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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트럼프의 당선은 지배자들도 난처하게 한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한 것은 더 큰 세계적 흐름을 보여 준다고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말한다.

미국 지배계급의 다수가 원치 않았는데도 트럼프가 당선했다. ⓒ사진 Gage Skidmore

6월 말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결정이 난 데 이어 이번엔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했다. 이를 보며 좌파는 한 가지 패턴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인물이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에 찌든 역겨운 부동산 개발업자라는 사실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더 큰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은 선진 자본주의 가운데 신자유주의 개척에 가장 앞장선 곳이다. 1979년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가 총리가 되고, 1980년 미국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면서 시작된 과정이었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려면, 지난 35년 동안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세계화를 앞세운 결과가 누적됐다는 것을 봐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7~08년에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불황’이 시작됐다. 그 결과, 정치 체제가 이전만큼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완고한 신자유주의자인 기업 엘리트들이 정치권을 지배했다.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든 마찬가지였다. 8년 전에 당선한 오바마가 이를 가장 잘 보여 줬다. 그의 당선으로 대중은 실질적 변화가 있으리라고 기대했지만, 그는 기존 지배질서를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고 앞선 일의 결과로 가난한 사람들은 갈수록 주류 정치에서 멀어졌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정책과 경기 침체의 희생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투표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느낀 분노와 비통함은 정치적 폭발력을 가질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트럼프는 유세 기간에 자신의 당선은 미국 판 브렉시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6월 23일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기득권층은 모든 세력을 동원해 유럽연합(EU) 잔류를 관철하려 했다. 오늘날 EU는 유럽에서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엔진 구실을 맡고 있고, 런던 금융가(‘시티’)는 대처 하에서 변신한 이래 EU 덕분에 융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친EU 대자본들은 투표에서 패배했다. 그래야 마땅했다. 브렉시트 투표에 관한 분석들은 하나같이 가난할수록 탈퇴 투표 성향이 컸다고 지적한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대자본 등 기득권층은 일제히 힐러리 클린턴을 지원했다. 그들이 클린턴에게 열광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트럼프보다는 낫다고 여겼다.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를 버렸다. 공화당의 역대 대선 후보 가운데 트럼프를 지지한 사람은 밥 돌뿐이다. 그는 운 나쁘게도 1996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과 맞붙었다 참패한 자다.

브렉시트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대자본의 선택은 나름 합리적이었다.

트럼프는 유세 기간에 자유주의적 국제 자본주의 질서에 어긋나는 연설을 하고 다녔다. 그 질서는 제2차세계대전 이래로 미국 제국주의가 구축해 온 질서이고, 미국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자유 무역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촉진하는 질서이다.

트럼프는 각종 무역장벽 완화 조처 때문에 미국의 기초 산업들이 쇠락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의 이런 주장에 대한 호응이 얼마나 컸는지 클린턴은 견해를 뒤집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반대한다고 말해야 했다. 그러고도 중서부의 옛 제조업 지역들(펜실베니아, 오하이오, 미시건, 위스콘신 주)을 트럼프에게 빼앗겼다.

TPP

지금 벌어진 일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가 빚은 결과에 반발해 유권자들이 일으킨 두 번째 커다란 반란이다. 방금 필자는 이 반란이 “결과”에 반발하는 것이라고 썼다. 신자유주의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버니 샌더스 열풍을 돌아보면, 끝내 트럼프에 투표한 유권자들에게도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샌더스는 경선에서 민주당 공식 기구 때문에 제대로 기회를 얻지 못했고, 불행히도 경선 패배 후에는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다.

미국 좌파는 이번 선거 재앙을 계기로 민주당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결론 격으로 세 가지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첫째,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 물론이다. 프랑스 파시스트 지도자 마린 르펜은 트럼프의 승리를 보며 기뻐하고 있다. 내년 봄 프랑스 대선에서 자신도 그처럼 승리할 것이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둘째, 트럼프는 실제로 무엇을 바꿀 것인가? 이건 말하기가 쉽지 않다. 트럼프는 신자유주의 시기의 금융 투기로 번영한 인물로 그 질서와 결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그가 내세운, 그러나 지킬 수 없는 공약들을 이행하길 바랄 것이다. 이것은 트럼프가 이끌 정부에 큰 압박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당선으로 자유주의적 국제 자본주의 질서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는 점(올해 들어서만 브렉시트 이후 두 번째다)은 결코 작게 볼 수 없다.

이제껏 미국은 바로 그 국제 질서의 중심에서 위기를 관리하고, 다른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을 조율하는 구실을 맡아 왔다. 그랬던 미국이 이제 어디로 튈지 모르게 됐다.

오만하고, 제 기능 못 하고, 갈수록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유럽연합이 이 공백을 메울 수 있을까? 질문 속에 이미 답이 있다.

더 크게 봤을 때, 미국과 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유지돼 온, 정치 체제와 자본의 밀착 관계가 느슨해지고 있다. 대자본은 브렉시트도, 트럼프도 원치 않았고 지금 실망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않을 공산이 크고, 국가와 자본은 머지 않아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전까지는 몹시 커다란 불안정성이 생겨날 것이다.

셋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보다 저항에 나서야 한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가 계승하는 것은 서구 사회 전체에서 인종차별을 강화할 것이다.

영국에서는 ‘인종차별에 맞서자’(Stand Up to Racism)는 연대체를 키우는 활동을 배가해서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더 확대하고 단결시켜야 한다.

트럼프가 당선한 미국에서 흑인, 이주민, 무슬림들은 지금 포위됐다고 느낄 것이다. ‘흑인들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등의 운동이 전보다 더 중요해졌다.

그러나 저항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에게는 전략도 필요하다.

트럼프의 당선을 보면, 신자유주의와 경제 위기의 결과들에 맞선 반란이 벌어질 때 우익 포퓰리스트가 거기에 올라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급진좌파는 더 나은 대안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 우리가 앞으로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고 또 매진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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