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드배치 거짓과 진실》(고영대 지음, 나무와숲):
유용한 폭로 속 몇 가지 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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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공동대표인 고영대 씨(이하 직함 및 존칭 생략)가 지은 책으로, 사드 배치의 부당성을 요모조모 짚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읽어볼 만하다. 사드 배치 옹호론을 반박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여러 쟁점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고영대는 사드 개발의 배경인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의 역사를 짚는다. 그에 따르면 사드는 냉전 해체 이후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 미국의 군사적 패권을 지키기 위한 MD 구축이라는 장기적인 계획의 일부다. 이 책은 특히 일본이 미국과의 MD 연구개발에 참여한 역사를 언급하면서 미일동맹이 사드 배치의 결정적 배경임을 논증한다.
이 책에서 고영대는 미국의 MD 전문가 포스톨 교수의 증언을 비롯해 다양한 근거를 제시해 사드가 무용지물임을 밝히려 한다. 이 밖에도 미국 미사일방어청(MDA)과 한국국방연구원의 연구 결과물, 미국 국방부의 ‘동아시아 MD 구상에 관한 보고서’, 한반도 지리적 특성에 관한 각종 보고서 등을 제시해 사드가 ‘군사적 효용성’이 없다고 폭로한다. 이 책을 읽노라면 군사 관련 보고서와 연구결과들을 꾸준히 다뤄 온 저자의 꾸준한 연구 조사 과정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다만 “[사드 레이더는] 진짜 탄두와 가짜 탄두 구별 불가능”(74쪽)과 “사드 레이더 진짜 탄두와 가짜 탄두 식별 가능”(98쪽) 같은 명백히 상충되는 주장이 책에 실린 것은 옥에 티다.)
‘동북아 및 전 세계 MD 체계 구축’을 다루는 5장에서는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려는 이유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한국에 배치되는 사드 레이더는 중국과 가장 가까운 지역에 설치되는 것으로, 미국의 동북아 MD의 핵심 센서”로서 “사드 성주 배치에 이어 서·남해나 제주 등에 두 번째 사드 레이더가 배치될 가능성”(101쪽)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고영대는 “한국 사드 배치가 단지 무기 체계 하나를 도입하는 문제가 아니며”, “한국과 미국의 일개 정권 차원에서 정략적으로 추진하는 일시적이고 전술적인 사안도 결코 아니”(113쪽)라고 강조한다. “세계 패권을 유지·강화하려는 미국의 국가적 이해와 군사전략에 따라 강고하고도 집요하게 추진되고 있는 지역적 지구적 차원의 전략적 사안”임을 강조한다. ‘사드 배치가 미 국무부 내에서 통일된 입장이 아니다’는 진보 일각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 책의 최대 강점이라 하겠다.
이견
동시에 이 책에는 사드 배치를 둘러싼 진보·좌파 내의 쟁점들을 담고도 있다. 생각해 볼 거리가 많다.
첫째, 고영대는 한국의 사드 배치로 냉전 시대를 능가하는 “미국, 일본, 한국, 호주” 대 “북한 중국, 러시아 간의 군사적 대결 구도가 형성”(112쪽)된다고 우려한다. 사드 배치가 신냉전의 신호탄이라는 시각이다. 사드 배치가 동아시아에서 강대국 간 대립과 갈등을 악화시키라는 점에선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진보·좌파 일각의 ‘신냉전론’은 중국을 제국주의로 보지 않고, 평화협정과 한반도 비핵화를 대안으로 삼는다는 점 등의 약점이 있다(관련 기사). 그래선지 이 책에서 중국의 군비증강에 대한 비판은 찾아볼 수 없다.
둘째, 고영대는 한국 MD 체계가 나토 통합 MD나 미·일 통합 MD 체계 등에 견줘 “훨씬 더 대미 종속적 체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138쪽). 한국 MD 자산이 대부분 남한 방어가 아니라 미국과 일본 방어에 쓰이고, 작전통제권도 미국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또한 미국 방어를 위한 상층 방어 포함 여부뿐 아니라, ‘한·미 사드 배치 합의’가 합의 방식 면에서도 미국이 다른 국가와 맺은 MD 배치 합의들과 질적으로 구별된다고 강조한다. 미국·폴란드, 미국·루마니아 MD 배치 합의 서명 주체는 정부였지만, 한·미 사드 배치 합의 서명의 주체는 국방부 국실장에 불과(206쪽)했다는 언급이 그 사례에 해당한다. 저자는 올해 3월 국회토론회 때부터 줄곧 이 점이 사드 배치의 불법성과 무효성의 주요 근거라고 주장해 왔다.
한·미 합의가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점은 당연히 폭로해야 하는 일이고, 이런 폭로가 운동 건설에 유용할 때가 많다. 그러나 폴란드와 루마니아의 사례를 대안처럼 강조하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이 두 사례 모두 자국 내 “미국 MD 기지에 대한 사법주권적 관할권을 행사”(207쪽)한 것이었다 해도 결국 MD 기지 아닌가. 유럽 MD 배치는 미국과 러시아 관계를 악화시킨 최대 이슈였다. 옛 소련 시절 건설된 루마니아 데베셀루 기지에 미국이 유럽 MD 체계에 포함되는 SM-3 요격미사일과 이지스 레이더 시스템 등을 배치함으로써 유럽과 러시아, 미국 간의 군사적 긴장 수위는 높아져 왔다.
‘한·미 합의가 법적 근거 없음’을 일면적으로 너무 강조한 나머지, 저자는 합의 주체를 제대로 하고 국회 동의 절차를 밟으라는 주장도 한다. 그러다 보니, 언뜻 보기에 사드 배치 철회를 일관되게 주장하는 게 맞나 싶은 대목마저 등장한다. “주한미군 사드 배치 관련 한·미 합의를 조약으로 체결해 국회 동의를 밟게 한다면, 국가주권 침해와 비용 부담 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209쪽) 그러나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밟아 미국이 비용 부담을 하는 등 문제점을 최소화하면 사드 배치를 과연 용인할 수 있는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존중한 나머지, 저자 자신의 사드 배치 반대론과 모순되는 주장을 내놓고 불필요한 타협의 여지까지 주게 되는 듯하다.
사드 배치 과정에서 드러나는, 한미동맹의 지극히 불평등한 현실을 보면서 분노하는 건 당연한 정서일 것이다. 그러나 “종속”이란 규정은 매우 엄밀하게 다뤄져야 한다. 불균등 발전이라는 자본주의의 특징 때문에 국가 간 관계가 한쪽으로 기운 군사동맹들이 다반사다. 그러나 오늘날 남한은 자본 축적의 독자적 기반을 구축했고, 남한 지배계급은 단지 미국 제국주의의 ‘종속국’에 머무는 게 아니라 자기 나름의 이해관계를 지니며,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자신의 이익을 지킬 능력도 갖추게 됐다. 따라서 사드 배치 같은 한미동맹 강화 조처에서도 남한 지배계급의 선택이란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역대 정부 평가
셋째, ‘종속’ 문제와 관련해 한국 역대 정부에 대한 평가 문제도 있다. 저자는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을 “미국의 눈치를 보던 시기”로,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미국을 추종하는 시기”로 규정하는데,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미국에 맞선 시기”로 구분하는 대목은 불편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노무현 정권이 김대중 정권과 달리 한국형 MD를 계획함으로써 한국이 미국 MD에 참여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셈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반면에 “[김대중 정권의] 미국 MD 불참 입장은 변함 없었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김대중 정부가 남북 화해· 협력을 표방하며 미국의 MD 참여 요구에 주저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김대중은 미국의 MD 추진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2001년 2월 김대중 정부는 MD에 공식 참여하지 않는 대신 “우리 실정에 맞는 미시일방어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훗날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로 구체화된다. 그리고 이지스함과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조처들은 모두 “MD 편입의 하드웨어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 그래서 당시 미국 부시 정부가 “해상 MD 협력을 증대하게 됐다”며 김대중 정부의 결정을 환영했던 것이다(관련 기사).
노무현은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고 했지만, 오산 공군기지와 군산 공군기지 등에 미국의 MD 체계 일부인 PAC-3 미사일과 이동식 조기경보 레이더를 배치했을 때 이를 수수방관했다. 한술 더 떠 해상 MD에 이용될 수 있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까지 추진하지 않았는가. 사물이나 현상의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만 보거나 말하려 하는 것은 심하게 말해 왜곡일 수 있다.
넷째, 저자는 정욱식 대표나 서재정 교수가 ‘사드는 북한용이기도 하다’고 주장한 점을 들어(223~226쪽), 이들의 주장이 사드의 군사적 효용을 인정한 것처럼 언급한다. 그러나 고영대는 서재정 교수의 기고문이나 논문의 핵심을 오해한 듯하다. “사드는 비싼 고철 덩어리”(〈프레시안〉 2017년 5월 27일)라는 서재정 교수의 글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사드 배치가 일본으로 향하는 북한의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용도임을 인정하는 것이 곧 ”사드의 군사적 효용을 인정”해 준다고 지적하는 것은 지나친 언급이다. “사드가 설계한 대로 작동하고 북이 원하는 대로 중거리 미사일을 고각도로 발사해 줘도 사드는 군사적 효용이 없는 비싼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게 서재정 교수 등의 핵심 논지다. 서재정 교수는 사드는 중국용이지 북한용은 아니라는 주장보다는 대중국용이기도 하고 대북용이기도 하지만 무용지물임에 틀림없다고 강조했을 뿐이다.
물론 필자는 정욱식 대표나 서재정 교수의 사드에 관한 모든 입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동북아 군사적 긴장 고조화의 봉우리에 ‘망치질’(서재정 교수의 표현임)을 해 불능화하는 그 동력에 관해서는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핵심 논점과 취지는 공평하게 살피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정리하자면, 《사드배치 거짓과 진실》은 사드 배치의 부당성을 이모저모 폭로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일독할 만한 책이다. 다만 몇 가지 핵심 쟁점들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앞으로 활발하고 깊이 있게 토론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