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분할은 관철됐지만:
투쟁 과제는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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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이 다음 달 1일 6개 기업으로 분할·분사된다. 사측은 2월 27일 주주총회에서 경비대·경찰 수백 명을 동원해 날치기로 이 같은 계획을 통과시키고, 그에 필요한 제반 절차를 착착 밟아 나가고 있다.
동시에, 사측은 노동자 탄압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 벌인 ‘주주총회 저지 파업’의 참가자들에게 징계를 퍼붓고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해 임금을 깎았다. 금속노조의 교섭권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단일 교섭권은 회사가 여러 개로 쪼개져도 노동자들이 하나로 단결하고 동일한 단체협약을 적용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중요하게 내건 요구다.
이 같은 탄압의 목적은 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착취하고 통제·관리하기 위함이다. 사측은 “불법”적 방법들까지 동원해 막무가내로 분할 계획을 관철했지만, 노동자들을 향한 구조조정 공격은 이것으로 끝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도 비록 기업 분할을 막지는 못했지만 노동자들의 조직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투쟁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사측은 지난 17일 국내외 투자자들을 모아 놓고 진행한 기업설명회에서 “대대적인 혁신을 통해 비효율을 줄이고 각 회사가 독립경영체제를 확립해 경쟁력을 극대화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임금·고용·노동조건 등을 “효율화”하겠다는 것, 즉 노동자들을 더 쥐어짜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만성적 수주 축소로 골칫덩이가 된 해양플랜트사업부나 최근 또 하나의 도크 가동이 중단된 조선사업부 등에서는 비정규직 대량해고나 정규직 인력감축 시도가 강화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조합원 수가 적은 전기전자·건설장비 부문에서는 단체협약 파기, 외주화 확대 등이 예상된다. 일부 사업부문은 실적이나 경기 전망에 따라 향후 매각 시도도 있을 수 있다.
이는 노동자들의 조건을 직접 공격하는 문제들이어서 상당한 불만과 저항을 낳을 수 있다. 주주총회 이후 일부 보수 언론과 ‘전문가’들이 이번 분할의 “성공”은 노동조합을 어떻게 제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 이유다.
투쟁의 동력
현재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지속하기로 하고, 구체적 투쟁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지부는 지난달 2월 주주총회의 분할 계획 의결을 막기 위해 22년 만에 전면 파업을 벌이면서 투쟁했다. 이 투쟁에서 파업 참가자들은 깊은 분노와 투지를 보여 줬다.
그럼에도 당시 노동자들은 민주파 집행부 등장 이후 파업 대오가 5천~6천여 명까지 늘었다가 다시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에 갑갑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파업이 실질적 생산 타격을 가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도 곳곳에서 나왔다.
이런 문제는 지난 몇 년간의 투쟁에서 노동자들이 지치고 전망에 확신을 갖지 못한 데서 비롯했다. 노동자들은 민주파 집행부 당선 이후 높은 기대 속에 투쟁에 나섰지만, 노조 지도부가 좀 더 단호하게 투쟁을 이끌지 못하면서 임금이 깎이고 비정규직 신분으로 전락하고(분사화) 비정규직 대량해고가 이어졌다.
특히, 지난해 박근혜 정부가 구조조정 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내분을 겪고 정권 퇴진 운동에 직면했을 때 지배자들의 위기를 이용해 투쟁을 더 발전시킬 기회는 있었다. 현대중공업지부는 지난해 여러 차례 파업을 벌였지만, 아쉽게도 지도부가 공격을 막아 내는 데까지 단호하게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앞으로 기회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권 퇴진 운동이 박근혜를 파면시켰고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정세도 노동자들에게 불리하지 않다.
일각에선 정치권이 ‘경제민주화 법안’ 입법화 등을 통해 사측의 경영승계나 일방적 구조조정 시도에 제동을 걸어 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지만, 설사 이런 법안들이 통과돼도 기업 분할 자체가 무효화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민주당은 그동안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정규직이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왔다. 최근 다시 시작된 2016년 임단협 교섭에서 사측이 올해 1년의 고용 보장을 대가로 임금 20퍼센트 반납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런 입장은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위험이 있다.
노동운동 내 일부 사람들도 ‘정규직의 임금 양보를 대가로 한 총고용 보장(비정규직 포함)’ 주장을 펴곤 한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조선업의 경험은 정규직의 임금 삭감이 비정규직의 고용을 보장하기는커녕 정규직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투쟁의 동력만 갉아먹는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비정규직 해고에 함께 분개했던 정규직 노동자들도 직접 발 벗고 원하청 연대를 실천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현대중공업의 전투적 활동가들은 임금 삭감 반대와 같은 기층 조합원들의 불만을 투쟁으로 결집시키면서, 동시에 앞으로 각기 다른 회사들로 쪼개질 노동자들 사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 단결을 추구하려고 애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