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고속철도(SR) 개통 1백 일:
‘경쟁’ 핑계로 인건비 삭감, 외주화 확대 말라
〈노동자 연대〉 구독
3월 18일 수서고속철도(이하 SR) 개통 1백 일을 맞았다. 국토부와 보수 언론들은 SR 개통으로 철도 경쟁체제가 시작됐고, 경쟁이 코레일의 서비스를 개선했다고 주장한다. 코레일이 KTX 마일리지 제도를 부활시키고, 서울역에서 호남선을, 용산역에서 경부선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 SR 개통 덕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를 가지고 ‘개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애초 코레일은 SR 개통 전에 일시적으로라도 KTX 요금을 인하해 보려 했다. 그런데 국토부가 요금 인하는 절대 안 된다고 해서 마일리지 제도를 부활시킨 것이었다. 즉, 국토부가 SR에 경쟁력을 확보해 주려고 KTX 요금 인하를 막아 승객들이 피해를 본 것이다.
또한,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경부선과 호남선을 모두 이용할 수 있게 된 것도 코레일과 SR의 경쟁이 낳은 효과라고 보기 힘들다. 경부선이나 호남선을 타려는 사람이 수서역 근처에 산다면 그는 가까운 SR을 이용하러 가지, 서울역이나 용산역까지 와서 코레일을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용 절감 압박
실제 SR 이용객의 84퍼센트가 접근하기 편리해서 SR을 이용한다고 답했다. 대다수 이용객들은 가까운 역의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지, 코레일과 SR 가운데 경쟁력 있는 철도회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 SR 개통이 코레일에 재정 압박을 가중시키는 빌미가 된 것은 확실하다. SR 개통 이후 코레일의 KTX 이용객 수는 SR 개통 전보다 하루 평균 1만 8천 명 정도(약 10퍼센트) 줄었다. 이를 두고 코레일 사장 홍순만은 SR 개통으로 연간 매출 4천억 원이 줄어든다며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매일경제〉 3월 28일자 인터뷰)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SR 열차 32대 가운데 22대가 코레일이 사용하던 KTX를 빌린 것이어서, 코레일의 열차 공급이 줄어 생긴 손해다. 오히려 전체 철도 이용자 수는 최근 수년간 증가 추세에 있다.
그런데도 코레일 사측은 SR 개통을 빌미로 철도 노동자들에게 비용 절감, 특히 인건비 절감 압박을 강하게 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외주화를 대량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사측은 상반기 내에 열차정비 분야에서 2백61명, 전기 분야에서 2백21명, 시설 분야에서 2백26명을 외주화하겠다고 나섰다.
수도권·부산·호남 철도차량정비단의 외주화 비율은 이미 각각 20, 49, 42퍼센트나 된다. 그런데도 사측은 수도권정비단의 경우 외주 비율을 53퍼센트까지 높이고 최종적으로는 75퍼센트까지 확대하려 한다.
게다가 이미 코레일의 외주 인원은 2010년 6천9백83명에서 지난해 8천1백96명으로 늘었다. 이 과정에서 외주업체 노동자들의 사고도 늘어났다. 2011년 인천공항철도 5명 사망 사고, 2016년 김천역 2명 사망 사고는 모두 외주화로 말미암은 인재였다.
고속열차는 한 번에 1천 명 넘게 타고, 하루 2백50여 회 운행하며, 시속 3백 킬로미터를 넘게 달린다. 고속열차 구간의 75퍼센트는 교량과 터널로 이뤄져 있어 열차 정비와 선로와 시설의 유지보수 업무가 열차 안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도 코레일은 비용 절감을 위해 열차 안전은 내팽개치고 있다. 가령, 철도의 전기시설물 유지보수는 열차가 다니지 않는 야간에 작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코레일 사측은 인건비를 줄이겠다며 야간 정비 인원을 2백77명, 약 13퍼센트나 줄이려 하고 있다. 승객의 생명과 인건비를 맞바꾸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은 철도 경쟁체제 도입 이후 민영화 추진의 일환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 2월 “제3차 철도산업발전 기본계획(2016~2020)”을 발표하며 민영화 강행 의사를 밝혔다.
이는 국토부가 SR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데 반대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민영화로 가는 길
SR이 1백 퍼센트 공적자금으로 설립돼 운영되고 있는데도, 국토부는 SR의 공공기관 지정을 벌써 여러 해째 반대하고 있다.(〈뉴시스〉 3월 29일자)
이는 차후에 SR의 지분을 민간에 매각해 민영화할 계획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KTX의 수익은 무궁화호 같은 일반 열차의 적자를 메우는 데 쓰여 공공성을 유지할 수 있지만, SR은 공공기관이 아니므로 그 수익은 철도 공공성을 위해 쓰일 수 없다.
따라서 코레일과 SR을 통합 운영해 철도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는 철도노조의 주장은 전적으로 옳다. 코레일 사측이 SR 개통을 빌미로 인건비 압박 구조조정을 가하는 데 맞서 싸우는 철도 노동자들의 투쟁이 그들의 임금과 조건을 지키기 위해서도, 민영화를 막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사측은 3월 27일부터 인건비 절감을 목적으로 지난 파업 기간에 채용한 기간제 기관사들의 계약을 연장하며 정규직 인력이 부족한 부분을 비정규직으로 메우고 있다. 이는 운전 분야에도 공세적인 비정규직 확대가 시작됐다는 뜻이다.
또한, 수도권 전동차 열차승무원 노동자들의 경우, 근무일정표(일명 다이아)가 개악돼 더 오랜 시간, 더 강한 강도로 일하게 됐다.
이에 맞서는 것은 철도 노동자 자신의 임금과 노동조건뿐 아니라 철도 공공성을 지키는 데서 중요하다.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는 철도 민영화와 구조조정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