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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임금과 안전을 위해 11년 만에 파업에 나서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자들이 12월 22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우선 열흘간 1백89명의 조합원들이 1차 파업을 하고, 이후 파업 참가 조합원을 교체해 다시 2차, 3차 파업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2000년대 들어 항공사 파업으로 이윤에 막대한 타격이 발생하자, 정부는 2006년 12월부터 항공업을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했다. 파업 시에도 국제선 80퍼센트, 제주노선 70퍼센트, 국내선 50퍼센트를 정상 운항하라는 악법을 만든 것이다.

22일 파업 집회를 하고 있는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자들. ⓒ출처 〈레디앙〉

조종사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는 이유는 대한항공 사측이 노동자들의 요구를 묵살하면서 2015년 임금협상을 1년째 질질 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제자리걸음을 해 왔다. 10년간 평균 임금 인상률은 물가 인상률에 미치지 못해, 사실상 실질임금이 깎였다. 이 때문에 근래 외국 항공사로 옮기는 조종사들이 늘어 연평균 20~30명 수준이던 퇴직자 수가 2015년에 1백45명으로 급증했다. 인원 부족으로 힘든 스케줄이 많아지면서 누적되는 피로는 항공 사고의 위험도 키운다.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37퍼센트 임금 인상안은 동일업종 수준으로 임금을 상향 조정해 인원 부족, 항공 사고 위험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전혀 무리하거나 이기적인 요구가 아니다. 그러나 사측은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1년째 1.9퍼센트 인상안을 고수하고 있다. 파업 전 마지막 교섭에서 노동조합은 29퍼센트로 인상률로 요구 수준을 대폭 낮췄지만, 사측은 단돈 1천 원, 0.1퍼센트도 더 줄 수 없다는 견해만을 거듭 밝혔다.

사측은 1년 전에 1.9퍼센트 임금 인상을 합의한 일반직 노동조합과의 ‘형평성’을 운운하지만, 더 낮은 조건을 핑계로 임금 인상 요구를 억누르는 것은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허리띠를 조를 때 흔히 사용하는 논리일 뿐이다. 오히려 2000년 10월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첫 파업에서 승리하고 노동조합의 활력이 충만했던 5년 동안, 대한항공 일반직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도 대기업 기준 업계 최저 수준에서 업계 최고 수준으로 향상됐다.

안전 운항

대한항공 경영진은 2년 전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은 바 있지만, 여전히 객실 승무원들의 노동 인권이나 조종사들의 비행 안전 요구는 무시하고 있다. 지난 3월 13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한 대한항공 부기장의 페이스북에 “비행기 조종이 자동차 운전보다 쉬운데 힘들다고? 개가 웃어요”라고 썼던 댓글은 회사 경영진이 노동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사측의 잘못을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탄압으로 억눌려 왔다. 지난 2월 쟁의행위가 시작된 이래 회사는 집회 참여, 조합 활동 등을 이유로 해고 1명, 부기장 강등 1명, 정직 10명, 비행 정지 4명, 견책 16명 등 징계를 남발했다. 22일 파업 출정식에서 만난 한 노동자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여기서 밀리면 더 이상 노동조합 활동 못한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 왔다”며 파업에 나서는 심경을 밝혔다. 노동자들은 이번 투쟁으로 10년 동안 빼앗긴 임금뿐만 아니라, 회사의 잘못을 당당하게 비판하고 바꿀 수 있는 권리도 되찾고 싶다고 말한다.

조종사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자, 사측은 이를 빌미로 공석(빈자리)률이 높은 국내선 여객노선의 결항을 공지했다. 국내선을 운항하는 B737기종의 경우 이번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은 단 1명뿐이지만, 대한항공은 김포-부산, 김포-울산, 김포-여수 노선의 50퍼센트를 결항했다. 승객들이 피해를 보든 말든 공석률을 낮춰 이윤을 올리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거듭 제기해 왔듯이, 필수유지업무제도는 국민의 불편이 아닌 기업의 불편을 방지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채워진 족쇄였다. 따라서 사측이 악법의 뒤에 숨어 계속 노동자들을 무시한다면, 파업의 수위와 범위를 더 확대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게이트’로 정권과 기업이 사익을 위해 불법도 마다하지 않고 유착해 온 사실이 밝히 드러났다. 대한항공 사측은 미르재단에 10억 원을 ‘상납’한 부패의 일부였다. 이외에도 계열사 내부 거래로 모회사인 한진그룹 총수 일가에게 부당 이익 몰아주기, 탈세를 무마하기 위해 진경준 검사 처남이 운영하는 업체에 1백억 원대 일감 몰아주기 등 썩어빠지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노동자들은 이런 사측에 싸워보지도 않고 굴복하기는 정말 싫다고 말한다. 노동 조건과 안전을 지키고자 정당한 투쟁에 나선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자들에게 지지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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