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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
민족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공상으로 고대사를 지어내다

역사 연구에서 상상력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사료의 빈 부분이 많은 고대사나 상고사 연구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역사적 상상은 일반의 상상과 그 성격이 다소 다르다. 역사적 상상은 증거에 입각한 상상이다. 증거가 빈약하거나 증거로 제시된 것들의 신뢰도가 박약할 경우 그것은 역사가 아니다. 박경순 씨(이하 존칭 생략)의 신간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가 그렇다.

박경순은 처음부터 ‘단군릉’에 대한 북한 측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옮기는 데 급급하다. 더 나아가 고조선이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 고고학계의 무리한 주장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비판받아 왔다. 박경순은 이를 그저 “막연한 의심에 기초한 회의론”이라 치부하며 무시한다.

설령 이런 주장들을 일부 수용한다고 할지라도 그가 그리는 고조선의 상은 허황되기 그지없다. 그가 드는 문헌 증거는 《규원사화》, 《단군세기》 같은 것들이다. 모두 위서이다. 게다가 일제의 대동아공영론과 신도(神道, 일본의 고유 신앙)를 단군신앙과 결부시키려는 시도가 유행했던 1930∼40년대에 유포된 자료들이다.

고조선 사회가 노예제 사회였다고 단언하는 것도 황당하다. 노예제 사회는 공화정 말기∼제정 초기 시기 로마처럼 노예가 생산의 주축을 담당하는 사회이거나, 적어도 고대 그리스처럼 지배계급이 향유하는 잉여가 노예에 의해 생산되는 사회다. 그러나 고조선 사회가 그런 사회였다는 근거는 없다. 마르크스는 ‘원시공산제-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라는 정식에 세계사 전체를 끼워 맞추려고 시도한 바가 없다.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 박경순 지음, 내일을여는책, 404쪽, 18000원

민족주의

박경순은 상상 속 ‘고조선’을 통해 자신의 민족주의 사상을 강조하고자 한 듯하다. 그 과정에서 계급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관점도 드러난다.

박경순은 민족이 “핏줄, 언어, 문화, 지역의 공통성에 기초해서 오랜 역사적 기간에 걸쳐”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 민족은 “하나의 족(ethnos, ‘겨레’)”으로 구성된 단일 민족이다. ‘단일 민족’인 한국 민족의 기원은 구석기·신석기 시대로까지 끌어올려져 설명된다. 언어적·문화적으로도 한국 민족은 단일한 구성체라고 그려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원전 30세기(!)에 존재했던 고조선이라는 중앙집권국가가 민족 형성의 정치적 계기가 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수십만 년 전 끊임없이 이동 생활을 하던 구석기인에게서 한국인의 혈연적 정체성을 찾겠다는 것은 황당한 발상이다. 또 고조선이 중앙집권국가였다는 문헌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설령 이 같은 황당한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중앙집권국가의 존재 자체가 민족주의 형성의 직접적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민족주의가 성장한 것은 고대가 아니라 19세기 개항으로 조선이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편입되고, 러일전쟁 이후 일본 제국주의가 본격적으로 대한제국 강점을 시도하면서부터다.

박경순에게 민족 국가란 계급 대립의 중재자다. 그는 상상 속 ‘고조선’에 자신의 희망을 투영해 그럴듯한 내러티브를 만들기까지 한다. 이는 고조선 사회가 ‘노예제 국가’였다고 보는 자신의 주장과 모순되는 부분마저 있다.

“단군이 출생하던 시기는 … 계급적 모순이 심화되어 가던 시기였다. … 단군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추장이 된 후 원시적인 정치 기구들을 점차 계급 간, 종족 간 대립을 억제하기 위한 권력 기구로 재편해 나갔[다.]”

그러나 오히려 국가의 본질이 “계급 적대감의 화해 불가능성을 나타내 주는 것”(레닌)이라고 볼 수 있는 증거가 더 많다. 고조선 사회의 생활상을 알려 주는 8조법 관련 기사(《한서》 지리지)는 고조선이라는 정치체가 지배계급의 편에서 계급 제도의 관리자 구실을 했음을 보여 준다.

8조법

오늘날의 경제 위기는 세계적이다. 그리고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려는 지배계급의 노력도 세계적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국제주의는 오늘날 더더욱 필요하다. 같은 한국 민족인 이재용과 한국 노동자들 사이의 공통점보다, 오히려 바다 건너 미국·일본 노동자들과 한국 노동자들 사이의 공통점이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자민족의 우월성과 순수성을 내세우는 것은 노동계급의 국제주의와 상충할 뿐이다. 이런 시기일수록 좌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족보다 계급 분열이 더 근본적이라는 사실을 폭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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