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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사회주의는 가능한 소망이다

[지난호 독자편지로 실린]팜반동 씨의 주장을 요약하면 1997년 이전의 한국 경제는 문제가 없었으며, 자본축적의 근본 모순이 아니라 ‘금융자유화’라는 잘못된 정책 때문에 1997년 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케인즈주의적 “금융 억압”을 실시해 재벌의 경영권을 방어하고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할 것을 대안으로 주장한다. 이 때문에 박정희 시절 때 형성된 재벌체제가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체제’보다는 진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팜반동 씨는 이렇게 얘기한다. “IMF 위기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가 결코 아닙니다. 한국은행 한 연구원의 논문에서도 나타나듯이 1993년도부터 이윤율의 저하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팜반동 씨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와 이윤율 저하 경향이 마치 예리하게구분되는 별개 범주로 말하고 있는데, 내가 볼 때 이것은 모순이다.

그렇다면, 박정희식 모델 ― 소수의 (산업)재벌을 중심으로 한 국가주도 모델 ― 역시 마찬가지로 왜 이윤율의 저하를 겪었는지, 그래서 왜 박정희 시대 역시 한국경제의 위기가 반복됐는지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1963년 제조업의 순이윤율은 40퍼센트였지만, 1971년의 경제위기 때는 30퍼센트로 떨어지고, 1979년 위기 때는 10퍼센트로 떨어졌다. 이 여파로 1980년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6퍼센트를 기록했다.

종속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박정희식 발전모델의 주된 자원이 바로 외채였다. 1970년 대 말의 위기는 바로 이 모순이 결합돼 있다.

특히 외채에 의한 중화학공업의 과잉중복투자는 한국경제를 심각한 위기로 몰고 갔다. 결국에는 국제통화기금의 긴급융자와 함께 1979년 4월 긴축정책 등을 골자로 한 ‘경제안정화정책’을 추진했는데, 이것은 김영삼 정권 말기-김대중 정권 초기의 ‘영미식 신자유주의 정책’과 근본에서 다르지 않았다.

박정희 식 모델이 진보이고 그래서 그가 통찰력 있는 지도자라면, 1945∼1970년대에 이르는 전후 자본주의 호황 시기에는 수십, 수백 명의 통찰력 있는 박정희가 존재했다. 왜냐면 그의 모델은 당시에는 그리 새로운 모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나세르, 라틴아메리카의 정권들, 김일성,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등등.

물론 이들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이른바 국가 주도의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내포적으로 추진한 나라들은 점증하는 자본의 세계적 통합 경향에 점점 더 비효율을 드러냈다. 이런 나라들에 라틴아메리카와 북한, 그리고 동유럽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팜반동 씨의 말처럼 박정희 개인이 “진정으로 인민들의 가난을 가슴아파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를 살다간 노동자들이 그의 연민과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노동자들을 쥐어짠 과실의 대부분은 소수의 재벌들에게 돌아갔고 노동자들이 그 과실의 일부라도 돌려 받을 수 있었던 것은 1987년 이후의 노동자 투쟁 때문이었다.

팜반동 씨는 “체 게바라는 위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추구”했지만, “호치민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추구”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호치민은 민족해방투쟁을 이끈 위대한 스탈린주의자이지만,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그의 권력이 아래로부터 민주적인 통제를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그의 정부아래서 노동조합은 불법화됐다.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꼭 마찬가지로 축적을 위한 노동을 강제당한 채 국가가 주인인 공장에 고용됐다. 따라서 자신들의 노동을 통제하지도, 그 결과물을 통제하지도 못했다.

팜반동 씨는 사회주의는 단지 소망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사회주의는 우리의 소망이다. 하지만 가능하기도 하다.

자본주의 역사는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권력이 가능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보여준 역사이기도 했다. 파리 꼬뮌이 그랬고, 러시아 혁명 때의 소비에트가 그랬다. 1979년 이란 혁명 때 쇼라의 경험, 1972∼73년 칠레에서 꼬르돈의 경험이 있다.

이런 가능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볼리비아에서 아르헨티나에서 베네수엘라에서, 아직은 제한된 형태지만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권력을 실험하고 있다.

이런 아래로부터의 가능성이 ‘영·미식 자유주의’나 ‘박정희 모델’ 따위의 양자택일로 환원될 이유는 없다.

한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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