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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인사비리를 둘러싼 위선

기아차 채용비리 사건을 이용한 정부와 언론의 ‘노조 죽이기’ 선동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채용 비리의 진정한 몸통인 회사 임원진과 정·관계 고위 인사들은 고스란히 내버려둔 채 노조 관련 의혹만 한없이 부풀리며 대기업 노조 마녀 사냥에 한껏 이용하고 있다. “연례화된 파업”, “노조의 경영 간섭”, “투쟁지향성”이 노조 비리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번 비리에 연루된 당사자들을 비롯한 기아차노조 17대 상근 집행부는 “투쟁지향성”과는 거리가 먼, 민주노총 내 극우파에 속하는 관료들이었다.

기아차노조 17대 집행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지난해 초, 비정규직 부당 해고와 작업장 안전사고에 맞서 투쟁한 조합원을 징계·해고하려 한 사측의 시도에 “징계받을 만하다”며 수수방관했다. 심지어 구속 조합원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대책위 천막농성장과 현수막을 철거해 버리기도 했다.

“투쟁지향성”이 아니라 이러한 투쟁회피·노사협조적 태도야말로 일부 노조 간부들의 타락을 부추긴 원인이다. 현대차에 인수된 후 기아차 사측은 노조 통제를 위해 노조 간부들에 대한 접촉과 관리를 강화해 왔다(아래 관련 기사 참조). 현장 조합원에 기반한 투쟁보다는 사측과의 ‘협력적’ 관계에 익숙해 있던 17대 집행부는 이권 유혹과 매수 시도에 훨씬 쉽게 굴복했다.

기아차 노동자들이 모두 이러한 비리 의혹들을 모른 체하거나 심지어 동참해 왔다는 언론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기아차 노동자들은 채용 비리 의혹에 대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 방안을 논의해 왔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정기 대의원 대회에서 “입사 관련 진상규명 대책 수립 건”이 공식 안건으로 채택·논의됐고, “입사관련 진상규명 및 대책수립을 위한 특별대책위 구성”이 결정됐다. 기아차 노조의 많은 활동가들이 이번 사건에 대한 즉각적이고 완전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고 있다.

기아차 입사 비리에 대한 언론의 이데올로기적 공격은 노조의 자주성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번 일을 빌미 삼아 노조에 대한 외부 감사를 강화하고 노동자를 해고할 때 노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법률을 개정하려 한다.

비리 사건 직후 기아차 사측은 작업장 안전사고에 대한 처리 기준 강화를 요구했다. 안전사고에 대한 노동자들의 판단과 대응 범위 ― 특히 작업중지권 ― 를 제한하려는 것이다. 사측은 전에도 이러한 시도를 했으나 대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비리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박홍귀 집행부가 이번에 은근슬쩍 이 요구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지난해 본관을 항의 방문한 2명의 조합원은 최근 사측의 고소·고발로 경찰의 출두명령을 받았다.

정부와 언론, 기업주 들은 이번 기회를 틈타 그 동안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쌓아 온 소중한 권리들을 무력화하려 한다. 이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이간질하는 데 이번 사건을 한껏 이용하고 있다.

현장노동자들이 이번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부패 문제에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기아차 노동자들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 운동은 기업주와 그들의 언론, 그들의 정부의 이러한 위선과 분열 시도, 현장 활동 공격에 위축되지 말고 저항을 조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