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 전국이주노동자결의대회:
“더 이상 죽이지 마라, 고용허가제 폐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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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일 보신각에서 ‘모든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노동허가제 쟁취! 8.20 전국이주노동자결의대회’가 열렸다. 이 집회는 민주노총, 이주노조, 이주공동행동, 경기이주공대위, 대구경북이주연대회의, 부산울산경남이주공대위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폭우가 쏟아졌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이주노동자와 연대 단체 회원 약 7백 명이 참가했다. 서울, 수원, 안산, 인천, 의정부, 부평, 김포, 일산, 대구, 경산, 오산, 김해, 울산, 양산, 부산 등 전국 곳곳의 이주노동자들이 수년 만에 한자리에 모여 한껏 고무된 분위기에서 집회가 진행됐다. 집회 후에는 종로와 을지로 등을 누비며 도심 행진도 벌였다.
집회의 핵심 요구는 올해로 시행 13년째인 고용허가제 폐지였다. 이주노동자들은 이 제도가 시행된 8월 17일을 전후해 매년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어 왔다. 고용허가제는 고용주의 동의가 있어야만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도록 하고, 그조차 3년 동안 3회로 횟수를 제한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를 고용주에 종속시켜 저임금과 위험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제도인 것이다.
2012년에는 제도를 더욱 개악해 사업장을 변경할 때조차 이주노동자들이 회사를 직접 고르지 못하고 사업주들의 선택을 기다리도록 했다. 당시에도 이주노동자들은 전국에서 1천여 명이 모여 개악 철회와 고용허가제 폐지를 요구했다.
특히 최근에는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이동 금지 때문에 네팔 이주노동자 두 명이 잇따라 자살하는 비극이 벌어졌고, 이는 이번 집회의 참가자가 늘어나는 계기가 됐다.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외면해 온 결과 이주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이어진 것이다.
네팔에서 온 이주노조 조합원 오쟈 씨는 연단에서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이동 금지 때문에 발생하는 고통을 폭로하며 단결해 투쟁하자고 주장했다.
“폭언, 폭행, 성희롱을 겪고 심지어 자살까지 한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사업주들이 사업장을 변경해 주는 대가로 수백만 원을 받는 사실도 있다. 화장실과 물이 없는 기숙사에 살면서 30만 원이 넘는 기숙사비를 받는다. 사업장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현실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노동자로서 자유롭게 일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우리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단결해서 투쟁해야 한다. 투쟁해야만 고용허가제가 폐지되고 노동허가제가 실시될 수 있다.”
지난 5월 12일 경북 군위 돼지농장에서 정화조를 청소하다가 질식사한 네팔 이주노동자 테즈 바하두르 구룽 씨의 유족인 친형 발 바하두르 구룽 씨가 직접 연단에 올라 발언하기도 했다.
“내 동생이 안전장비 없는 사업장에서 돼지 똥물 치우다가 그 똥물에서 나오는 가스 때문에 중독돼서 죽었다. 이런 똥물까지 사람이 손으로 치우는 게 어디 있나?
“사장은 처음에 문제를 잘 풀겠다고 했지만, 보름 정도 지나고 나서 ‘자신은 잘못 없다, 내 동생이 잘못해서 사고가 났다, 할 수 있는 거 해 봐라, 자신은 책임 안 진다’고 말했다. 우리 이주노동자는 권리가 없습니까? 우리는 사람이 아닙니까?
“나는 한국 정부한테 우리 소리를 잘 들으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업주, 이런 사장들이 처벌받고 이주노동자를 탄압하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기를 바랍니다.”
정부는 지난 2014년 “지난 5년간 외국인 근로자의 재해는 증가”하고 있다며 ‘외국인 근로자 산업재해 예방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정부가 제시한 주요 재해 사례 중에는 “질식 사고가 예상되는 돼지 축사 정화조 청소작업을 실시하면서 작업자에게 호흡용 보호구 미지급”이 있었다. 3년이 지나도록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이주노동자를 고용주에 종속시키는 고용허가제가 폐지되지 않는 한 이런 위험한 작업을 거부하거나 위험한 사업장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해 죽고 다치는 일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돼지 정화조
전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모인 만큼 고용허가제 폐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구들도 쏟아져 나왔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의 공동체인 크메르노동권협회 스레이나 씨는 이주노동자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모욕하는 정부 기관들의 태도에 분개했다.
“노동부 공무원들은 해결책을 찾아서 노동청을 방문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제발 고압적으로 대하지 말고 친절하게 대하기 바랍니다. 고용주와 노동자들의 갈등을 중재할 때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욕을 하지 마십시오.”
또한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가 아닌 제대로 된 숙소를 제공할 것과 근로기준법 63조 폐지도 요구했다. 근로기준법 63조는 농어촌 지역 등에서는 근로시간, 휴게 시간, 휴일 등에 대해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외에도 과거 산업연수제도 다를 바 없는 ‘해외투자기업 산업연수생제도'의 문제, 국민연금을 강제로 납부하고도 귀국할 때 돌려받지 못하는 E-7비자 중국 요리사들의 문제 등을 규탄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정부는 고용허가제의 핵심 독소조항인 사업장 이동 금지를 ‘내국인 고용기회 보호’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내국인이 기피하는 위험하고 열악한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며 죽고 다치고 있다. 일손이 부족한 곳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덕분에 한국 경제는 오히려 큰 편익을 얻고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유지된다면 이는 내국인 노동자들에게도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 모두에게 해로운 고용허가제에 맞서 단결해 싸워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정부의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스스로 조직하며 저항을 이어 왔다.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한국인 노동자들이 손을 내밀고 연대해야 한다.
사회를 본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한국에는 나쁜 사장이 있지만 이 사장을 더 나쁘게 만들고 있는 고용허가제라는 법이 있다. 앞으로 더 강력한 투쟁을 해야 한다. 우리 모든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서 투쟁하면 고용허가제 반드시 폐지할 수 있다. 앞으로 하나 돼서 투쟁하자!”고 호소했다.
최종진 민주노총위원장 직무대행도 연단에 올라 연대를 약속했다.
“[고용허가제와 같은] 법·제도적 차별을 없애기 위해 민주노총이 투쟁하고 끝까지 함께하겠다. 고용허가제 폐지 투쟁은 10년이 넘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지금 당장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라고 [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고용허가제를 즉각 폐지하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 등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