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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파시스트인가?

‘제3의 길’의 몰락은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더 우파적인 세력이 그 수혜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서방 지배자들 사이에서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터키의 레젭 타입 에르도안, 미국의 트럼프 부상 등을 모두 싸잡아서 ‘포퓰리즘 현상’이라고 부르는 게 유행하고 있다. 이는 자신들의 기득권에 대한 도전을 한데 모아 비난하려는 것일 뿐, 현실을 진지하게 분석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푸틴, 에르도안, 트럼프 등을 가리켜 파시즘이라고 하는 관점도 꽤 흔하다. 미국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 네오콘 중에도 트럼프 당선으로 파시즘이 도래했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가 히틀러의 부상을 관찰하며 썼듯이, 파시즘이란 “독특하게 구별되는 대중 운동”이다. 독일 나치는 근본으로는 조직 노동자 운동을 파괴하고 독일 제국주의를 부활시키려는 반동적 프로젝트였고 이를 위해 대중운동을 건설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독일의 주요 자본의 일부가 나치를 지원했다.

주류 학계에서 파시즘 연구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교양인)의 저자 로버트 O 팩스턴도 이 점이 트럼프와 파시즘의 중요한 차이라고 지적한다.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 양국에서 지배자들은 나치와 파시스트보다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을 더 큰 위협으로 여겼다. 그래서 권력 기구를 차지한 보수 세력이 좌파와 싸우고자 나치와 파시스트를 체제 안으로 끌어들였고, 이는 아주 의식적인 결정이었다. 오늘날에는 그런 동역학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양차 대전 사이에 대자본은 조직 노동운동을 분쇄하려고 파시스트들이 이끄는 준군사적 대중운동에 관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거치면서 노동조합이 취약해진 결과, 오늘날 선진국의 자본가들은 조직 노동운동을 그럴 정도의 장애물로까지는 여기지 않는다.

더욱이, 과거 나치와 같은 구실을 할 대중적 파시스트 운동이 미국에는 없다. 트럼프는 대중운동을 바탕으로 정당을 건설한 것이 아니다. 주요 부르주아 정당의 후보로 선거에서 이겼다. 주류 정당이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약화된 것을 파고든 것이다.

물론 트럼프와 그가 지원하는 ‘대안 우파’는 인종차별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역겨운 자들이고, 그들이 조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파시스트 사상이 자라날 수 있다. “하일 트럼프”를 외치며 나치 흉내를 내는 ‘대안 우파’ 지도자 리처드 스펜서의 일당은 조직화된 파시스트 운동이 못 되지만 온라인에서는 영향력이 크다.

우리는 파시즘 사상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해야 한다. 파시즘 사상을 퍼뜨리거나 그런 자들과 어울리는 자들에게는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 마르쿠제가 “해방을 위한 불관용”이라 부른 태도가 필요하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인종차별주의자, 억압적 경찰, 백인 민병대가 힘을 받고 있고, 상황이 더 악화하면 진정한 파시스트 운동이 등장할 수 있다. 더욱이 유럽에는 이미 파시스트 운동이 존재한다. 프랑스의 국민전선이나 헝가리의 요빅 당은 겉으로는 보통의 우파 정당 행세를 하지만 그 핵심에는 파시스트가 있다. 심지어 그리스 황금새벽당은 노골적인 파시스트 정당이다.

급진좌파와 혁명적 좌파는 신자유주의에 분노하는 사람들을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대안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유럽연합에 대한 태도를 놓고, 미국에서는 클린턴이 ‘차악’인지를 놓고서 좌파가 분열할 위험이 있다. 급진좌파가 이런 차이를 극복하고 단결을 도모할 방법은 (영국에서 일부 좌파가 매달리는 국민투표 결과 뒤집기 시도가 아니라) 인종차별·무슬림혐오 반대 운동을 광범하게 건설하는 것이다.

제국주의 핵심 열강의 사령탑에 우익 모험꾼이 앉았다는 사실은 분명 반갑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의회·언론이나 자본의 로비가 정부에 가하는 압박, 정부 내부의 분열, 아래로부터 저항이 결합돼 지배자들이 물러난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한국에서 대규모 시위 때문에 우익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당한 일을 보면 오만한 지배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추천 책

파시즘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싸울 것인가?

레온 트로츠키 지음 | 최일붕 옮김 | 74쪽 | 3,000원

“파시스트 운동은 대중 운동이며, 그 운동의 지도자들은 사회주의적 데마고기를 아주 많이 사용한다. 대중 운동을 창출하려면 사회주의적 데마고기가 필요한 것이다.

“파시즘과 관련해 무언가를 예측할 수 있으려면, 파시즘의 성격을 규정해야 한다. 파시즘이란 무엇일까? 파시즘의 기반·형태·특징은 무엇인가? 파시즘은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과학적이고 마르크스주의적인 방식으로 그 물음에 답해야 한다.”

이 글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2017년 겨울 호에 실린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The end of the world news’를 기초로 김종환 기자가 작성한 것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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