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상한제’ 법 개정 논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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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주당 노동시간을 최장 52시간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큰 틀의 합의를 하고, 3월 국회에서 법안 처리를 논의 중이다.
그동안 정부는 1주일을 7일이 아니라 5일로 유권 해석해, 주말에 휴일근무 16시간을 추가로 허용했다. 최장 68시간 노동을 허용한 것이다.
이에 노동자들이 불법적 행정해석에 반대해 소송을 제기하고, 법원이 ‘휴일근무도 연장근무에 포함된다’고 판결하면서 법·제도 정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한국의 노동시간이 OECD 국가 중 가장 길고 청년실업률이 치솟으면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졌다.
박근혜 정부는 기업주들의 편에 서서 주당 60시간제를, 그것도 상당한 유예 기간을 두고 시행하자는 법 개악안을 추진했다. 여기에는 연장근로에 지급하는 임금 할증률을 낮추고, 탄력근무제 등을 확대하는 내용까지 더해졌다.
그러나 민주노총 등이 반발하고,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위기가 깊어지면서 실제 법 개악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이번 국회 환노위 논의에서도 정부의 개악안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여야는 1주일을 7일로 법에 규정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법조문이 만들어진 2007년부터 시행돼야 했던 것을 10년 넘게 미뤄 온 게 문제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이 불법적 초과 노동에 시달렸다. 2014년을 기준으로 법정 한도보다 더 오래 일한 노동자는 무려 3백57만 명으로 5명 중 1명 꼴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아직도 주 52시간 상한제를 언제부터, 어떻게 시행할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는 점이다. 바른정당 소속의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위원장 하태경은 3백인 이상 사업장에는 2019년부터 적용, 3백인 미만~5인 이상 사업장에는 2021년부터 적용하자는 시행 유예 방안을 주장했다. 하태경은 은근슬쩍 이것이 여야 합의안인 것처럼 발표했다가 야당 의원들의 비난을 샀다.
야당 안에서도 견해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주 52시간 상한제를 조건 없이 즉각 시행하자는 안, 바로 시행하되 2~4년간의 처벌 면제(면벌) 규정을 두자는 안, 면벌 기간을 그보다 줄이자는 안 등이 나오고 있다.
조건 없이 즉각 시행하는 것을 꺼리는 이들은 “현장의 고충”을 핑계로 댄다. 자명하게도 여기서 “현장”이란 기업주들을 가리키는 말로, 10년 넘게 정부 유권해석의 지원을 받아 부담을 피해 온 기업주들을 편드는 논리다. 반면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온 현장 노동자들과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의 고통에는 눈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 등의 일부 야당 의원들이 면벌 기간을 좀 줄이는 정도로 하자거나 ‘현장 실태를 검토해 보면서 지원책을 논의하자’는 식으로 조건 없는 즉각 시행에 물타기를 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물밑 쟁점들
언론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지만 물밑에서 논의되는 쟁점들, 즉 연장근무 할증률, 탄력근무제,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특례 업종 문제 등도 중요한 쟁점들이다. 특히 정부·여당은 그동안 연장근무 할증률 인하, 탄력근무제 확대를 통한 임금 삭감을 관철하려고 애써 왔는데, 2014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하 노사정 소위에서 민주당도 탄력근무제 확대에 합의한 바 있다. 당시 민주당은 일정 기간의 면벌 규정을 두는 것에도 합의했었다.
이번 국회 논의에서 이런 쟁점들이 어떻게 다뤄지는지도 유심히 봐야 할 이유다. 민주노총은 오래전부터 현행법의 즉각 시행뿐 아니라 연간 1천8백 시간 근무제 도입,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적용, 특례 업종과 탄력근무제 폐지 등을 주장해 왔다.
한편, 국회 환노위 간사인 하태경(바른정당)·한정애(민주당) 등은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자리 나누기는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임금을 삭감해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으로, 노동자들끼리 고통분담을 하라는 위험한 신호다.
많은 노동자들이 제 몸과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을 감내하면서 초과노동을 해 온 이유는 기본급이 워낙 낮은 현실 때문이다. 임금 삭감이 없어야 노동자들이 초과노동에 이끌리지 않을 수 있고 일자리 창출의 유인도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동강도도 높이지 말아야 인력 충원의 필요가 생긴다. 따라서 양질의 일자리 확대를 위해서는 임금 삭감과 노동강도 강화 없이 노동시간이 대폭 줄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