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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점령하는 한 민주주의는 없다”

이희수 교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이자 국내의 대표적인 이슬람 전문가다. 저서로는 〈이슬람〉(청아출판사) 등이 있다.

Q 지난 1월 이라크 총선이 “민주주의”를 가져 왔다고 보십니까?

외국 군대가 진주한 상황에서, 그 군대의 계엄 통치 하에서, 거주지 이전의 자유가 제한된 상태에서, 자기가 뽑을 대표자의 이름도 성도 모르는 상태에서, 총칼로 위협해서 치른 총선을 두고 민주주의라고 하면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죠.
58퍼센트 투표율이라는 게 미국의 잣대로 보면 대단한 투표율일 수 있겠죠. 그러나 전통적으로 아랍의 투표율은 99퍼센트였다는 것을 우리가 상기해 보면 58퍼센트라는 건 아마 중동 역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투표율일 겁니다.
뭘 두고 이라크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라크 상황이 개선되고 이라크가 안정을 찾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방법이 있다면, 그건 미국이 떠나는 겁니다.
자기 주민들이 자기 의사대로 지도자를 뽑고 국가를 운영해 갈 수 있는데, 수만 명의 외국군이 들어와서 통제하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이 이라크를 떠나는 순간, 이라크에는 민주주의의 꽃이 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Q 총선 후의 전망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쿠르드족의 부상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첫째, 어떤 상황에서도 이라크에 친미 정권이 수립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건 이미 물 건너갔다는 거죠.
지금 시아파들이 미군 주둔을 허용하는 것도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미국을 이용하는 거지, 그게 친미 정권이 되리라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왜냐면 1차 걸프전 이후 12년 동안 1백만 명의 이라크 사람들이 경제제재로 학살당했기 때문에 자기 가족을 잃지 않은 이라크 사람들이 없어요.
친미적인 노선을 펴는 어떤 정권도 대중적인 지지 기반을 갖기도, 정권을 유지하기도 불가능한 분위기란 거죠.
쿠르드 문제 역시 매우 분명합니다. 쿠르드는 어떤 상태에서도 독립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쿠르드 독립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죠. 우선 이라크가 그것을 원치 않을 것이고, 이라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국들 모두 ― 특히 이란, 시리아, 터키 ― 쿠르드를 소수 민족으로 안고 있기 때문에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거든요.
특히 나토의 맹방이자 미국이 중동에 파견한 공군의 핵심 기지가 있는 터키의 반대가 문제입니다.
터키는 키르쿠크가 쿠르드에게 귀속되고 그것이 독립의 기초가 된다면, 북부 이라크에 바로 군사 개입한다는 계획을 이미 미국에 통보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결국 키르쿠크를 쿠르드족에 넘겨 주는 문제도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을 겁니다.
지금 이라크 정치 세력들이 정치를 해 나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슬람적인 공감대, 또 하나는 반미적인 공감대입니다. 지금까지 이 두 가지로 정치 세력들이 살아 왔단 말이죠.
저항 세력들은 끊임없이 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입니다. 또 자기가 뽑은 정당들이 미국과 협력하는 것이 가시화하면 그 사람들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저항 세력들이 수그러들어서 조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해결된 게 아니죠.

Q 부시와 주류 언론들은 이라크 저항 세력이 “테러리스트”나 후세인 잔당, 이슬람 광신도라고 말합니다. 저항의 진정한 성격은 무엇입니까?

저항의 기본적인 성격은 외국군으로부터 조국을 해방하려는 해방 투쟁이죠.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 알 카에다와의 연계, 이라크 사람들이 미군을 해방군으로 맞이할 거라는 터무니 없는 허구를 내세워 전쟁을 해서 모든 기반 시설을 파괴하고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는 주둔군더러 나가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장 당연한 민족의 기본권 아닙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민간인들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는 테러리스트들이 일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됐습니까?
사실 이라크는 중동에서 유일한 테러 무풍 지대였어요. 그런데 미군이 이라크에 주둔하게 됨으로써, 대중적인 지지 기반을 상실하고 생명력을 잃어가던 테러리스트들이 새로운 힘과 기운을 얻게 된 겁니다. 그리고 명백한 적이 있는 이라크로 다 옮겨 온 거죠. 테러의 무풍지대가 테러의 메카가 돼 버린 겁니다.
하지만 이라크 내에서 그런 급진 테러 조직들은 극히 일부분이고 미미합니다. 대중적인 지지 기반도 거의 없구요.
그런데도 미국은 모든 저항 세력이 테러 조직인 양 몰아가고 있어요. 저항 세력을 분쇄하는 과정에서 아무 죄 없는 민간인이 죽어 나가는데, 이걸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테러 조직과 저항 조직을 연결시키는 거죠.
우리 언론들이 이 순수한 해방 투쟁 세력과 테러 조직 사이의 연관에 대해 서방이 조장하는 시각을 아무 비판이나 분석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이라크의 무장 저항 세력들은 그야말로 ‘레지스탕스’라고 불려야 하는 거죠.

Q 서방 언론들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과 갈등을 매우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군이 철수하면 내전이 벌어질 거라고 말합니다. 수니와 시아 간의 갈등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원래 수니와 시아 간의 갈등은 거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수니와 시아가 종교적인 이데올로기 때문에 갈등한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정치적인 갈등이었죠. 정치적인 갈등이란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기 때문에, 어떤 종파가 있어도 있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수니와 시아는 갈등의 요인보다는 통합의 요인이 강합니다. 같은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로서 말이죠.
따라서 지금 미국이 떠나면 내전 상태로 갈 것이라는 주장은 미국이 이라크를 떠나지 않으려는 핑계에 불과하지,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다.
그럼 미국이 떠난다고 해서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이 될 것이냐. 그런 것은 물론 아니에요.
그렇지만 민주주의라는 게 외세의 개입 없이 때로 혼란과 갈등, 고통과 희생을 겪으면서 얻어질 때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고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이지, 외부 세력이 인위적으로 주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설령 미국이 떠나서 상당한 혼란이 있다 해도, 그것이 외국 군대가 총칼로 강압한 민주주의보다는 훨씬 가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Q 한국의 자이툰 부대가 아르빌에 파병돼 있습니다. 북부 지역의 상황이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는데요.

첫째, 파병 자체가 잘못된 거고, 둘째는 파병지 선택도 최악이었어요.
지금 자이툰 부대가 가 있는 곳은 이라크가 아닙니다. 쿠르드 지역은 이라크에서 독립하려고, 이라크에 대항해서 투쟁하는 자치 지역이에요. 이라크에 대항해서 투쟁하는, 이라크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지역에, “이라크인들을 위해, 평화재건과 전후복구를 위해 부대를 보냈다.” 이런 허구가 대체 어디 있느냐 말입니다.
그 지역은 이번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때도 총알 하나 떨어지지 않은 지역인데, 거기서 무슨 전후복구를 하느냐 말이죠.
현재 자이툰 부대가 국민에게 약속한 대민 봉사나 전후복구 활동은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 지역에서 우리가 열심히 도로 놔 주고 발전소 놔 주고 학교 건설해 주고 사회 인프라 구축해 주면, 쿠르드 자치와 독립을 위해 우리가 인프라 구축을 해주는 게 되니까, 주변의 터키, 이란 같은 우리 동맹국들이 다 등을 돌리게 되거든요. 그래서 자이툰 부대가 하고 싶어도 마음 놓고 활동을 못하는 겁니다.
그 어정쩡한 상태, 그 화약고와 같은, 그 미묘한 지역에 왜 우리 자이툰 부대를 보내야 했는지 …. 대안도 없고 출구도 없는 겁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숨죽여서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의 방책인, 그런 어이없는 상황인 거죠.

Q 미국이 시리아와 이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압박이 군사 공격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을까요?

전쟁을 통해 미국이 직접 이라크를 통제하는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거대한 반미 집단이 이란이니까, 결국 이란까지 굴복시키지 않고서는 중동 정책의 마무리가 안 되는 거죠. 이란 압박은 이미 예상된 시나리오에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란은 이라크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우선 이란은 인구가 7천만 명이나 되고, 교육이나 문화 수준이 매우 높은 데다가, 6대 농산 부국으로 1억 명 이상이 먹고 살 수 있는 의식주 공급 체제를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라크가 경제 제재를 당해서 1백만 명이 죽었을 때, 이란도 역시 경제 제재를 당했지만 경제 제재로 죽은 이란 사람은 없거든요. 미국이 직접적인 군사 공격을 해서 이란을 굴복시킬 승산은 없다는 거죠.
따라서 제 생각에 이란에 대한 직접적인 전쟁까지는 현재까지는 예상하기 어렵고, 다만 이스라엘과 공조해서 핵시설에 대한 제한적인 폭격이나 공중 공격은 가능성이 있죠.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핵시설을 공격한 전례가 있으니까요.
원래 시리아가 레바논에 군대를 주둔시켜 온 건 이스라엘이 불법으로 레바논을 침공해서 점령했을 때, 거기에 대한 대항으로 간 거에요. 실제로 지금도 이스라엘이 유엔의 안보리 결의안을 무시하고 시리아의 골란 고원 일대를 점령하고 있구요.
원인을 제공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의 골란, 웨스트뱅크에 대한 불법적인 점령 상황을 해결하지 않고 있는데, 그 때문에 생겨난 후속 조치에 대해서만 문제 삼는다는 것은 완전히 이중잣대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