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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평화협정으로 평화가 찾아올까?

한반도는 동·서 제국주의 국가들의 개입 속에 전쟁(1950~53년)의 참화를 겪었고, 그 이후에도 냉전의 최전선이었다. 냉전이 끝난 지 거의 30년이 돼 가는 오늘날에도 한반도는 새로운 지형의 제국주의 간 갈등의 한복판에 있다. “모든 선택 사항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는 트럼프의 협박과 무력 시위, 북한의 반발(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은 한국인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신물 나게 겪어 온 일들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평화를 염원해 왔다.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민중의 바람은 우익의 안보 선동으로 쉽사리 꺼질 만한 게 아니다.

진보·좌파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 왔다. 구체적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평화협정 체결을 원한다. 평화협정이 체결돼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한테서 안전보장을 약속받고 한반도가 비핵화되면, 한반도의 긴장이 근본적·항구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평화 조약이 체결된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빈번하게 긴장을 겪고 있으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평화협정 체결을 바라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따라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평화협정 요구에 일시 타협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타협의 목적은 세계 제국주의 체제 하에서는 평화가 일시적일 뿐이고 오히려 군사경쟁과 전쟁이 통칙이라는 것을 설명할 공감대와 기회를 얻기 위해서이다.

바람

평화협정이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를 보장해 줄 것이라는 생각에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다양한 진보·좌파가 내놓은 다양한 청사진의 바탕에는 공통으로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 ‘오늘날 한반도의 불안정은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동역학과 관계 없고 한국 국가가 외교를 제대로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우선 한반도 평화협정의 주체가 될 동아시아 정권들을 살펴보자. 평화협정의 주체로는 대체로 남·북한과 미국과 중국이 거론된다. 그러나 그 협정의 당사자들은 바로 김정은, 시진핑, 그리고 트럼프다!

요즘에는 한반도 문제가 동아시아 전체의 불안정과 연동돼 있음이 매우 분명하기 때문에, 많은 진보·좌파들도 한반도 평화협정·비핵화에 더해 동북아 비핵지대화나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게 평화 체제 구축의 당사자들을 확대해 본들, 푸틴과 아베가 더해질 뿐이다. 진정한 평화 실현에 조금도 득이 되지 않는 사람투성이다.

둘째, 동북아 주요국의 정권들이 이렇게 소름 끼치는 자들로 채워진 건 단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장기화하는 경제 침체와 그만큼 치열해진 경제적·지정학적 경쟁의 결과이기도 하다. 10여 년 전 처음 6자회담을 열었을 때에 견줘, 오늘날 동북아 주요 국가들의 이익 충돌은 더 악화됐다.

동아시아는 지난 30년간 세계화의 물결 속에 역동적으로 성장해,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새로운 중심지로 변모했다. 동아시아 경제들의 상호 의존 관계도 상당히 발전했다. 그러나 경제적 상호 의존은 역설이게도 경제적 경쟁을 수반한다. 기업들은 국제적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려고 자국 국가의 힘에 기댄다. 기업들의 경제적 경쟁이 국가들의 경쟁과 국가 이익의 충돌로 발전하는 것이다. 경제 위기는 이런 추세를 더 악화시킨다.

지난 30년간 세계화의 최선두에서 경제 성장을 이룩한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전통적 형태의 영토 분쟁이 빈번해지는 등 지정학적 갈등과 군비 경쟁이 악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바로 자본주의의 동역학, 그리고 이것에서 비롯한 제국주의 문제가 있다. 단지 특정 통치자의 개성이나 특정 정당의 성격으로 환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정학적 경쟁의 주체들인 동아시아 국가들이 항구적인 평화 정착의 주체가 되리라고 기대할 수가 없다. 엄청난 수준의 군비 경쟁을 벌이는 동아시아 국가들(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남한, 북한)은 모두 지속적 평화를 구축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제국주의는 세계 체제다. 따라서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한반도 문제를 다른 제국주의 국가와의 경쟁이라는 맥락 속에서 볼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국가 간 협상의 결과로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어, 중국 견제에 필수적인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한미동맹을 순순히 해체할까? 평화협정이 한반도 평화 정착의 핵심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이 점을 너무 쉽게 간과한다.

고(故) 리영희 선생은 2005년 9·19 공동성명 직후에 열린 한 토론회에서 미국의 약속을 조금치도 믿을 수 없다는 점을 경고했다. 그 말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잘 기억해야 할 지적이다. “미국이 조약을 단 한 번도 지킨 사례가 없으므로 이 사실로부터 출발해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 문제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판단의 단서를 잡아야 한다. … 북경회담 합의문이라는 종이 조각을 토대로 해서 상황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불균등 발전

설사 우여곡절 끝에 한반도 문제를 놓고 주요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조정돼 평화협정이 체결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레닌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들이 일시적으로 협정을 맺을 수 있지만, 항구적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레닌의 대전제는 자본주의 하에서 발전은 매우 불균등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발전의 수혜자인 강대국들은 나머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의 역동성 때문에 세계 경제력의 상대적 분포가 수시로 바뀐다. 이 때문에 국가 간 힘의 균형도 끊임없이 바뀐다. 따라서 국가들 사이에는 합의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고 레닌은 강조했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도 이런 분석을 적용할 수 있다.

레닌의 지적대로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국가간 합의는 안정적 평화를 이루기는커녕, 순식간에 휴지 조각이 되는 경우가 숱하게 많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지자, 한 프랑스 장군은 냉소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기껏해야 20년짜리 휴전 협정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제국주의 지배자들은 세계대전을 막겠다고 1921년 워싱턴해군군축조약, 1928년 부전조약 등 여러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1930년대 대불황으로 제국주의 국가들이 재무장에 착수하고, 1939년 제2차세계대전으로 내달리면서, 그 합의들은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됐다.

한반도에서도 형식상으로는 평화협정은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국가 간 합의로 한반도의 긴장을 누그러뜨리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합의는 새로운 긴장 고조의 전주곡이었음이 번번이 입증됐다.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1993~94년 한반도 위기를 막지 못했다.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향한 가장 진전된 합의라고 평가받았던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과 2005년 9·19 공동성명도 미국의 대북 압박 강화를 막지 못했고, 2006년 북한은 처음으로 핵실험을 감행했다.

개혁주의

국내 좌파들도 대부분 평화협정 체결을 강령의 한 요소로 채택했다. 그래서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과 “현 정전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전환”하는 투쟁을 병행한다고 한다.

아직까지 정식으로 평화협정이 체결된 적이 없어 그 한계가 대중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노동자·민중의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투쟁’과 평화협정 요구 투쟁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평화협정 운동은 여타의 급진적 운동(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반대)를 결합시켜도 결국 현존 제국주의 체제 하에서 평화 공존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협정의 주체에 제국주의 국가들이 포함돼 있고, 그들한테서 평화를 보장받는 게 평화협정 체결의 요체인 것이다.

평화 공존은 실현되기 어려운 길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 후퇴하기 십상인 길이기도 하다. 과거 제3세계 민족주의 정권들이 제국주의에 맞서다가도 결국 타협을 모색하게 된 까닭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서방 진영 안에서 “평화공존”론은 자국 정부가 평화 공존을 받아들이도록 (계급투쟁이 아니라) 계급을 초월해 단결하자는 개혁주의 정치에 더 부합했다.

따라서 평화협정 같은 외교 중심 접근법을 비판적 문제의식 없이 수용할수록, 좌파 단체들도 온건 개혁주의자들처럼 6자회담이나 북·미 또는 남·북 회담의 성사와 지속 그리고 그 안에서 한국 정부의 적극적 구실을 촉구하는 수준에 멈출 수 있다.

과거에 많은 활동가들이 평화통일 운동을 대중적으로 벌이다가도 국가 간 협상이 벌어지면 수동적 관찰자나 응원자 구실에 머물곤 했다. 그래서 정부에 정책 조언을 하다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직접 부르주아 개혁주의 정부에 들어가는 길을 선택한 통일 운동가들이 있었다.

좌파가 평화협정 요구와 운동을 진지하게 자신들의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노선에 접목시키려 하면 할수록, 결국 체제 인정 논리가 스며들 여지가 커진다. 평화 문제에서도 로자 룩셈부르크가 그토록 강조했던 “개혁이냐, 혁명이냐”는 중요한 것이다.

한편 “적극적 평화주의”를 표방하는 일부 좌파는 평화협정 요구를 당면 과제로 채택하는 데 회의적이다. 평화협정이나 상호 군축 협상이 “군비를 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군비 증강의 변명이나 눈가리개로 주로 기능했다”고 옳게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한 1970년대 서유럽 평화운동의 경험에서 배워, 평화운동이 “일방주의적 군축, 즉 자국 정부가 단독으로 취하는 군축”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핵무장을 옹호하는 진보 일각의 태도나 한미동맹의 핵우산을 인정하는 일부 개혁주의자들의 태도에 견줘, 이런 주장에는 분명 장점이 있다.

그러나 1970~80년대 서유럽 평화운동에는 약점이 있었다. 핵무기 공포에 놓인 모든 합리적 대중이 계급을 초월해 단결하면, 군축에 성공해 핵무기 없는 자본주의가 가능하다고 봤던 것이다. 특히,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이 반제국주의 운동에서 할 수도 있는 중심적 구실을 기각했다.

오늘날 한반도 불안정이 자본주의의 동역학에서 비롯한 문제임을 아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반제국주의 운동이 반자본주의 운동과 융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윤 체제인 자본주의를 마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회 세력, 즉 노동자 계급이 중요하다. 자본가들은 거의 모든 일에서 노동자들에 의존하고, 전쟁도 예외가 아니다. 항구적 평화가 실현되려면 바로 이 부분을 파고들어야만 한다. 평화협정 운동은 그 외면적인 매력에도 불구하고 본질적 한계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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