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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은 왼쪽 날개를 내리려 하는가?

일련의 중요한 정치·사회 쟁점을 둘러싸고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날카로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김인식은 당 지도부 다수파가 이 논쟁들에서 오른쪽으로 경도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총론과 반대의 깃발’만 나부끼던 민주노동당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 제시로 활동의 무게중심을 옮긴다.”(〈서울신문〉 3월 18일치.)

민주노동당이 “사실상 최초로 기업 살리기 정책 개발에 들어”간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심상정 의원은 벤처 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민주노동당은 반기업 정당이 아니”라고 말했다.

〈중앙일보〉(3월 18일치)는 “이 같은 움직임은 … 민노당이 대화의 방향을 노동계 일방에서 쌍방향으로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을 악의적으로 무시하거나 왜곡하던 기업주 언론들이 요란하게 당의 “변화”를 환영하는 것은 메스껍다.

그럼에도, 당 지도부의 정치 노선은 확실히 지난해 하반기와는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2004년 당 사업 평가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 속에서 당 지도부의 다수파는 오른쪽으로 경도되고 있는 듯하다.

최고위원회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단상 점거자들을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김혜경 당 대표는 〈세계일보〉와 한 인터뷰(3월 18일치)에서 사회적 교섭을 지지했다(그러나 아직까지 당은 사회적 교섭에 대한 공식 견해를 내놓지는 않고 있다).

기아차 채용 비리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무산 등 민주노총이 겪고 있는 위기가 당 지도부의 우경화 기류를 더한층 부추기는 듯하다.

게다가 올해 들어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 지지율이 하락했다. 지난 한 해 동안 13∼18퍼센트를 유지하던 당 지지율이 일부 조사에서는 한 자리 아래로까지 떨어졌다.

그 때문에 많은 당원들이 커다란 위기감을 느꼈다. 이런 정서는 2월 당대회에서 당 사업 평가를 둘러싸고 분명하게 표현됐다.

‘위기’에 대한 당 지도부내 다수파의 반응은 “변화”와 “쇄신”을 말하는 것이었다.

김창현 사무총장은 “지금 당 지도부의 상당수가 운동권이지만 당 차원에서 운동권 정서를 하루빨리 벗어나 국민 정서에 맞는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변신하는 게 우리의 초미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당의 총력 동원과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을 이끌었던 핵심 지도부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지난해 투쟁으로부터 잘못된 교훈을 이끌어내는 듯하다.

당은 지난해 하반기 운동 건설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새로 선출된 최고위원회는 당을 투쟁과 연결시켰다. 당 안팎의 좌파들은 최고위원회의 민족주의 정치 성향을 근거로 당의 우경화를 비판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지적이었다.

정치적 편견 없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자면, 당은 지난해 하반기에 급격하게 좌선회했다. 이것은 여의도에 7천 명을 불러모은 12월 총력 진군 대회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창당 이래 최대 규모의 당 집회였다.

그러나, 12월 동원은 동원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우파적 비판과 강조점 차이를 둘러싼 전술 이견(비정규직 투쟁이냐 국가보안법 투쟁이냐) 때문에 격렬한 논쟁을 수반했다.

당이 그토록 전념했음에도,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은 열우당의 비열한 배신 때문에 좌절됐다. 일부 당원들은 당이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에 ‘올인’한 것을 문제 삼았지만, 문제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당 지도부가 투쟁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옳았지만, 노무현 정부와 모종의 ‘동맹’을 맺는 방식으로 나아간 것은 잘못됐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해 ‘개혁 공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세력 균형을 두 주요 정당의 지배에서 우리 운동 쪽으로 옮길 수 없게 만들었다.

투쟁과 공조의 ‘공존공생’은 투쟁의 더한층 성장을 방해했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해 노무현 정부와 동맹하다 보니, 그 투쟁은 노무현 정부에 맞서는 다른 전선의 전투들 ― 비정규직 투쟁과 파병 반대 운동 ― 과 연결될 수 없었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의 분열 지배 전략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2월 당대회에서 일부 대의원들은 이 점을 옳게 지적했다. 그러나 당내 우파는 당 지도부의 전술적 실책을 투쟁 노선 자체를 비판하는 근거로 이용하고 있다.

이선근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은 “원내 진출에 성공하고 공당의 지위를 확보한 지금, 이러한 [당의 좌파적] 구성이 오히려 짐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해삼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장도 그런 목소리에 합류했다. “노동자 평균 임금 이상 받는 대기업 노조에서 과감하게 임금을 동결해야 [한다.]”

그의 주장은 민주노동당이 요구하는 계급간 분배(부유세)를 거부하고 계급내 분배를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노무현의 지배 전략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당 지도부의 우경화 기류는 노무현 정부가 비정규직을 확대하기 위한 공격에 착수한 상황에서, 당이 운동에 헌신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물론, 당 지도부의 우경화 기류는 완벽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당원들 사이에서 양극화된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비록 부결되긴 했지만, 3월 26일 당 중앙위원회에서 절반에 가까운 중앙위원들이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는 결의안에 찬성했다(최고위원회와 의원단은 모두 그 결의안에 찬성하지 않았다). 상당수 중앙위원들이 행동주의적 투쟁에 헌신하려 함을 보여 준 것이다.

계급 투쟁의 압력 때문에 당 지도부의 우경화 기류는 무한정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당이 전적으로 의회 활동에만 기대어 집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에 표를 던지는 사람들이 특별히 좌파가 아니기 때문에, 당은 유권자의 의중을 반영해야 한다는 논리는 간단하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시기에 대다수 노동자들의 사상은 신문, TV, 교육 기관, 언론, 주류 정당의 영향을 받는다. 이런 기구들은 좌파 사상에 대해 적대적이다.

그러나 선거주의는 전체 그림의 일부분일 뿐이다. 계급 투쟁이 고조되는 시기에는 노동자의 의식이 왼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더 많은 투쟁을 보여 줄수록, 당의 선거적 기회는 더 많아질 것이다.

따라서 당내 좌파는 당이 의회주의적 타협과 멀어지도록 투쟁해야 한다.

우리 당에 표를 던진 사람들을 잊어 버리고 당에 표를 던지지 않은 자들, 즉 기득권 세력의 정책을 기웃거리는 것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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