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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불경죄를 묻는 우익 <그때 그사람들>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이 이 영화에 대해 박정희 “명예 훼손 혐의”로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내자 법원은 “다큐멘터리 장면이 별다른 설명 없이 장시간 삽입돼 상영되면 관객들에게 영화가 허구가 아닌 실제라는 인식을 심어 주어 고인의 인격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영화에 나오는 3분 50초 분량의 기록화면들을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영화의 일부 장면이 삭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익은 이미 9년 전에 위헌판결을 받은 사전검열제도 대신 민사소송을 이용해서 그 동안 신장된 표현의 자유를 공격한 것이다.

한국 영화의 흐름도 우익에겐 문제였다.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가 대박을 터뜨릴 때마다 우익은 홀로 시비를 걸어왔다. 그런데 앞으로 제작될 영화들은 더 골칫거리다. 〈조선일보〉식 표현(원조는 일본우익들)으로 말하면 “자학사관”의 영화들이다. 황석영의 베트남전 소설을 영화화하는 〈무기의 그늘〉. 〈그때 그 사람들〉의 제작사가 만들 〈노근리 전쟁〉(가제). 그리고 80년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가 셋이다 〈윤상원 프로젝트(가제)〉, 〈광주〉 등.

우익의 법전이 돼 준 이번 판결문은 교묘하게도 “영화가 허구”라고 강조했고 “허구”의 의미를 ‘기록된 사실’의 반대말이 아니라 ‘거짓’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그때 그 사람들〉은 알려져 있는 그 날의 사건일지를 따라서 대사 한 줄까지 거의 그대로 재현했다. 오히려 허구(=창조적 재구성)가 적어서 아쉽다.

우익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박정희의 화려한 여성편력, 일본어를 통한 은밀한 대화, 엔카(일본가요)에 심취한 모습은 동석자들의 증언과는 다를지라도 개연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박정희는 권력을 이용해 수백 명의 여성을 ‘조달’받았다. 왜색에도 심취했다. 강창성 전 보안사 사령관의 회고에 따르면 박정희는 집무실에서 일본군 장교복장에 가죽 장화를 신고 말채찍까지 챙겨 들고서 만주 일본군 시절의 향수에 빠지는 변태짓(?)까지 즐겼다고 한다.

요컨대, 우익은 이 영화에 불경죄를 묻는다. 박정희의 실체를 만천하에 폭로한 불경죄!

그러나 노회한 독재자를 외로움에 찌든 노인네로 끌어내린 시도는 단점이다. 초인적인 기회주의, 강박적인 숙청과 견제, 사악함과 무자비함까지 복합적으로 담지는 못했다. 또, 영화처럼 실제 김재규의 박정희 테러는 엉성했고 행정부와 군 수뇌부도 우스꽝스럽게 허둥댔지만, 10·26이 있기까지의 갈등 과정은 그렇게 가볍지는 않았다.

당시에 이미 4년째 발동 중인 긴급조치 9호는 약발이 다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부마항쟁처럼 수많은 노동자들이 나선 대규모 반발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두고 지배계급 내부의 오랜 갈등이 첨예해졌다. 박정희와 차지철은 강압적 방식을 고수했고, 온건한 방식을 주장한 김재규에게 암살됐다.

김재규는 유신을 수호하는 핵심 인물이었다. 그러나 유신이 대중의 불만을 고작 1∼2년도 억누르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권위주의 국가에선 대중의 실제 분위기를 가장 잘 아는 기관이 비밀경찰일 수 있다. 비밀경찰은 사람들이 실제로 말하는 내용을 보고해 줄 정보망을 갖고 있는 반면, 집권당 당원들이나 경호실은 상부에서 듣고 싶어하는 내용만 보고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가장 보수적이고 악랄할 것 같은 중앙정보부장이 온건한 방식을 주장하게 된 배경이다.

그렇다고 김재규를 민주적 인사로 치장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김재규는 민주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지배체제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위협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지배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우익의 공격에 맞서 이 영화를 방어하고 박정희와 박사모 회원들(사법부와 우익들)을 폭로하자. 독재자에 대한 ‘불경죄’는 명예로운 죄목 아닌가. 그러니 이 영화는 볼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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