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3년 기억식:
다시 봄이 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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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는 쏟아지는 최루액 물대포를 맞으며 보냈다. 2주기는 비를 맞으며 추모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세월호 3주기에 피해자 가족들은 화창한 날씨에 국민적인 애도를 받으며 3주년 기억 행사를 치렀다. 마침 3년을 기다린 세월호도 결국 건져 올려 육지에 거치돼 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날 경기도 안산 합동분향소의 공식 기억식, 진도 팽목항, 목포신항 등에는 각각 수만 명이 찾았다. 3년간 상징적 공간이었던 서울 광화문광장 남단 세월호광장의 분향소도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공식 합동 분향소가 있는 안산을 찾은 사람들은 30분에서 1시간씩 줄을 서야 하는데도 불평 없이 기다려 분향소에 헌화했다. 분향 대기 줄이 수백 미터였다.
사람들은 희생자 명패에서 이제는 익숙해진 이름과 얼굴을 찾기도 했다. 김초원·이지혜 선생님, 권혁규 어린이 등. 희생자들 앞에 놓은 여러 물건들도 사람들 가슴을 건드렸다. 그 자리를 3년간 지켜왔을 학생들의 학용품과 수첩, 좋아한 연예인 사진, 좋아했던 과자. 갖고 싶었으나 미처 갖지 못한 것들. 그리고 최근에 가져다 놨을 생일 축하 케익 등.
안산 기억식에는 3년 동안 운동에 함께해 왔던 노동조합, 정치단체, 사회단체 회원들, 대학생들도 많이 참가했다. 이들은 행사 전에 안산 시내를 행진하며 세월호 참사 책임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이들은 3주기 전 날인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 22회차 집회와 함께 열린 3주기 집회에도 참가했다.
이런 국민적 애도와 염원 덕분에 (박근혜 일당의 하수인 후보로 나선 홍준표만 빼고) 원내 정당 대선 후보들이 모두 참석해 추모사 등을 통해 진상과 책임 규명, 미수습자 수습 등 피해자 가족들이 요구해 온 바를 제대로 실천하겠다고 공개 약속했다. 이들은 대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의 선거운동에도 각자의 기반과 특성에 맞게 모두 생명과 안전을 강조해야 했다.
이런 변화는 애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 책임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염원이 범국민적 정서였기 때문이다. 이의 표출을 가로막고 정치적 박대를 주도한 박근혜가 쫓겨나자마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참사의 발생과 진실 규명 방해에 얼마나 책임이 크고 사악한 집단이었는지 새삼 보여 준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추모사에서 “어둠의 정권을 끌어내리니 세월호가 올라왔다. … 국민들 마음속의 파면 사유는 세월호”라고 해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정치적 변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 중 하나가 세월호 운동이고, 그 선두가 피해자 가족들이었다.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피해자 가족들과 세월호 참사 책임 규명 운동은 지지와 환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3년 동안 운동의 요구와 염원이 여전히 실종자 수습,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에 머물러 있음도 봐야 한다. 박근혜가 파면되자 급하게 세월호를 끌어올린 해수부도 정작 선체를 온전히 보전해 미수습자 수습과 선체 조사를 제대로 해 내는 것에는 성실하게 임하지 않고 있다. 이미 상당히 밝혀진 진상들에 입각한 책임자가 책임을 지거나 처벌 받는 것도 진척의 거의 없다.(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윗선인 박근혜와 가장 말단 책임자인 해경 123정 정장만 처벌됐다.) 책임자 처벌이야말로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위로의 시작 아니겠는가.
또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박근혜가 쫓겨났는데도 밀린 과제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박근혜도 그 책임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였음을 보여 준다. 이윤 우선 시스템의 문제도 제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책임 규명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 대선 후보들이 세월호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겠다고 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상황이 스스로의 투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 운영 시스템의 문제이므로 집권 후 약속들이 곧바로 이행될 것이라 믿기 힘들다. 해수부 등을 믿을 수도 없다.
따라서 지금 당장에도 그리고 새 정권 아래서도 약속의 이행은 세월호 운동의 힘에 비례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 책임 규명의 성공은 이 운동의 염원인 ‘이윤보다 생명과 안전이 우선인 사회’로 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 3년을 앞두고 벌어진 정치적 변화와 갈등, 염원의 표출은 여전히 앞길이 멀다는 점도, 그러나 목표를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도 모두 보여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