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절감 경쟁이 낳은 현대·기아차 강제 리콜:
리콜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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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가 12개 차종 24만여 대에 대해 사상 최초로 강제 리콜을 명령 받아 이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차량 결함 의혹에 강하게 반발해 온 현대차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내부 고발이 접수된 결함은 이번에 인정된 5건 외에도 20여 건이 더 있다. 국제적으로도 현대·기아차의 품질 논란이 계속돼, 지난달 북미와 한국에서 세타2엔진을 장착한 1백47만 대를 리콜하기도 했다.
현대차는 이번에 어떻게든 강제 리콜을 피하려고 “위험이 과장됐다”며 사태를 은폐·축소하고, 내부 고발자를 해고·고발하는 등 강경 대응해 왔다. 지금도 사태 확산을 막으려고 필사적이다. 차량 결함을 내부 고발한 김모 부장이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로 복직됐다가 최근 한 달여 만에 퇴사하고 행정소송을 포기했는데, 이것도 십중팔구 리콜 사태를 잠재우기 위한 사측의 강력한 압박이 작용한 결과인 듯하다.
무엇보다 현대차는 몇 해 전에 자신의 경쟁자들이 대규모 리콜 사태로 치른 홍역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도요타는 2009년 말 가속페달 결함이 발각돼 이듬해까지 세계적으로 1천6백만 대에 이르는 사상 최대 리콜을 한 바 있다. 이 사건은 도요타의 “신화”를 산산조각 냈다.
폭스바겐은 2015년에 디젤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작한 것이 들통나 총 1천1백만 대를 리콜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해에 세계 판매량 1위 자리는 지켰지만, 앞으로 갚아 나가야 할 벌금과 배상금만 22조 원이 넘는다.
현대차가 리콜 사태에 발을 동동 구르는 또 다른 이유로는, 2014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수익성 악화 문제가 있다. 특히 올 들어 사드 배치의 여파로 중국 판매량이 급감하는 등 위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물론 여전히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막대한 사내유보금도 있기는 하지만, 자본가들에게는 충분한 현금 유입도 중요하다.)
이윤 체제의 동역학
차량 결함으로 인한 리콜 사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정 기업의 탐욕만이 문제인 것도 아니다.
이미 올해 한국에서만 무려 82만여 대가 리콜돼, 1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3년에는 미국·중국·일본·한국의 리콜 대수가 그해 4개국 자동차 생산량의 4분의 3을 차지하기도 했다.
물론 기업주들은 잇따른 리콜 사태 속에서 ‘품질 경영’을 부르짖기도 한다. 그러나 이윤 경쟁이라는 자본주의 체제의 동역학 때문에 이것은 실제 구현되지 못한다.
특히 세계 자동차 시장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신차 출시 주기가 짧아졌고, 이 때문에 더 적은 비용으로 개발하고, 더 싼 부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졌다. 점유율을 높이려고 피 튀기는 각축전을 벌이는 정글에서 안전·품질·환경 문제가 뒷전으로 밀리게 되는 것이다. 세계 유수의 자동차 기업들이 결함 사실을 알고도 ‘흉기차’들을 시장에 내놓는 까닭이다.
예컨대, 도요타는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려고 2000년대부터 “마른 수건도 쥐어짠다”는 슬로건 하에서 대대적인 경비 절감에 나섰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구조적 차량 결함에 눈 감기, 저질 부품 사용하기, 정규직 인력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대거 고용하기, 노동강도를 끌어올리고 현장 통제를 강화하기 등이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정치권과 언론을 매수하는 데 공을 들였다.
바로 이런 이윤 논리 때문에, 자본가들은 리콜 사태로 홍역을 치르고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똑같은 문제를 반복한다. 도요타는 2010년에 사상 최대 리콜을 하고도, 2011년, 2014년에 또다시 수백만 대를 리콜했다.
현대차도 이미 오래전부터 리콜 요구에 직면했는데, 그때마다 최소한의 차량 수리·교체로 생색만 내며 빠져나왔다.
책임 떠넘기기
특히 리콜 사태로 인한 자본가들의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곤 했다. 엄청난 리콜 비용을 내야 하는 폭스바겐이 대표적이다.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 폭스바겐 사측은 이제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며 이렇게 선언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모든 예정된 투자를 재검토하고,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폭스바겐그룹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2020년까지 총 3만 명을 감원하기로 했는데, 독일에서는 전체 노동자 12만 명 중 무려 20퍼센트(2만 3천 명)가 대상이다.
현대차 사측의 대응도 이와 다르지 않다. 노동자들에게 “품질 경영”, “생산과 고용의 유연성 확보”를 촉구하며 책임 전가를 시도하고 나선 것이다. 현대차 부회장 윤여철은 올해 임금 협상도 “실적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즉, 성과가 나쁘니 임금이 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차량 결함은 생산 과정이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 발생했고, 사측은 이를 알면서도 꼭꼭 숨기다 사태를 키웠다. 몇 년간의 수익성 하락이나 중국 등에서 판매 부진도 결코 노동자 탓이 아니다. 자본가들의 끝없는 생산량 늘리기 경쟁과 정부의 사드 배치 정책에 따른 중국의 보복 등이 위기를 낳았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질 이유가 결코 없다.
노동운동 내 일각에서는 기업 경쟁력을 위해 노동자들도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곤 한다. 예컨대, 2010년에 현대차지부 집행부는 도요타 리콜 사태를 두고 “품질 좋은 명차 생산이 곧 고용 안정”이라며 노조도 고품질을 위한 숙련도 향상, 생산성 향상에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위기의 책임을 흐리고 사측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어렵게 만든다. 폭스바겐 노조 지도자들이 오랫동안 기업 경쟁력 논리에 사로잡혀 협력적 노사관계를 추구해 온 것은 노동자들에게 해로운 결과만 낳았다.
폭스바겐이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으로 올라서는 동안, 노동자들의 임금은 억제되고, 이중임금제 도입으로 신입사원은 임금이 더 깎이고, 비정규직이 대거 양산됐다. 이런 후퇴를 거듭하면서 기층의 투쟁력이 약화돼 온 결과, 이번 3만 명 감원 계획도 변변찮은 저항 없이 “노사 합의”로 통과되고 말았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런 폭스바겐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성과 부진에 따른 책임 전가, 임금·노동조건 후퇴 압박에 맞서 단호하게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하며 투쟁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