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이 초접전이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자 장뤽 멜랑숑의 급부상이다.

1차 투표를 엿새 남긴 4월 17일 여론조사들을 보면, 나치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중도 에마뉘엘 마크롱, 보수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과 함께 멜랑숑은 불과 6퍼센트 이내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네 명 가운데 누구든 최종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썼다.

멜랑숑은 TV 토론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지지율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 그러나 더 주되게는 수십 년간 보수 공화당과 사회당이 지배해 온 프랑스 정치에 대한 환멸을 좌파적으로 파고든 덕분이다. 그는 대자본가를 비판하고, 평화를 주장하고, 인종차별을 비난하고, 지중해에서 익사한 난민들에게 연민을 나타낸다.

특히, ‘그리스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으려면 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도 열어 놔야 한다’며 유럽연합과의 ‘관계 재설정’을 말하거나, 지난해 통과된 노동개악 철회, 소득 40만 유로(약 4억 8천만 원) 이상 고소득층에 90퍼센트 과세, 나토 탈퇴 등을 주장하는 것에 지배계급들은 치를 떤다.

지지율은 낮지만 반자본주의신당(NPA)의 필리프 푸투도 이번 선거에서 계급에 기초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멜랑숑의 부상은 나치 국민전선이 부상하는 것에 대한 좌파적 반발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동안 멜랑숑이 수차례 소송에 휘말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르펜을 꾸준히 나치라고 비판해 온 것도 높이 살 만하다. 또한 지난해 노동법 개악에 맞선 파업에서 패배한 노동자 계급의 기대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약점도 있는데, 바로 “애국자”임을 강조하며 좌파적 애국주의를 표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세장에서 프랑스 국기를 나눠 주고 프랑스 국가(라 마르세예즈)를 부르기도 한다.

이런 애국주의는 그가 공산당과 동맹하면서 생긴 일이다. 스페인의 포데모스처럼 멜랑숑도 ‘좌파 대 우파’라는 구도와 거리를 두면서 “정화(淨化, dégagisme)”를 표방한다. 지난 대선에서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던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프랑스적 가치’라는 혼란

이처럼, 멜랑숑이 애국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프랑스 공산당이 ‘프랑스의 전통적 가치’를 추앙하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정신을 계승하는 것과 프랑스 국가에 충성하는 것을 혼동하는 데서 비롯한다.

문제는 이처럼 ‘프랑스적 가치’를 추앙하는 것이 무슬림 혐오에 맞서는 데 심각한 약점이 된다는 것이다. 국민전선은 무슬림들이 바로 그 ‘프랑스의 가치’를 위협한다는 거짓 논리로 좌파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마비시키며 성장할 수 있었다. 국민전선에 맞서는 것은 오늘날 프랑스 좌파의 최대 과제이다.

한편 멜랑숑은 프랑스가 난민을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도 말하고, 또 무슬림 혐오 조처에 대체로 반대해 왔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 근거는 인종차별적 조처들이 “현실의 진정한 쟁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정면 승부를 피하는 모양새다.

더욱이 멜랑숑은 오늘날 프랑스가 이슬람주의 위협에 시달린다거나, 모든 프랑스인이 공화주의 가치에 동화돼야 한다는 등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전제 자체에 도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말은 모순되는 경우가 많다. 이주 노동자들에 연민을 나타내면서도 “프랑스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프랑스에서 아랍어를 쓰는 것을 문제 삼기도 한다.

멜랑숑이 결선에 진출한다면 프랑스는 물론이고 전 세계 좌파와 선진적 노동자들을 고무할 것이다. 유럽연합이 긴축을 강요하고 난민을 배척하는 정책들에 대한 좌파적 비판도 더한층 강해질 것이다.

멜랑숑의 급부상은 나치 국민전선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낀 사람들을 좌파적 대안으로 이끌 잠재력이 상당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동시에 민족주의가 아니라 계급에 기초한 대안을 제시할 급진적 좌파의 필요성도 강하게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