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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혁명” 운운하더니 알맹이가 빠진 민주당의 “입법 과제”

12월 19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촛불 시민혁명 입법·정책 과제”를 발표했다. 찬찬히 보면, 내년 대선 공약 예고판 같은 느낌인데, 막상 내용물은 “혁명” 운운하는 포장지가 무색해진다.

우선, 촛불 운동에서 가장 강력히 지지받고 있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얘기가 빠져 있다.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부의 대표 적폐인데도 말이다. 세월호를 의식한 요구는 “대통령 일정 공개 의무화” 정도인데, 이는 기소권과 수사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다시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바람에 한참 못 미친다. 민주당은 2014년에도 기소권과 수사권이 빠진 누더기 특별법을 여당과 야합해 통과시키고, 특조위 활동 기한 보장을 위한 특별법 개정 요구도 ‘국회 선진화법’을 핑계로 회피했다. 그래 놓고는 이번에도 유가족과 운동의 요구를 누락시킨 것이다.

민주당은 “시민의 정치적·경제적 권리”를 말하지만 정작 집회·시위의 자유 문제인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석방 요구는 “입법 과제”에서 빠져 있다. 집회에 참가했다가 공권력으로 목숨을 잃은 백남기 농민 사망 문제로 처벌받은 책임자가 전혀 없는데 이 문제도 빠져 있다. 토론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 이석기 전 의원 등의 석방과 정치·결사의 자유를 억압한 진보당 해산 문제도 언급되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시민혁명 입법인가?

노동자들의 삶도 민주당이 말하는 “민생”에 포함되지 못했다. 경제활동인구의 대다수인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을 위협할 노동개악, 절차도 무시한 채 졸속 강행되고 있는 성과연봉제 중단은 민생 현안이 아니란 말인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물 광화문에서 희생자들의 구명 조끼를 입는 유가족들. 민주당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물을 철저히 외면했다. ⓒ조승진

황교안 내각 인정?

그나마 사드 배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한일 ’위안부’ 합의는 포함됐다. 그러나 일방 처리 강행 중단을 요구한다. 이 정책들은 한미일 동맹 강화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들로 제국주의적 군사경쟁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즉각 철회돼야 한다. 민주당이 “일방적”이라는 단서를 단 것은 이 문제가 국회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뜻으로, 자신들을 합의 파트너로 인정하라는 뜻할 뿐이다.

무엇보다 민주당의 적폐 청산 주장이 도통 미덥지 않은 것은 그 자체로 박근혜의 최대 적폐인 황교안 내각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교안은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부’의 수장 구실을 하면서 사드 조기 배치 등을 강행하고 있고, 성과연봉제도 강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민생 안정을 위한 “협치”를 야당에게 요구하면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규제프리존 등 박근혜가 수년 동안 공들인 민영화 추진 법안 통과를 압박하고 있다.

우파들은 아래로부터의 압력으로 황교안마저 물러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한다. 박근혜 탄핵 후 선거를 통해서 안정적으로 정권을 잡는 것이 중요한 민주당은 지배계급의 이런 보수적 정서를 거스르지 않으려 한다.(퇴진행동이 제시한 6대 긴급 과제 중 언론장악방지만이 민주당의 입법 과제에 거의 고스란히 포함됐는데, 이는 공정하게 선거를 치르는 것을 중시하는 이해관계도 맞물린 탓이 클 것이다.)

선거 중시

민주당은 지금의 촛불 운동을 “혁명”이라 부르지만 이 운동이 박근혜 퇴진뿐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 문제들을 제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 속 개혁을 추구하는 부르주아 정당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대정부질의에서 황교안에게 호통을 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황교안 사퇴 요구는 한사코 지지하지 않는 것도 이런 성격에서 비롯한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박근혜 정부가 벌인 무능·무책임 정책들, 소수 권력자들만을 위한 숱한 개악들도 박근혜와 함께 사라져야 한다. 이런 과제는 끊임없이 동요하고 운동에 언제나 뒤처지는 기회주의 민주당이 수행할 수 없다. 오히려 민주당을 적폐 청산의 주요 통로로 삼으려 하면, 운동의 요구를 민주당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것이다. 부르주아 야당은 물론이고 새누리당 일부까지 운동의 압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듯이 운동을 더욱 확대·심화시키는 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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