”(〈한겨레〉)

힐러리든 트럼프든 새 미국 정부가 동아시아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불안정이 악화하리라고 우려할 수밖에 없다. 방위비 분담 요구, 한·일 군사협력 촉구 같이 한국인들의 커다란 불만을 자아낼 쟁점들도 있다.

희망

트럼프는 물론이고 힐러리가 당선돼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개선될 것 같지 않자, 국내에서도 실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게다가 연일 북한 붕괴론을 떠드는 박근혜 정부와 새 미국 정부가 1년을 함께할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친민주당 인사들이나 진보 일각에서는 미국외교협회 보고서가 북·미 대화를 권고한다는 점에 주목하며 미국이 대북 정책을 북·미 대화(와 궁극적으로 평화협정) 쪽으로 바꿀지 모른다고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런 기대에는 내년 한국 대선에서 정권을 교체하면 새 한국 정부가 미국을 대화 쪽으로 설득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깔려 있다.

그러나 그 미국외교협회의 보고서는 미국 정부에 대화를 권고하면서도 대북 제재·동맹·군사 대응 강화도 주문한다. 북한 인권 보호도 북핵 못지 않은 해결 쟁점(결국 대북 압박의 소재)으로 꼽았다.

이처럼 대화·제재·군사행동 등 모든 옵션을 다 올려 놓은 채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자는 주장은, 사실 지난 20여 년의 북·미 관계에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북한과 미국은 ‘대화 → 미국의 약속 불이행 등으로 대화 중단 → 다시 긴장 고조 → 미국의 새로운 대북 제재와 위협 → 불안정 심화’라는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미국의 대북 정책은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전체 대외 전략에 종속돼 있다. 그리고 미국은 자국의 패권이 동아시아에서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본다. 동아시아에서 중국과의 지정학적 경쟁이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 ‘위협’을 부풀려서 동아시아 정책을 관철시키는 지렛대로 삼아 온 노선을 바꿀 여지는 크지 않다.

게다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미국 경제의 이윤율뿐 아니라 이윤량도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이런 요소들은 미국 경제를 새로운 불황에 빠뜨릴 수 있고, 미국 정부는 자국 경제의 활력을 살리려고 공세적 정책을 펼 수도 있다. 따라서 세계경제의 주요 지역인 동아시아에서 주요 강대국들의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갈마들 공산, 이에 따라 한반도가 그 경쟁의 한복판에 휘말릴 공산이 더 커지고 있다.

따라서 항구적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고민의 지평을 좀더 근본적인 데로 넓혀야 한다. 미국 제국주의와 한국의 친제국주의에 제동을 걸 아래로부터 운동 건설과 아울러, 궁극적으로 체제에 도전할 노동자 운동이 성장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