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구속 – 촛불이 삼성에게 피해받은 사람들에게 준 소중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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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2일, 삼성회장 이건희는 고려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건립 100주년을 기념해 삼성 로고가 박힌 건물을 지어준 대가였다.
당시에도 삼성은 악랄한 ‘무노조 경영 철학’으로 수많은 삼성 노동자들을 탄압했고,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의문의 백혈병으로 죽어나간 노동자들에게 보상과 산업재해 인정은커녕 백혈병 원인을 밝히려는 진상조사도 가로막는 추악한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또, 온갖 편법과 불법으로 아들 이재용에게 재산을 상속하고 있었다. 그런 이건희에게 고려대 당국은 캠퍼스 내에 삼성건물을 지어 반영구적 광고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모자라 박사학위까지 주려 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학위를 받기 위해 최소 수년 이상 고생하는 연구자들과 학생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였다.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행태였고 대학이 기업에 기대고 기업은 대학에 입김을 불어넣는 이른바 대학기업화의 결정판이었다.
당시 고려대학교 학생이었던 나는 학생들에게 호소해 이건희의 학위 수여를 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건희는 삼성보안업체 직원들을 동원해 1백50여 명의 학생 시위대와 몸싸움을 벌이게 하고서야 학위 수여장에 겨우 들어갔고 수여식이 끝난 후에는 계속되는 학생들의 연좌농성 때문에 뒷문으로 도망치듯 빠져나가야만 했다.
남한 최고 권력자가 스물을 갓 넘긴 젊은 대학생들에게 굴욕을 당했다. 이 시위는 당일 저녁 방송사 뉴스에 보도됐고, 구겨진 양복을 입고 일그러진 표정을 한 이건희의 사진은 인터넷포털 메인화면에 노출됐다. 보수언론들은 사설을 통해 고려대 학생 시위대를 비난했고, 삼성 사장 출신의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과 청와대 비서관도 우리를 공격했다. 학내에서 벌어진 조그마한 시위로 정부 각료까지 역정을 낸 정도였으니 삼성의 파워는 실로 막강했다.
고려대 당국은 시위 다음 날부터 시위를 벌인 학생들을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의 시위로 삼성의 추악한 진실이 언론에 보도됐고, 시위를 벌인 이유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시위 당일 삼성 사장단 앞에서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며 90도로 허리를 굽혀 머리를 조아리는 고려대 총장과 보직교수들의 반교육적인 행태가 폭로되자 고려대 당국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강해졌다. 결국 사회적 여론에 부담을 느낀 이건희는 “내 부덕의 소치”라며 꼬리를 내렸고 이재용은 “젊은 혈기로 [벌어진 일]”이라고 밝혔다. 결국 고려대 당국은 더 징계 시도를 하지 않았다.
보복성 징계
그러나 1년 후, 2006년 4월 학내 시위로 학생 19명이 징계를 당했다. 그런데 이 학생들 중 유독 2005년 이건희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 7명에게는 입학 사실조차 삭제하는 극단의 징계인 ‘출교’가 내려졌다. 특히 나에게는 2006년 당시 시위를 주도했다는 명분이 아니라 노트북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지령’을 내리고 시위를 ‘배후조종’했다는 혐의로 출교 처분이 내려졌다. ‘왜 우리가 출교당해야만 하느냐’는 질문에 황당한 답변만 둘러대던 학교 당국은 후에 법정에 가서야 이건희 시위가 징계의 이유 중 하나였다고 인정했다. 추악한 삼성의 민낯이 드러나게 한 ‘죄’로 우리는 보복을 당한 것이었다.
그 후 우리는 2년간 천막농성 투쟁을 벌였고 학내 수많은 학생 및 교수, 시민사회 세력의 적극적인 지원과 연대로 2008년 복학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리고 모두 온전히 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뜨거운 여름과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두 번이나 길바닥에서 견딘 결과 무릎과 허리에 병을 얻은 학생도 있고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학생도 있다. 우리 모두는 사회진출이 늦어지는 피해를 입었다.
촛불슈퍼파워
이재용이 구속되던 날, 나는 아침 뉴스를 보고 주먹을 불끈쥐며 환호성을 질렀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우리가 받은 피해를 직접적으로 보상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12년 전 우리가 벌인 시위는 다시금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그동안 삼성이 판검사들과 기자들에게 뇌물을 줘 관리해 왔다는 것과 불법 비자금을 만들어 왔다는 것이 폭로됐지만 되레 진실을 알린 사람들이 탄압을 당해 왔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촛불슈퍼파워’는 막강한 삼성파워를 무찔렀다. 매주 거리로 나온 촛불에게 정말 고마웠고 나 자신이 매주 토요일마다 거리를 수놓은 1천만 개 촛불 중 하나였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2005년 5월 2일 시위 직후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 했다가 탄압받은 노동자들과 신세계 이마트 노동자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흥분된 목소리로 “고맙다”며 울먹였던 때가 아직 생생하다. 그 분들도 지금 촛불을 들고 있을 것이고 이재용이 구속되던 날 기뻐했을 것이다.
2005년 시위 당일 〈조선일보〉는 우리 시위를 비난하며 “미친 개에는 몽둥이가 최고”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나는 이 말을 이재용의 구속이 경제를 망친다며 특검과 법원을 비난하는 지배계급과 우익들, 그리고 아직도 혐의를 부인하며 피해자인 척 하는 이재용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
확실한 단죄를 위해서는 단순히 이재용을 구속수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가 정식으로 기소되고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돼야 한다. 또한 삼성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총수 구속을 계기로 자신감을 얻어 싸워나갈 수 있기를 바라고 응원한다. 이를 위해 촛불은 계속돼야 하고 더욱 강력해져야 한다. 적폐가 완전히 청산될 때까지 나도 거리에서 촛불을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