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문재인 앞에 던져질 트럼프의 초고액 청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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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사드의 핵심 장비들이 성주로 들어갔다. 대선 기간에, 그것도 전날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대선 후보들이 사드 문제로 공방을 벌인 지 불과 12시간도 되지 않은 때에 말이다.
이로써 문재인은 집권하자마자 사드 배치가 일으킨 지정학적 파고에 직면하게 됐다. 사드가 배치돼 중국·러시아·북한의 대응과 미국의 추가 조처가 맞물리면서 한반도를 두고 제국주의 간 갈등이 악화할 것이다.
성주에 배치된 사드는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의 핵심 무기이고, 사드 배치로 한국은 (2012년 한국 국방부가 스스로 밝힌 기준에 따르면) 사실상 미국 MD에 편입된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는 사드 배치를 전후해 한국의 MD 편입을 노골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4월 26일 미 태평양사령관 해리 해리스는 “완전히 통합된 탄도미사일방어체계 구축을 목표로 일본, 한국, 호주와 함께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히며 중국이 MD의 타깃임을 분명히 했다.
MD 편입을 공식화함으로써 한국 정부의 더 많은 기여와 협력을 요구하려는 것이다. 그중에는 SM-3 미사일 등 더 많은 MD 자산의 도입이 있을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한·미·일이 동일한 목적을 위해 하나의 국가처럼 [중국을 겨냥해] 공동의 작전을 실행할 수 있는 공동방위”(정의당 김종대 의원의 지적)이다. MD는 한·미·일의 다자 협력 체제를 발전시킬 중요한 수단이다.
사드의 성주 배치 이후 한·미·일의 정보 공조 체제가 구축되면, 지휘·통제의 일원화가 그다음 수순이다. 즉, “한·미·일의 미사일방어 작전을 지휘·통제하는 단일 지휘관이 출현할 날도 멀지 않았다.”(김종대) 사드 배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한일 ‘위안부’ 합의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된 문제라고 봐야 하는 까닭이다.
트럼프는 문재인 정부에 확실한 군사비 분담도 요구할 것이다. 한국이 사드 비용 10억 달러(약 1조 1천3백억 원)를 내야 한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단지 일회성 돌출 행동이 아니다. 트럼프는 동맹국이 군사비에 더 많은 돈을 써서 미국의 부담을 덜어 줘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그래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소속 국가들에게 GDP 대비 2퍼센트까지 군사비를 증액하라고도 촉구했다.
4월 30일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맥매스터는 “어떤 경우에도 내가 미국 대통령의 말을 부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트럼프의 ‘10억 달러’ 주장을 옹호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한국 등 동맹국의 “적절한 책임 분담”을 언급했다. 즉, 미국은 사드 비용,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 국방비를 대폭 증액해 한국이 미국 주도의 “집단 방위”(맥매스터의 표현)에 더 많이 ‘기여’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트럼프 정부는 사드 배치 강행을 시작으로 한·미·일 동맹 강화, 국방비 증액 등 까다롭고 비싼 청구서들을 문재인 정부에 들이밀려고 한다.
미·중 갈등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은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중국 등 주변국과의 협력적 관계도 유지한다’는 ‘모범 답안’을 얘기해 왔다. 이런 노선은 전임 정부들도 천명해 온 것이다. 전임 정부들 하에서 이는 결국 한미동맹 강화로 귀결돼 왔다. 박근혜도 처음에는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뜸 들이다가 임기 후반부로 갈수록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협력하는 것으로 치달았다.
문재인은 “동북아 책임공동체” 형성, 중국과의 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언했다. 동시에 한미동맹이 “혈맹”이자 외교·안보의 기축이라고도 강조한다. 외교·안보 정책 안에 서로 상충하는 요소들이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악화해, 한국의 처지에서는 운신의 폭이 많이 좁아진 상태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중국과의 협력적 관계 유지와 트럼프의 대외정책 협력 사이에서 고심하다가 결국 미국에 타협할 공산이 크다. 한국 국가를 책임진 처지에서, 미국의 패권이 유지되는 한 한미동맹을 통해 ‘국익’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한국 지배계급의 요구를 외면하기 힘들 것이다.
이것이 문재인이 ‘사드 배치 철회’를 한사코 얘기하지 않고 차기 정권에서 검토할 문제라고만 하며 국회 논의와 동의 절차를 강조하는 까닭이다. 물론 이미 사드가 들어온 마당에 국회 논의는 시간만 오래 걸리고 별 소용도 없는 사후 약방문 꼴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최악의 경우, 국회 동의 절차는 사드 배치를 사후 정당화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남북 관계와 ‘자주 국방’
남북 관계에 관해서도 문재인 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렇게 “굳건한 한미동맹”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대북 압박과 남북관계 개선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동맹만 강화하며 임기를 마칠지 모른다.
또한 문재인은 ‘자주 국방’을 강조하며 GDP 대비 현 2.4퍼센트 수준에서 3퍼센트로 국방비를 늘린다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4월 27일 방송기자클럽 토론). 그런데 ‘자주 국방’을 위한 국방비 증액은 트럼프 정부의 ‘책임 분담’ 요구와 맞물린다. 한미동맹 하에서의 ‘자주 국방’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문재인이 제시한 목표대로 국방비를 증액하려면 임기 말까지 현 수준(40조 원)에서 15조 원가량 더 늘려야 한다. 그래도 미국이 내심 원하는 미국 수준의 국방비 지출 수준(GDP 대비 3.3퍼센트)에는 못 미친다.
김종대 의원은 2010년 출판된 한 저서에서, 자신이 청와대 국방보좌관실에서 일했던 2004년 당시 노무현 정부가 ‘자주 국방’을 위해 정부 전체 예산 증액분의 80퍼센트를 국방부에 줬다고 술회했다. 그 바람에 “적어도 복지로 편성하려던 예산 중 1조 5천억 원이 국방비로 넘어갔다.” 그때에 견줘 경제성장률이 떨어져 재원 마련이 더 어려워진 오늘날, 국방비를 대폭 늘릴수록 복지와 일자리 마련에 쓸 돈은 더 줄어들 것이다.
정권 교체는 한반도 평화 체제 실현의 전기가 되지 못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 등에서 미국에 타협한다면, 평화를 바라며 투표소로 향했을 많은 민중이 크게 실망하고 분노할 것이다.
좌파는 문재인 정부의 친제국주의와 친군국주의 정책에 반대해야 한다. 사드 배치 즉각 철회 운동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