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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한미FTA:
재협상이 아니라 즉각 폐기

체결 전부터, 한미FTA 반대 운동 측은 FTA 체결 후에도 미국이 수시로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음을 경고해 왔다. 2012년 당시 한미FTA 반대 시위. ⓒ이윤선

트럼프가 상무장관 후보로 윌버 로스를 지명했다. 로스는 미국 대선 기간에 트럼프를 지지하며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체결한 무역협정들을 비난한 인물이다.

트럼프 자신도 선거 기간 내내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등을 비판했고, 당선 직후 TPP 중단을 선언했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지배자들 사이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정치를 지배해 온 정설 신자유주의에서 트럼프가 이탈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또한 로스는 한미FTA 때문에 미국에서 일자리 9만 5천 개가 사라지고 대(對) 한국 무역 적자가 두 배로 늘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미국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 특히 미시간, 오하이오, 인디아나 주 노동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주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인데 이번에는 트럼프가 승리함으로써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의 통상 관료들은 한편으로는 국내외 자본가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하면서도, 미국 정부가 한미FTA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코트라는 “자유무역협정 폐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재협상 추진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먼저, 한미FTA로 미국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봤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친 공화당 성향의 연구소인 ‘헤리티지 재단’도 지난 8월 22일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미FTA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의 대(對) 한국 자동차 수출은 2011∼15년 2백 퍼센트 늘었고, 서비스 수출이 2012년 3월 이후 현재까지 35퍼센트 증가했다고 파악했다. 또, 한국의 12대 기업이 지난해 미국에서 창출한 일자리가 3만 5천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했다.”(〈연합뉴스〉, 2016년 8월 31일치) 한미FTA 비난이 사실상 힐러리를 의식한 선거용 아니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가 단순히 보호무역만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지나치게 단순하다. “트럼프는 신자유주의 시기의 금융 투기로 번영한 인물로 그 질서와 결별하지 않을 것이다.”(알렉스 캘리니코스) 상무장관 후보로 지명된 로스도 신자유주의와 월 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영국 금융그룹 로스차일드의 회장을 역임한 이 자는 재산이 무려 3조 4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1997년 한국 경제 위기 당시 IMF 협상을 이끌었고, 한라그룹과 한국산업은행 등의 구조조정에 직접 관여하기도 하는 등 1990년대에 세계 곳곳에서 시행된 각종 기업 구조조정을 관여했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도 로스는 아랍계 펀드와 손잡고 미국 내 소규모 지역은행들을 인수하며 구조조정을 추진한 바 있다.

물론 트럼프 정부가 한미FTA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한미FTA는 단순한 무역협정이 아니다. ‘자유 무역’을 명분으로 양국의 각종 공공서비스 규제를 하향 평준화하는 협정이다. ‘역진방지(래칫)’나 ‘최혜국대우’, ‘투자자정부제소(ISD)’ 조항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용어들이 뜻하는 바다. 예컨대 한번 이뤄진 민영화(의료, 철도, 전력 등) 조처는 되돌릴 수 없고, 다른 나라들과 맺은 무역협정 중 가장 낮은 수준의 규제를 일반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양국 자본가들이 일부 부문에서 무역 적자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면서도 지지한 것이다. 트럼프는 이런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미국 기업에 유리한 조건을 추가하거나, 한미FTA 재협상 카드를 이용해 다른 부분에서 이익을 얻으려 할 수 있다.

따라서 트럼프가 통상 정책에서 어떤 조처를 취하든, 양국 노동자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은 조금도 완화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한미FTA에 대해 어떤 조처를 취하려 하든, 양국 노동자들은 한미FTA 전면 폐기를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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