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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교육 정책은 교사 노동자들의 요구와 격차가 크다

최근 교육부의 국가기획자문위 업무보고 내용이 알려지면서 문재인 정부의 교육 정책이 주목받고 있다. 문재인은 후보 시절 “교육의 국가책임(을) 강화”하겠다며 여러 가지 공약을 내놨다. 집권 후 박근혜의 일부 정책들을 뒤집는 발표들을 하면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선거 공약도 그렇지만, 당선 후 발표한 정책들도 교육 적폐 청산과 새로운 교육 체제 실현에 못 미친다.

전교조 재합법화

전교조 법외노조 조처는 박근혜의 대표적 적폐로, 박근혜 퇴진 운동이 제기한 10대 과제 중 하나였다. 문재인도 후보 시절 “(법외노조 문제를) 우선적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또, 결사의 자유, 단결권, 단체교섭권 보장에 관련한 ILO(국제노동기구) 협약 87호와 98호 비준과 국내법 개정을 공약했다. 최근에는 국가인권위 권고 사항 수용률 제고를 지시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는 일찍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를 중단하고 관련 법령을 개정하라고 박근혜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5·27 전국교사결의대회 “지금 당장” 법외노조 철회 ⓒ조승진

그런데도 “촛불 혁명”을 계승했다던 문재인 정부가 전교조 법외노조 같은 중요한 민주적 권리 침해 문제에 미적대고 있다. 최근 언론에서 전교조 재합법화 추진이 보도되자, 청와대는 곧바로 “한 번도 논의하거나 구체적으로 협의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무총리 이낙연은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는) 대법원 판결 뒤에 판단하겠다는 것이 정부 내 분위기”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은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다, 1·2심 판결을 뒤집는 전향적인 판결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전교조 재합법화 문제는 ‘통보 철회’, ‘시행령 폐기’ 등 정부의 의지만으로도 충분하다.(물론 교원노조법 개정을 통한 노동기본권·정치기본권 보장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이고 이를 위해 싸울 준비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그럴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파의 반발도 있지만, 단지 그것만을 의식해서는 아닐 것이다. 문재인과 민주당도 교육을 지배 이데올로기 주입 수단으로 보고 이를 위해 교육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다.

또, 1998년 전교조가 합법화된 경험을 돌아보면 그것이 결코 순탄한 과정이 아님을 예상할 수 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전교조 합법화를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파견법, 정리해고 등을 수용하는 데 이용했다. 따라서 법외노조 철회는 문재인 정부의 선의에 기댈 문제가 아니다.

교원평가·성과급 폐지

문재인 정부는 특권학교 폐지, 수능 절대평가, 국공립대 네트워크 등 경쟁 교육을 다소 완화시킬 정책을 말하지만, 경쟁 교육의 핵심인 성과급과 교원평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물론 경쟁 교육 완화 정책을 제대로 이행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국공립대 네트워크 공약에서는 벌써 후퇴 조짐이 보인다.)

문재인은 교육 공약 질의서 답변에서도 성과급·교원평가 폐지에 동의하지 않았다. 성과급제와 교원평가가 교사들의 임금을 억제하고 교사를 통제하는 핵심 기제이기 때문에 정부는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이 꼭 필요한 이유다.

누리과정 예산 국고 지원

교육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국고에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 교육청에 떠넘겼었다. 그 결과 보육대란이 벌어졌고 재정 부족으로 교육 복지가 후퇴했다. 전국 시·도교육청의 부채가 2012년 10조 원에서 2016년 21조 원으로 급증했다. 그런 상황에서 연 2조 원 지원은 당장 숨통이 트이게 할지 모르지만, 만성적인 재정 부족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교육부는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연 2조 원 지원할 계획이고, 유치원은 지원 대상에서 뺐다.

한국의 초중고 예산에 대한 정부 부담률은 GDP 대비 4퍼센트로 OECD 평균인 4.5퍼센트에 못 미친다. 따라서 누리과정 예산 전액을 국고로 지원하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비율을 늘려 교육 재정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고교 무상교육

교육부는 2018년부터 고교 무상교육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2020년까지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고교 무상교육은 진즉에 시행됐어야 했다. 한국에서 초중고 공교육에 대한 민간 부담 비율은 GDP 대비 1.9퍼센트로 OECD 평균인 0.9퍼센트의 갑절이다.

박근혜는 대선 때 공약해 놓고도 집권 내내 예산을 한 푼도 배정하지 않았다. 경제 위기 압박으로 교육 긴축을 실시하면서 공약을 완전 무시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기다려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한편, 교육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려면 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을 무상화해야 하고, 사교육비 부담도 확 줄여야 한다. 고등학생 1인당 연간 교육비(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서 대금 등)는 1백40만 원가량이지만, 대학등록금은 연간 7백만 원에 이른다. 게다가 학생 1인당 연평균 사교육비도 3백만 원에 달한다.

교사 증원

교육부는 문재인 정부 5년간 초중고 교사를 1만 3천 명가량 늘리겠다고 밝혔다. 일자리도 창출하고,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줄여 교육 여건을 개선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2014년 이후 교사의 증원을 억제하고 정원까지 축소한 것에 비하면 조금 개선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국의 초중고 학교 수가 1만 1천5백여 곳인 점을 감안하면, 한 학교에 한 명씩 늘어나는 정도다. 따라서 학급 당 학생 수 감소에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2014년에 한국의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학교 23.6명, 중학교 31.6명으로 OECD 평균(초 21.1명, 중 23.1명)보다 월등히 많다. 전교조 정책실이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OECD 평균 수준에만 맞추려 해도 교사 6만 명 이상을 증원해야 한다. 더군다나 박근혜 정부 이후 교원 법정 정원 확보율은 70퍼센트대로 떨어진 상태다.

앞에서 언급한 누리과정 예산 국고 지원, 국·공립 유치원 확대, 고교 무상교육, 교사 증원 등의 조처들은 그 자체로 보면 노동계급에 도움이 되는 개혁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들이 실질적이 되려면 반드시 재원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노동자·서민의 표를 의식해 개혁과 복지를 말하지만, 근본적으로 기업주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자본가 정당이다. 문재인이 부자 증세, 법인세 인상 등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건드리기를 기피하는 이유다.

고교학점제

문재인은 후보 시절 “필수과목을 최소화하고 학생들에게 교과 선택권을 부여하는 고교학점제를 통해 진로 맞춤형 교육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울, 경기 등 일부 교육청도 고교학점제 TF를 구성하는 등 대책 수립에 나섰다. 고교학점제를 공교육 정상화의 유력한 대안으로 보는 듯하다.

물론 교육 과정을 다양화하고 학생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자면 교사를 대폭 확충하고 교실도 더 만들어야 다양한 수업 개설이 가능하다. 교육과정·수업·평가에 대한 교사의 자율권도 보장돼야 한다.

무엇보다 성적 경쟁과 입시에 얽매이지 않고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으려면 입시 경쟁을 없애야 한다. 이런 뒷받침이 없다 보니 제7차 교육과정(김대중 정부)에서부터 학생의 선택권을 강조했지만 말뿐이었고, 현실에서는 다양화와 자율화가 위계와 차별을 의미했다.

사실 지난해 말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지능정보사회에 대응한 중장기 교육정책의 방향과 전략’에도 고교학점제가 핵심 과제로 포함돼 있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를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운다고 포장했지만 실은 진로 조기 설정과 노동시장 진출 시기를 앞당기려는 게 본질이듯이, “흥미와 적성”을 강조하는 고교학점제도 산업 수요에 맞춘 인재 양성이 핵심 목표인 것이다.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면서도, 공공부문 비정규직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학교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현재 정부의 기조로 보면 (이전 정부에서도 추진돼 온) 무기계약직 전환에 그칠 공산이 크다.

학비 노동자들은 무기계약직이 아니라 교육공무직을 대안으로 요구하고 있다. 질 높은 교육을 위해서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뿐 아니라 저임금과 차별을 개선해야 한다.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 모두 보장되는 정규직화 ⓒ사진 출처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전교조는 문재인의 개혁을 기다려서는 안 돼

진보 교육 진영 내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 정책이 박근혜와 다를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교육의 패러다임도 바꿀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의 상당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돼 이명박근혜 정부가 그 강도를 강화했다. 김대중 정부는 교원 성과급을 도입하고, 국립대 등록금을 자율화했다. 노무현 정부도 교원평가를 도입하고, 자사고 시범 운영, 국립대 법인화, 대학 구조조정 등을 추진했다. 노무현 정부는 전교조의 투쟁과 광범한 반대 여론, 인권위의 권고 등을 무시하며 학생 정보 인권을 침해하는 네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를 밀어붙였고, 교원평가에 저항해 연가 투쟁에 나선 전교조 교사들을 대량징계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과거 민주당 정부와는 다를 거라는 기대가 조합원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작은 개혁조차 이명박근혜 9년에 대한 환멸로 인한 기저 효과로 보인다. 박근혜 퇴진 운동을 거치며 사기가 회복되고 있지만, 법외노조 철회나 성과급 폐지 등을 위해 당장 스스로 투쟁에 나서기보다는 새 정부에 기대 섞인 관망을 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전교조 조창익 위원장은 5월 27일 전국교사대회 대회사에서 “해고자들의 즉각적인 원상 회복과 중징계 위기에 놓인 전임 요구자들에 대한 탄압 종결은 화급한 사안”이라고 말하면서도, 법외노조 철회 “낭보”를 “광화문 광장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런 기대감 때문인지 이낙연이 인사청문회에서 “대법원 판단이 대전제”라고 말할 때 전교조는 공식 비판 논평도 내지 않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개혁의 불충분함을 폭로하고 비판하지 않고 환상을 부추기는 것은 조합원 대중의 의식을 흐릿하게 함으로써 개혁의 진정한 동력인 대중 행동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싸울 때 불충분하고 부분적인 개혁을 넘어 온전한 개혁을 쟁취할 수 있다.

ⓒ조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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