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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의 ‘제국주의’ 강령 삭제, 우려스럽다

8월 27일 열린 노동당 당대회에서 강령 개정안이 통과됐다. 강령 개정안을 포함해 이번 노동당 당대회의 방향성은 ‘좌파적(이지만) 개혁주의’의 성격을 더 분명하게 하는 것이었다(관련 기사: 노동당 “혁신”이 가리키는 방향은 어디인가?). 그래서 이번에 개정된 강령은 반(反)자본주의 지향성을 누그러뜨리고 대신에 “신자유주의 종식”이 강조됐다.

그리고 강령 개정으로 제국주의 용어와 관련 부분이 삭제됐다. 기존 강령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노동당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성별위계 구조와 생태 파괴 문명에 맞서 싸[운다.]” 그러나 이 부분이 개정되면서 ‘제국주의에 맞선다’가 없어진 것이다. 그 대신 “전쟁위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군사주의가 종식된 사회의 건설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가 들어갔다.

노동당은 당명에 “노동”을 유지해 올 만큼 노동자 운동의 유기적 일부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명에서 “노동”을 빼려는 당내 일각의 시도가 계속돼 논란이 있어 왔고, 이 외에도 여러 쟁점으로 첨예한 내부 논쟁이 거듭돼 왔다. 더구나 제국주의 문제가 매우 중요한 지금, 노동당이 강령 개정에서 ‘제국주의 반대’를 빼 버린 것은 안타깝다.

제국주의는 낡은 개념?

노동당 당대회에서 금민 정책위 의장은 지금의 미국 등을 제국주의라는 “20세기 초반 개념”으로 다룰 수는 없다며, ‘제국주의’ 개념이 강령에 남아 있다면 불필요한 논란을 부를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미국·중국·북한 등이 일으키는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정세 속에 노동당이 지향할 바는 “반핵평화주의”라고 주장했다.

노동당의 기존 강령에는 ‘제국주의 반대’도 있었지만 “평화주의 정당”으로서의 성격이 강조돼 있었다. 금민 의장의 설명대로라면, 강령에서 ‘구좌파’의 낡은 ‘제국주의’ 개념을 걷어내어 평화주의 이데올로기로의 일관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도인 듯하다.

‘제국주의 반대’가 빠진 데는 금민 의장을 포함한 옛 사회당계의 자본주의 분석과도 관련 있는 듯하다. 옛 사회당계는 신자유주의 시대인 이제 생산현장에서의 착취보다 금융 수탈을 통한 축적이 더 중요해졌다고 주장하는 등 자본주의가 과거와는 전혀 달라졌다고 한다(관련기사: 금융수탈체제론, 어떻게 볼 것인가). 옛 사회당계가 ‘제국주의 반대’가 아니라 ‘평화주의’를 강조하는 데는, 오늘의 세계가 마르크스·엥겔스·레닌 등이 살던 시대의 자본주의와는 다른 일종의 ‘포스트 자본주의’라고 보는 것과 관계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주의는 자본주의와 군사주의의 체계적 연관을 부정한다. 예컨대 한국의 주요 평화주의적 좌파는 냉전 당시 유럽에서 벌어진 핵무장폐기운동(CND)을 반핵평화 운동의 이상적 모델로 여긴다. E P 톰슨을 비롯한 CND 지도자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론으로는 핵군비 경쟁을 벌이는 군사주의의 동역학을 설명할 수 없다며, 핵무기 문제는 계급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문제라고 주장했다(“절멸주의”). 이런 주장은 결국 핵무기 없는 자본주의가 가능하다는 환상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평화주의는 (평화를 바라는 대중의 소박한 정서를 표현해 주지만) 항구적 평화를 이루는 진정한 대안을 제공해 주지는 못한다(관련기사: 사회주의자들은 평화주의에 대해 뭐라 말하는가?).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첨예하게 이익 충돌을 벌이고 그 경쟁이 경제적 형태를 넘어 군사적 형태를 띠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노동당이 지향하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확립이 자본주의 폐지 없이 가능할까?

노동당이 북한과 미국의 갈등을 두고 대체로 균형적 양비론을 취해 온 것도 그들의 반핵평화주의와 관련 있을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폭력적 위계질서라는 맥락에서 떼어 낸 채, ‘핵무기 대 핵무기’의 “군사주의적” 갈등으로만 이해하게 되니 말이다.

오늘날의 한반도

오늘날 동아시아와 특히 한반도 주변 상황을 보면, 제국주의는 결코 낡은 개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 강대국들 간의 갈등이 계속 점증하고 있고, 이 때문에 한반도에서 계속 긴장이 쌓이고 있다. 따라서 노동당을 포함한 노동자 운동이 반제국주의 강령을 분명히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물론 20세기 초반에 견줘, 식민지가 (한두 예외를 빼곤) 사라지는 등 오늘날 제국주의의 형태는 변했다. 그러나 ‘형태’가 변한 것이지,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강조했던,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세계를 지배하려고 서로 경쟁하는 체제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내재적 논리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본다면, 반제국주의적 노동계급 운동은 자본주의와 전쟁 위협에 맞서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을 촉진시키는 방향을 지향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다른 당도 아니고 “노동”당이 강령에서 ‘제국주의 반대’를 빼고 평화주의적 지향을 더욱 강화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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