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시국 선언:
“평범한 우리가 ‘개·돼지’ 취급 받을 때, 박근혜는 ‘최순실의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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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어두컴컴한 무대 뒤에서 키워 온 ‘선출되지 않은 권력’ 최순실의 실체와 그를 둘러싼 어마어마한 부패 커넥션이 온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과 살인적 경찰 폭력을 앞에 두고 잘도 떠벌리던 “법과 질서”는 이제 박근혜 자신에 의해 철저히 망가졌다. 박근혜는 일곱문장짜리 성의 없는 사과를 발표했지만, ‘최순실 문건’을 입수한 JTBC가 특종을 터트려 대통령의 해명이 거짓말임을 낱낱이 밝혀내자 사람들의 분노와 황당함은 극에 달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한양대, 경희대, 서강대, 고려대, 연세대, 서울대 등 대학가에서는 시국선언 움직임이 일고 있다. 특히 ‘최순실 정국’의 포문을 연 정유라(최순실 딸) 특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이화여대에서 학생들은 26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회 십수 곳과 노동자연대 이대모임 등 학내 여러 단체들이 공동으로 참가했다.
시국선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연대 이대모임은 ‘박근혜 퇴진’을 좀 더 분명히 담자는 주장을 했지만 아쉽게도 반영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기자회견 발언자들은 모두 박근혜가 당장 퇴진해도 모자람이 없다고 주장했고, 이에 많은 학생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발언을 들었다. 어떤 학생들은 발언자에게 박수를 치기도 했다.
최은혜 총학생회장은 ‘최순실 게이트’를 “헌정 사상 초유의 국기 문란”으로 규정하고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박근혜는 국민의 뜻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허성실 사범대 대표 또한 “세월호 참사 진실 은폐와 노동 개악,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박근혜가 저질러 온 짓들을 보라”며 박근혜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화여대 비리를 척결하고 정유라 특혜 의혹을 밝히기 위해 활동하는 ‘암행어사’ 실천단의 우지수 학생은 최순실이 정유라의 전 지도교수에게 “교수 같지도 않고 뭐 같은 게 (어디서 나서냐)” 하고 폭언했던 사실을 상기하면서, “지금의 사태를 보면 평범한 우리가 박근혜와 최순실 눈에 ‘개·돼지’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다”며 분노했다.
그런데 시국선언 준비 과정에서 유감스러운 일이 있었다. 본관 점거 농성을 주도적으로 이끈 학생들은 이번 시국선언을 조직한 총학생회에게 기자회견의 수위를 낮추든지, 아니면 해당 기자회견이 본관 점거 농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한 것이다. 사안이 너무 ‘정치적’이라는 이유다.
도대체 자신들이 참가하지도 않는 기자회견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권한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정부에 대한 규탄 수위를 낮추라고 요구한 것은 우파들이나 환영할 일 아닌가? 그들은 여태껏 고수해 온 ‘정치 배제 논리’ 때문에, 최경희 전 총장의 사퇴가 ‘최순실 게이트’의 여파였다는 명백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체육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김종이 최순실과 여러 번 접촉해 직접 보고를 하거나 인사를 청탁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김종 차관은 ‘정유라 특혜’를 지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화여대 신산업융합대학 김경숙 학장과 인연이 깊은 사이로 알려져 있다. 또 정유라에게 학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모 교수 연구팀이 불공정한 방법으로 8억 원이 넘는 정부 연구를 수주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금 박근혜 정권이 처한 위기, 그에 휘말려 있는 이화여대 당국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운동이 전진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알지 못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패와 비리의 뿌리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 제거할 수 있고, ‘최경희 총장 이후의 이화여대’가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오늘의 시국선언은 그 디딤돌 중 하나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