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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단축 논란:
노동조건 후퇴 없는 온전한 주 40시간제를 시행하라

2015년 한국의 노동시간은 연간 2천2백73시간으로 OECD 국가들 중 최고다. OECD 국가 노동자들의 평균치와 비교하면 한국 노동자들은 연간 두 달을 더 일하는 것이다. 과로사의 기준인 주 60시간 이상을 일하는 노동자도 1백13만 명이나 된다.

더 심각한 것은 2013년 이래로 소폭이마나 단축되던 노동시간이 최근에 되레 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 위기가 지속되자 사용자들은 고용을 늘리지 않고 기존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늘려 착취율을 올리려 하는 것이다.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라야 일자리 확대와 실노동시간 단축 효과를 낸다

그럴수록 노동자들의 삶은 피폐해진다. 장시간 노동은 질병과 재해 위험을 높이고 정신 건강에도 해롭다. 장시간 노동이 사망률, 심혈관질환, 당뇨병 등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한 연구 결과를 보면, 노동시간 단축이 주는 기쁨은 승진했을 때와 같은 수준이라고 한다.(2016년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노동시단 단축 효과 평가 연구)

노동시간은 가족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여가 시간은 노동자들이 사회 활동과 정치 활동을 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재충전의 필요 때문에 가장 먼저 줄이는 시간이 문화·정치 활동이다.

선결 조건

이런 이유들 때문에 마르크스는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하나의 선결 조건이다. 그 조건 없이는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모든 시도와 노동자 해방은 실패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최근 유력 대선 후보들이, 진정성과 내용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두 노동시간 단축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광범한 사람들이 이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방증한다. 물론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한 근로기준법 개악안을 추진한 정당의 후보들인 홍준표와 유승민의 공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긴 어렵다. 안철수가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근로시간계좌제’ 같은 탄력근로제를 제시하는 것도 위험하다.

문재인 후보도 주 40시간제가 아니라 주 52시간제를 실시하겠다고 해 노동시간 단축 공약 치고는 꾀죄죄하다. 심상정 후보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주 68시간 행정지침이 버젓이 시행된 점을 꼬집으며 노동시간 단축 의지가 있는지를 물은 것은 타당하다. 심상정 후보는 40시간제를 즉각 전면 시행하고 2022년 이후 주 35시간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혀, 다른 후보들에 견줘 훨씬 진보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싸고 첨예한 논란들이 벌어지고 있다.

장시간 노동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법률과 제도를 고수하는 사용자들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정책 때문이다.

예컨대 노동자 셋 중 하나는 주 40시간제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5인 미만 사업장과 여러 직업에 법 적용이 제외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는 1주일이 5일이라고 억지부리며 12시간으로 제한한 연장근로에 휴일근로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를 통해 주 68시간(주 40시간+주 12시간 연장근로+16시간 휴일근로)까지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2003년 한국에 주 40시간제(노사 합의 시 주 12시간 연장 노동 가능)가 도입됐지만, 2015년 현재 노동자의 절반 이상(54.2퍼센트)이 실제 주 40시간을 초과해서 일한다. 52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자도 3백45만 명(17.9퍼센트)에 이른다.

현재도 노동시간 단축 논란은 온전한 주 40시간제 시행을 가로 막는 조처들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사용자들과 이들의 이익을 대변해 온 정부는 주 40시간제를 지키지 않아도 면벌할 수 있는 기간 설정, 52시간 외에 8시간의 추가 노동 허용, 연장 노동 중복 할증률 낮추기, 탄력근무제 확대 등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 효과를 최소화하고 노동시간 유연화를 늘리려 한다.

이런 쟁점들 때문에 지난 3월 국회에서 노동시간 단축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논란 끝에 처리되지 못했다.

심지어 최근 경총이 발표한 ‘신정부에 바란다, 경영계 정책건의서’에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자면서 고임금 노동자에 대한 ‘근로시간 적용제외제도’를 도입하자는 내용도 있다.

이런 사용자들의 반발 때문에 새 정부 하에서도 노동시간 단축 추진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면 새 정부의 ‘개혁성’이 시험대에 오를 것인데, 이럴 때 노동자들이 독자적으로 투쟁에 나서야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금, 노동조건 후퇴 없어야

또한 노동시단 단축은 일자리 확대 방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현행법을 강제해 연장근무 시간을 주 12시간으로 제한하고 법 적용 예외인 특례조항만 없애도, 새로운 일자리 62만 개를 만들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더 나아가 실노동시간을 주당 48시간으로 제한하면 일자리 1백5만 개를 만들 수 있다.

일자리 부족으로 고통받는 청년들과 장시간 노동에 허덕이는 노동자들의 처지 개선을 위해 노동시간 단축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효과를 내려면 임금과 노동조건 후퇴가 없어야 한다. 물론 장시간 노동, 특히 교대제와 야간근무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임금 일부가 삭감되더라도 노동시간이 줄고 휴일이 늘어나길 바랄 수 있고, 이는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동안 기본급이 낮은 임금 체계 때문에 노동자들은 초과근로 수당으로 부족한 임금을 벌충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 삭감을 동반한 노동시간 단축이 추진되면 노동자들은 처지 악화를 수용하거나 또다시 초과 노동에 매달리게 만드는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다. 따라서 기본급이 대폭 올라야 하고 임금 총액이 줄어선 안 된다. 과거 경험을 봐도, 1989년 44시간제가 도입될 때나 2003년 40시간제가 도입될 때는 임금 삭감을 수반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동시간 단축은 임금과 고용, 삶의 질에 긍정적 효과를 냈다.

노동강도 강화를 막는 것도 중요하다. 시간이 줄어도 노동강도가 강화되면 근무가 끝나도 녹초가 돼 여가 시간을 제대로 누릴 수도 없게 된다. 게다가 사용자들이 노동강도를 높여 기존의 생산량을 채우면 굳이 고용을 늘릴 필요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 정당의 대선 후보들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보전이나 노동조건 유지를 말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 가장 유력한 후보인 문재인은 이미 사회적 대타협론을 내세우며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도 책임을 나눠야 한다거나 소수의 ‘귀족노조’가 문제라고도 말한다.

심상정 후보는 문재인 후보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삭감 문제에 관해 기업의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가 기업 책임을 더 강조해 말하는 것은 옳다. 다만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 고임금 노동자’들도 함께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도 말하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고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은 바로 다른 노동자의 임금 수준에도 영향을 미쳐 결국 전반적으로 임금 하향 압박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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