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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서적 부도 사태로 보는 자본주의와 문화

올해 초 국내 2위 도매 서점인 송인서적이 부도났다.

송인서적은 직원이 1백 명 남짓한 중소기업이지만 이번 부도로 출판계 전체가 출렁이고 있다. 주로 중소 출판사들이 큰 타격을 입었고, 그 파장은 인쇄소·제지소 등 제조업계와 중소 서점, 저술가·번역가·디자이너 등 출판계 전반에 미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사태에 무관심과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고작 내놓은 해결책이 피해 입은 출판사들에게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주겠다는 것이다. 출판인들은 “삼성이 정유라에게 지원하기로 한 말 값의 절반만 있어도 급한 불은 끌 수 있는데, 기껏 출판사들 상대로 돈놀이하겠다는 거냐?”고 한탄한다.

정부는 “사기업이 입은 손실을 메워 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부도난 재벌·금융기관·건설사를 살릴 때는 수백 조 원을 써 놓고, 몇백 억짜리 부도에는 “시장경제 원리를 지켜야 한다”고?

출판업이 기간산업이 아니라서 무관심한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박근혜 정부가 그토록 부르짖은 ‘창조경제’가 바로 문화 융성하겠다는 거 아니었나? 2013~15년 창조경제에 들어간 예산이 무려 21조 원이 넘는데, 그 돈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송인서적 창고에 쌓여있는 재고 서적

창조경제’의 본질

이런 모순은 창조경제의 본질을 보여 준다. 창조경제에서 말하는 ‘문화’란, 문화 산업이자 문화 상품을 뜻한다. 즉, 경쟁력이 있고 이윤을 많이 낳는 문화만이 가치가 있다. 그래서 (재벌과 손잡고) 주로 영상·게임·엔터테인먼트·캐릭터·테마파크·스포츠 같은 것에 돈을 쏟아붓는다. 철저히 이윤 논리를 따르되, 국가가 주도해 돈벌이가 되는 놈은 밀어주고 안 될 놈은 도태시킨다.

요컨대, 창조경제의 관점으로 보면 송인서적 부도는 문화 산업의 변두리에서 일어난, 그것도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의 자연스러운 도태 과정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시각이 박근혜와 그 일당만의 생각은 아니다. 물론 그들은 창조경제 운운하며 뒷돈을 두둑이 챙겼지만, 그 자체가 창조경제의 목적은 아니다. 창조경제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곳은 영국이고, 이미 10여 년 전부터 각국 정부는 문화 산업을 새로운 노다지로 여기며 자국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5개년 계획’ 같은 것을 세워 추진해 왔다.

요컨대, 창조경제란 문화를 융성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상품화하는 것을 뜻하며 이것이 오늘날 자본주의가 문화를 대하는 태도다.

문화의 상품화

이런 문화의 상품화는 노동계급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작가·예술가·지식인에게는? 새로운 일자리나 기회가 생길 수도 있으니 마냥 좋은 일일까? 프랑스의 행동하는 지성 고(故) 피에르 부르디외에 따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이것은 “문화의 위기”다.

문화의 상품화는 다양화가 아니라 획일화를 낳는다. 다채널 텔레비전과 멀티플렉스가 선택권을 넓혀 주는가? “경쟁 상태에서는 최대 다수가 선호하는 것만을 생산해야 하므로 다양성을 추구할 수 없게 된다. … 미국의 출판 시장은 W W 노턴, 호턴미플린 같은 대형 출판사와 몇몇 대학 출판사, 급진적 소규모 출판사를 빼면 8개의 거대 미디어 제작사에 통합됐다.”

블랙리스트 같은 직접적 감시만이 검열이 아니다. “금권의 검열이 작동한 결과, 돈벌이가 되는 유명 인사들의 저작만 두드러지게 늘어났다.” 문화 생산자들은 점점 더 자율성을 잃어버리고 더 직접적으로 자본의 요구에 종속된다.

이런 과정은 문화 생산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문화 소비자, 즉 대중에게도 “미적 감수성의 평균화·동질화·수동화를 낳고 이것이 다시금 예술적 생산으로 이어지면서, 예술의 본원적 가치 — 즉, 현실과 개인의 삶 사이의 관계를 지각과 감수성의 층위에서 창조적으로 표현하고 의미화함으로써 세계와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더 풍부하게 해 주는 것 — 조차도 붕괴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이기웅, “자본주의와 예술”, 〈레프트21〉 11호 참고).

따라서 문화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바라는 사람들은 문화의 상품화에 맞서 싸워야 한다. 사실, 자본주의가 세계 체제로 자리 잡아 부르주아지가 더는 혁명적 세력이 아니게 된 19세기 중후반 이래로, 진정한 문화적 성취는 갈수록 자본주의 세계를 찬양하는 게 아니라 그에 반대하면서 나왔다.

국유화

송인서적 부도 사태로 돌아가 보자. 이 부도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소규모 출판사들이다. 출판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지켜 내는 저수지 구실을 해 온 이 출판사들이 몰락한다면, 출판 생태계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무명의 저술가·번역가·디자이너는 등용문을 잃을 것이고, 갈수록 돈이 되고 주류 사회의 입맛에 맞는 책만 출판돼 새로운 생각과 비판적 사상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일시적으로 공적 자금을 투입하거나 출판사들이 채무액을 일부 탕감해 주고 제3자 매각하는 방식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송인서적은 1998년 외환 위기 때도 부도난 적이 있는데 출판사들이 채무액을 일부 탕감해 줘서 회생시켰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올해 다시 부도를 맞은 것이다.

송인서적 부도를 놓고 흔히 “출판계의 전근대적 유통 방식” 등을 원인으로 꼽지만,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 위기의 영향으로 기나긴 불황을 겪는 출판계의 현실이 드러난 것일 뿐이다. 사실, 1위 도매 서점인 북센도 모기업인 웅진그룹의 무리한 극동건설 인수로 2008년 대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한 차례 위기를 겪은 바 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송인서적이 위기에 더 취약했을 뿐, 시장 원리에 기대는 방식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출판계는 “문화는 상품이 아니라 공공재”라고 주장하며 ‘완전 도서정가제’를 요구해 왔다. ‘완전 도서정가제’는 시장 경쟁을 일부 제한하는 조처이지만 해결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문화는 상품이 아니라 공공재”라는 주장을 더 일관되게 밀어붙여야 한다. 즉, 출판 생태계를 지키고 아무 죄 없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송인서적을 국유화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또, 국가가 출판 유통을 책임지고 공공 도서관도 늘리라고 요구해야 한다. 진정한 문화적 발전은 이런 투쟁 속에서 꽃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