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
노무현 정부의 여성 차별을 돌아보건대
문재인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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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여성 내각 인선이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여성단체들도 문재인이 남녀 동수 내각 공약 실현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며 환영했다.
반면 어처구니없게도 일부 성 보수주의자들이 여성 내각 인선을 두고 ‘과잉여성우대’라는 둥, ‘역차별’이라는 둥 볼멘소리로 흠집을 내고 있다. 체계적인 여성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기업, 정당, 정부 기구 요직에 여성 참여를 보장하는 것은 최소한의 필요한 조처다. 숨막히는 차별이 다수 여성들의 삶을 지배하는 현실을 볼 때, 유리천장을 돌파한 상징적인 여성들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진보적 여성단체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성주류화 전략을 본격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 크게 고무된 듯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은 “문재인 대통령이 진정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젠더관점을 가진 여성 인재 등용”을 촉구했다(5월 16일자 성명). 보수정권 9년 동안 성평등과 여성의 삶이 악화했던 암담한 과거를 반추하며, 개혁적 여성 인사들이 내각에 대거 발탁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오랫동안 여성 차별에 맞서 노력해 온 진보적 여성단체들은 촛불 운동 덕분에 당선한 문재인 정부에게 성평등 정책을 이행하라고 요구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진보적 여성 단체들이 문재인 정부와의 ‘젠더 거버넌스’를 지향하며 성주류화 전략을 강화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성주류화란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동등하게 참여하고 의사결정권을 갖는 것”을 뜻하는 개념이다. 주로 여성 정치인·관료 늘리기, 여성 관련 부서 설치, 성차별적 법·제도 개선, 성인지 통계·예산 책정 실현 등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성주류화 전략을 통해 여러 차별적 법·제도가 개선됐다.(2005년 호주제 폐지가 대표적이다.) 이것은 사회 전체에 성평등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그럼에도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이 국가 요직을 차지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실질적 성평등과 노동계급 여성의 삶의 조건 개선이 보장되지 않다는 것은 거듭 입증돼 왔다. 한국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경험이 이를 잘 보여 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적극 추진된 성주류화 전략의 성적표는 초라함을 넘어 실망스러웠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첫 내각에 4명의 여성 장관들을 발탁했다. ‘여성계 최대 경사’로 칭송 받을 정도로 획기적인 인사였다. 장관 4명 중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인권변호사 출신이었고, 한명숙 환경부 장관(2006년에는 최초 여성 국무총리로 임명됨)과 지은희 여성부 장관은 여연과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를 지냈던 ‘베테랑’ 여성운동가들이었다.
당시 진보적 여성단체들은 노무현의 여성 장관 임명을 크게 환영하며 여성 장관들을 위한 “서포터즈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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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입각한 여성 장관들은 이런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 한명숙과 면담하러 간 KTX여승무원 해고 노동자들이 처절하게 연행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한명숙은 미국 패권 확대 정책인 평택미군기지 이전도 노무현을 도와 추진했다. 당시 한명숙은 평택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대를 군·경 합동 진압으로 짓밟았다. 진압과 연행 과정에서 여성 시위대에 대한 끔찍한 성추행도 벌어졌다. 당시 진보·좌파 단체들은 “폭력 진압과 성추행이 한명숙 여성 총리의 첫 작품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명숙은 한미FTA 반대 시위대에 대한 강경 탄압을 지시했고, 시위에 가담한 시민단체들에 대한 보조금을 중단하라고도 지시했다. 당시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에는 한명숙이 대표로 역임했던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민우회를 비롯한 많은 여성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한명숙은 이라크 파병안을 찬성하고, 노무현의 비정규직 확대 법안을 지지했다. 노무현 정부의 친기업·반노동자 정책은 평범한 여성들의 삶을 가난과 빈곤으로 내몰았다.
강금실은 1년 5개월의 법무장관 재직 기간에 4백21명의 노동자·학생을 구속했다. 그중 국가보안법 관련 구속자도 98명에 이른다. 2004년 석가탄신일 특사 때 대북송금 사건으로 구속된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대거 사면했지만, 양심수는 단 한 명도 풀어주지 않았다. 또한 살인적인 강제 추방으로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2006년 서울시장 후보였던 강금실은 “강남을 아름다운 부촌으로” 만들겠다고 부유층의 환심을 사려 애썼다. 반면 절박한 심정으로 강금실 선거운동 사무실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KTX여승무원 노동자들은 강금실한테도 외면당했다. 강금실은 폭력적인 경찰 진압을 수수방관했다.
성주류화 전략의 모순
한명숙과 강금실의 부상을 성주류화 전략의 ‘성공’으로 여기며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그들의 행보에 크게 실망하며 혼란을 겪었다. 그래서 “여성정치세력화를 여성 정치인으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 있는 문제제기가 나오기도 했다(《함께가는 여성》, 2006년 5·6월호, 한국여성민우회 발간, “강금실·한명숙 여성 리더십 특집”). 하지만 아쉽게도 여성 개인 정치인의 문제를 넘어 성주류화 전략에 내재된 모순과 한계를 근본적으로 돌아보지는 못했다.
노동계급 여성의 삶을 진정으로 개선하는 데서 성주류화 전략은 명백한 한계를 보여 줬다.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뚫고 사회 상층부로 올라가는 것만으로는 체계적인 여성 차별을 해결할 수 없다. 여성들에게 집안일과 양육을 떠넘기고, 저임금과 저질 일자리를 강요하는 본질적으로 여성차별적인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 참여한 여성 지도자들의 실패는 개인의 ‘젠더 의식’이 불철저해서가 아니었다. ‘여성주의’ 여성 정치인이 국가를 운영한다 해도, 이윤 추구에 결박된 자본주의 국가의 이해관계를 거스르며 일관되게 도전하기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국가는 착취와 억압을 위한 계급 지배의 수단이지, 결코 중립적 기구가 아니다. 성주류화 전략의 한계는 여성차별적 체제의 핵심적 일부인 자본주의 국가를 성평등 실현의 주체로 삼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다.
여성 의원이나 관료가 늘어나도 그들이 국가를 견인하기는커녕 되려 이윤과 국가의 포로가 되어 개혁 염원 대중을 배신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소수 여성의 ‘국가 기득권 나눠 갖기’는 노동계급 여성이 겪는 불평등과 경제적 고통을 해결하지 못한다.
따라서 여성·남성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으로 여성차별적 체제에 균열을 내고 성적·계급적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심각한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에 직면한 문재인 정부와 ‘신선한’ 내각 인사들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곧 노동계급을 공격할 게 뻔하다.(관련기사: 최일붕, ‘문재인 정부 초기 사회주의자들 앞에 놓인 전망’)
그런 면에서 진보적 여성단체들이 문재인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며 정부와의 “협치 강화”와 ‘젠더 거버넌스’를 추구하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진보적 여성단체들은 문재인이 꾀죄죄한 성평등 공약이라도 제대로 이행하라고 요구하되, 이조차 공수표로 만들 때는 가차없이 비판하고 독립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무엇보다 최저임금 1만 원 즉각 실현, 여성노동자 임금 인상으로 성별 임금격차 해소, 시간제 일자리 반대, 국공립보육시설 대폭 확충, 낙태죄 폐지 등 평범한 여성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요구와 투쟁들을 지지하고 조직하는 것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