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1호기 영구 폐쇄:
문재인 정부가 탈핵 시대를 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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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국내 최초로 핵발전소가 문을 닫았다. 폐쇄된 고리 1호기는 1978년에 가동을 시작해 설계 수명인 30년을 다 채우고도 10년을 연장해 최근까지 가동됐다. 그동안 숱한 사고로 불안을 키워 왔지만 또다시 수명 연장 논란을 벌이다가 결국 폐쇄된 것이다. 문재인은 대선 당시 ‘설계 수명이 다한 원전 즉각 폐쇄’를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당연히 이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보여 주듯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근본적으로 보장할 방법은 없다. 반면 사고가 나면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어마어마한 규모의 피해를 낸다. 따라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핵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고 재생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 그렇게 할 기술력과 재원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탈핵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섣불러 보인다. 애당초 문재인은 한 번도 그런 견해를 분명히 밝힌 바 없다.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한다거나 “탈핵에너지 전환 로드맵 수립” 등 기약 없이 모호한 말만 했을 뿐이다.
게다가 이런 공약에서조차 슬금슬금 물러서는 모습을 이미 보이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한다고 했지만 최종 결정은 “공론화”를 거쳐 내리겠다며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신규 원전 전면 중단 및 건설 계획 백지화”를 약속했지만 아직 가동을 시작하지 않은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2호기를 어떻게 할지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세 기의 신규 핵발전소 설비 용량을 합하면 모두 4천2백 메가와트로 고리 1호기(5백87메가와트)의 8배 가까이 된다.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에도 핵발전은 큰 폭으로 늘어나는 셈이다.
고리 1호기 폐쇄가 이후 다른 핵발전소 폐쇄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수명이 다하는 핵발전소가 없다. 그러니 핵산업계는 ‘문재인 임기 동안만 납작 엎드리자’는 정서가 팽배하다. 보수 언론들은 그조차 못 봐주겠다며 벌써 전기요금 폭탄 어쩌구 하는 기사를 쓰고 있다.
사실 오늘날 핵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지 못하는 기술적 한계 같은 것은 없다. 심지어 비용을 더욱 절약할 수 있다는 연구도 많다(그림1).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탈핵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이 정부가 민간 기업주들과 마찬가지로 세계 시장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자급 능력이나 군사력도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석유나 가스를 전량 수입해야 하는 한국 자본가들 처지에서 한 번 확보하면 적어도 수십 년을 써먹을 수 있는 핵연료는 특별한 가치가 있다. 또, 당장은 아니어도 핵폐기물에서 얻을 수 있는 핵무기 원료는 한국의 군사적 잠재력을 키우는 구실을 한다. 주민 소송으로 법원에서 수명 연장 여부를 다투고 있는 월성 1호기는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핵발전소다. 설비 용량이 7백 메가와트도 안 되는데도 전임 정부들이 월성 1호기의 수명을 늘리려고 필사적으로 애쓴 이유다. 한국 정부는 얼마 전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한 데 이어 재처리 실험도 추진하고 있다.
탈핵은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적 전망과 만날 때에만 진정으로 실현 가능한 과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