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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수급 연령 연장안 논란:
공무원연금 개악을 지렛대로 국민연금도 개악하려는 정부

지난 2월 23일 국민연금연구원은 연금재정 악화를 이유로 국민연금 수급 연령을 만 67세로 늦추고, 보험료 납부도 64세까지 연장하자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마디로 보험료는 더 오래 내고 연금은 더 늦게 받으라는 것이다.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약 50퍼센트)과 자살률(10만 명 당 58.6명) 모두 OECD 1위인 현실에서 말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보고서 내용이 알려지자, 삽시간에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국민연금이 아니라 사망연금이다”, “연금 받기 전에 굶어 죽을 듯”,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해 손실 난 피해를 왜 수급자들이 입어야 하냐”. 그래서 국민연금공단은 당일 오후 추가 자료를 통해 “연구자 개인의 의견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해명해야 했다.

그러나 이토록 민감한 문제를 국책연구기관이 사전 검토와 논의도 없이 ‘정책과제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을 리 없다. 그것도 헌재의 박근혜 탄핵 논의가 막바지에 접어든 시점에 말이다. 정부는 2018년 8월(예상) ‘국민연금 종합운영 개선방안’ 발표를 목표로, 올해 4월부터 ‘재정계산 위원회’(4차 재정 계산)를 구성해 재정 전망과 제도 개선 등의 논의에 들어간다. 이미 2008년(2차)과 2013년(3차) 재정 계산 때 ‘추가적인 재정 안정화는 제4차 재정계산에서 검토키로 결정’한 바 있다.

과거 국민연금 개악이 10년 주기(1998년과 2007년으로, 모두 민주당 정권 시절)로 있었음을 감안하면, 이번에 다시 연금 개악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에 들어간 듯하다. 조기 대선과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군불 때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간 정부는 급속한 고령화와 기금 고갈 위협(재정 안정화 필요) 논리를 내세워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개악해 왔다. 더불어 소득대체율이 매우 낮은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박탈감을 악용해 상대적으로 나은 공무원연금을 공격하고, 그 뒤 다시 국민연금을 개악하는 술책을 부려 왔다.

그래서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악 공격을 할 때 〈노동자 연대〉는 공무원연금 개악을 잘 막아야 이런 악순환을 끊고 국민연금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무원연금이 개악되고 나면 이후에 국민연금 개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당시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악 의지는 매우 단호했으나,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등 노동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개혁주의 지도자들(특히,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을 주도하는)은 정부의 공무원연금 삭감을 수용하는 대신 그만큼 국민연금을 인상하는 ‘개혁’을 추구했다. 이는 완전히 공상적인 프로젝트였다. 실제 현실에서는 연금 정책을 두고 투쟁을 벌이는 두 세력 중 누구도 이런 프로젝트를 추진할 이해관계도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연금 인상은커녕 추가 개악과 더 폭넓은 임금체계 개악을 염두에 두고 공무원연금을 공격했다. 공무원·교사 노동자들은 연금 삭감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연금 삭감도 문제지만 이 전투에서 패배하면 더한층의 공격이 들어올 게 뻔한 상황이었다.

이런 세력 관계를 고려해야 현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연금 개악을 수용하면 공적연금 강화는커녕 개악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뿐이다.

세력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이런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약점을 이용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 ‘논의’라는 미끼를 던지며 공무원연금 개악안 합의를 종용했다. 당시 공무원노조 위원장 이충재가 독단적으로 이 합의안을 받아들였고, 개혁주의 지도자들도 이를 지지했다. 당시 민주노총과 전교조 등은 당연히 이 ‘합의안’에 반대했다. 공무원노조 내부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그럼에도 지도자들의 배신과 양보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주저앉힌 뒤 사회적 기구는 지리멸렬하게 논의를 이어 가다 종료됐다. 애당초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물론 민주당도 국민연금 상향에 진지하지 않았다.

이번 국민연금 수급 연령 연장안 논란도 당시 〈노동자 연대〉의 입장이 옳았음을 보여 준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악 합의안을 지지한 지도자들은 당시의 교훈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뼈아픈 성찰을 하는 것이 양식 있는 행동일 것이다. 공상적 대안으로 노동자들에게 양보하라고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건을 지키려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단호하게 이끄는 것이 진정 책임있는 자세일 것이다. 노동계급 전체의 이익을 위해 단호하게 싸워 승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을 쟁취할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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