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비정규직 교사·강사 정규직화 10문10답:
까다로운 질문에 속 시원∼히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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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노동자연대 교사모임이 현장 교사들과의 토론에 바탕해 작성한 10문 10답이다. (인쇄용 PDF 다운로드 [B4])
1. 기간제교사는 사립학교 관리자나 재단의 연줄을 통해 들어온 사람이 많다고 한다. 또, 기간제교사 중에도 4대 비위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포함될 수 있는데, 전원 정규직화는 문제 있지 않을까?
기간제교사는 공개전형에 의해 임용되도록 각 교육청의 기간제교사 운영지침이 마련돼 있다. 1차적으로 교원자격증 등 서류 전형, 2차적으로는 면접 그리고 3차 수업 시연까지 거쳐야 한다. 교육청에 따라서는 이미 검증된, 교육청의 계약제교원인력풀을 활용해 기간제 교사를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 기간제교사들은 이미 교수능력 검증 단계들을 거쳐 임용돼 학교 교육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 성범죄 등 4대 비위가 있는지도 교육청 차원에서 공유해 이미 채용 단계에서 걸러지도록 교육청별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립재단이 연줄을 통해 기간제교사를 채용하는 경우는 사립재단의 부정부패와 교육청의 관리 감독 소홀이 문제이지, 4만 6천여 명의 기간제교사 전체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보는 것은 집단(전체)과 개인(부분)을 구별하지 못하는 태도다. 이는 고용 불안 때문에 임용부터 관리자 통제에 순응하도록 강요받는 기간제 제도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 때문에 우리는 기간제교사 제도를 폐지해야 하고, 기간제교사의 전원 정규직화가 필요한 것이다.
만일 일부 기간제교사의 도덕적 문제를 이유로 전체 기간제교사가 임용고사와 같은 공개전형을 거쳐 정규직이 돼야 한다는 것은 일부 문제 있는 정규직 교사들을 걸러내기 위해 교원평가제도가 필요하다는 논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교원평가제도는 오히려 교사를 줄 세우고, 교사 간 반목과 갈등을 키웠으며, 국가교육정책과 관리자 통제권을 더 키우는 효과를 냈다. 마찬가지로, 임용고사도 정의로운 임용 제도로 볼 수 없다.
2. 영어회화전문강사, 스포츠강사와 같은 제도는 폐지돼야 하는데, 그들의 고용 안정을 주장하는 것은 제도 폐지와 모순 아닌가?
이명박 정부가 강요한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생겨난 각종 비정규직 강사제도는 폐지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쁜 제도의 폐지를 요구할 때 그 제도의 희생자가 된 노동자들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
이미 10년 가까이 학교 안에서 교육 노동을 담당했던 이들을 정규 수업 밖으로 밀어내거나 보조강사로 전락시키는 것은, 이들이 학교 현장에서 차별과 고용 불안을 감내하면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쳐 온 지난날을 무시하는 것이다. 또,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정부에 맞서 수년째 벌여 온 이들의 투쟁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잘못된 정책의 책임은 분명 정부에게 있다. 그런데 제도 폐지만을 요구하고 비정규직 강사들의 해고나 노동조건 악화 등을 외면하면, 오히려 비정규직을 일회용으로 취급하고 쉽게 버리려 하는 정부의 반노동 정책이 지속될 위험성이 있다.
물론 교육의 전문성 함양은 중요하다. 전문성 함양을 위해 정부가 책임지고 비정규직 강사들에게 교육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그 기간에 휴직을 보장해야 한다.
3. 기간제교사를 꼭 정규직화해야 하는가? 정규직과 동등하게 처우를 개선하면 되지 않는가?
기간제교사의 열악한 처우와 차별은 근본적으로 비정규직이란 고용 조건 때문에 생겨난다. 수시로 학교를 옮겨 다니거나 실직과 취업을 반복하는 교사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안정적인 교육 활동을 수행하기 어렵다.
또, 교직 사회 내부의 이질적인 고용 · 임금 · 노동조건은 교사 노동자들의 단결을 저해한다. 교사 통제와 비용 절감을 원하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원 정책에 제동을 걸려면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는 필수다.
4. 현직 기간제교사를 정규직화하더라도 휴직 · 대체 등 기간제교사 제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반드시 그렇지 않다. 6개월이나 1년 단위의 장기 휴직의 경우(이런 휴직이 대부분이다) 정교사를 발령 내면 된다. 병가나 연가와 같이 짧은 기간에는 교육청이 (정규 교사를 파견하는 형태로) 대체 교사를 보내줄 수 있을 것이다. 해외에서 이런 사례를 볼 수 있는데, 국내 사기업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기아자동차의 경우, 연차 등으로 인한 업무 공백을 메우는 (정규직으로 구성된) 지원팀이 별도로 존재한다.
5. 기간제교사 “전원 정규직화”는 당장 이루기 어려운 “원칙”이므로, 현실 가능한 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러한 현실론은 전원 정규직화는 안 되고, 일부 기간제교사들(정원 외 기간제 교사)만이라도 고용 안정이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과 연결된다.
그러나 같은 기간제교사가 이번 학기에는 정원 내로, 다른 학기에는 정원 외로 채용될 수 있으므로 칼같이 분리가 안 된다.
무엇보다, 이 방안은 기간제교사들 내 갈등과 분열을 부추길 수 있다. 휴직 · 대체(정원 내)와 상시 · 지속(정원 외)을 나눠 둘을 차등 대응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비정규직 운동이 안팎의 압력 속에서 정규직화 우선 대상을 둘러싼 공방을 벌이다가 내홍을 겪고 운동이 약화된 쓰라린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6. 기간제교사 제도 폐지에 동의한다. 그러나 현직 기간제교사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이 아니라 그 제도를 폐지하고 대신 신규 임용 티오를 늘려야 하지 않을까?
우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을 통하지 않고 비정규직 제도를 폐지한다는 것은 공상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기간제교사를 정규직 전환에서 배제한 데서 보듯 정부가 알아서 선의를 베풀 리 만무하다.
또한 기간제교사 제도를 없애고 그 자리를 신규 임용 티오로 전환한다는 것은 4만 6천여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를 의미한다. 비정규직 제도를 철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7. 임용고사에 합격하지 않고 정교사가 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가?
‘빽’을 이용한 낙하산 임용보다 시험을 통한 임용이 상대적으로 공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쟁 시험이 곧 기회의 균등을 뜻하지는 않는다. 임용고사를 치르기 위해 대학 4년에 이은 기약할 수 없는 시간과 수년치 사교육 비용이 필요하고,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기간제교사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1991년 전교조는 임용고사 도입을 반대하고 폐지 투쟁을 벌이며, 전체 사범대생의 완전 임용을 정부에 요구했다. 당시 임용고사는 겉으로는 사립 사범대생에게 공정한 임용 기회를 주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실상은 노태우 정부의 교사 통제 정책이었다. 당시 법정 정원 수 기준으로 3만여 명의 교사가 더 필요한데도, 노태우 정부는 되레 임용고사를 도입했다.
이렇듯 임용고사는 부족한 교사 수를 두고 예비교사들 간 경쟁을 강요하는 선발 제도이지 결코 공평한 제도가 아니다.
따라서 이런 경쟁 제도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면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치열한 경쟁으로 내달리게 할 뿐이다.
진정한 형평성과 공정함이란, 최선을 다해 교육자로 일해 왔지만 차별과 고용 불안을 겪어야 했던 기간제교사들을 정규직화해, 학교 안의 불평등을 없애는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단결된 힘으로 정부에 정규 교사를 대폭 확충하라고 요구하며 투쟁하는 것이 진정한 정의다.
8. 재정 위기, 학령인구 감소라는 현실 앞에서 교사 정원을 확대하는 것이 가능할까?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맞다. 2022년이 되면 한국 고등학생 수가 2015년에 견줘 30퍼센트 이상 감소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가 2022년까지 교사 1인 당 학생 수를 OECD 평균 수준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인 측면이 크다. 정부 자신의 별도 노력이 별로 추가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를 학급 당 학생 수를 줄여 나갈 수 있는 유리한 환경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직도 우리 나라는 학급 당 학생 수가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중등의 경우 OECD 평균이 23.1명인데, 우리 나라는 31.6명이다.
이전 정부들에서 폐기된 교원 법정정원 기준을 다시 복원시키고, 교원 수를 학생 수 기준으로 개악한 것도 다시 학급 수 기준으로 복원시켜야 한다.
교육의 질 개선, 미발령 교사 해소, 학교 내 차별 해소를 위해서는 2022년이 아니라 지금 당장 교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비를 늘릴 것이 아니라 4퍼센트에 머물러 있는 교육 재정을 확충해야 한다.
9. 조합원 다수가 정규직화에 반대한다는데, 정규직화를 요구하면 노동조합의 단결이 깨지지 않을까?
다수 조합원들의 반대는 경쟁률이 엄청난 임용 경쟁이 예비교사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비참한 현실이 뒤틀려 나타난 논리다.
그런데 전교조는 경쟁과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과 협력의 참교육을 지향해 왔고, 바로 그 때문에 정권의 모진 박해를 받았던 전교조가 이런 왜곡된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해야지 타협해서는 안 된다. 전교조가 경쟁과 차별 일체를 반대하는 참교육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은 노동자 운동의 단결 대의에 복무하는 것이기도 하다.
형평성을 이유로 비정규직과 예비 교사를 이간질시키는 조합 안팎의 보수적인 여론을 크게 의식해, 노동계급의 단결 원칙보다 노동조합 조직 보존(조합원 탈퇴 차단)을 선택하면 결국 노동조합의 결속력도 약화될 것이다.
10.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노동운동의 대의도 중요하지만, 교육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노동과 교육은 분리돼서는 안 된다. 그리고 교육을 수행하는 교사도 노동자다. 차별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교사는 소신껏 자신의 교육 철학을 펼치기 어렵고, 동료 교사들과 안정적으로 협력하며 교육 과정을 운영하기도 어렵다. 관리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기 쉽지 않다 보니 학교장의 통제력이 강화될 수 있다.
요컨대, 기간제교사 제도는 공교육의 질을 위협한다. 따라서 기간제교사 정규직화는 참교육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