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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제국주의 그리고 저항

독도 문제에 대한 민주노동당내 논쟁을 살펴보면서 독도 문제의 기원과 오늘날의 의미를 밝힌다.

지난 3월 16일 일본 시마네 현 의회의 ‘독도의 날’ 조례 제정 뒤 독도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에 항의해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거나 심지어 어떤 사람은 투신하는 등 커다란 분노를 드러냈다.


이러한 가운데 독도 문제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대응이 당 안팎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독도 문제에 대한 초기 당 성명서와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와 일부 의원들의 독도 방문, 서울시 학생위원회의 독도 방문 시위 등은 “감상적 민족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당 대의원대회에서는 독도 투쟁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서울시 학생위원장 해임건이 안건으로 상정되기도 했다.(해임안은 정족수 미달로 표결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그 정치적 함의뿐 아니라 토론·논쟁할 문제를 행정 조처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도 유감이다.)

민주노동당의 구체적 활동 방식과 몇몇 주장(예컨대 독도에 군대 파견, 독도 개발 주장 등)에 이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것은 비교적 사소한 문제다. 문제의 본질은 민주노동당이 독도를 한국땅이라 주장하며 일본에 항의한 것이 과연 “진보정당의 명예를 실추”한 “쇼비니즘(국수주의)”이거나 “파시즘”인가 하는 점이다.

자유주의자들과 추상적 국제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발은 단지 비이성적인 “광기”가 아니다. 40년에 걸친 일본의 식민 지배 역사를 무시한 채 한국의 민족주의를 일본의 민족주의와 도매금으로 취급하는 것은 지독한 추상이다.

일본이 독도를 ‘다케시마’라 부르며 영유권을 선언한 것은 1백 년 전 조선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시마네 현 고시를 통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할 당시 조선 정부의 적극적 항의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그러나 1905년에 조선은 일본에 의해 외교권을 박탈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항의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였다. 러일전쟁을 개시한 일본은 1904년 2월에 ‘한일의정서’를 강요해 사실상 조선을 보호국 체제로 두었다. 그리고 1905년에는 군대를 앞세워 강제로 을사조약을 맺고는 무력으로 통치하기 시작했다.

1905년 독도의 일본 영토 편입이 제국주의적 침략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것(즉, 독도가 한국 땅임을 부정하는 것)은 그 동안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펼쳐 온 주장이다.

따라서 독도 문제는 주권국 사이에 흔히 일어나는 영토 분쟁과는 성격이 다르다. 일본의 진보적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도 지적했듯이 독도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해방된 한국의 상징이다. 경제적 가치가 별로 없는 돌섬에 불과한 독도를 둘러싸고 수십 년간 지속해 온 한일간 대립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다함께〉 37호에 실린 한규한의 글은 이 점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독도 문제에 대한 추상적 국제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해 온 독도에 대해 일본이 걸핏하면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의도가 제국주의 팽창 야욕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특히 이번 시마네 현의 독도 조례 제정은 일본의 조선 침략 1백주년을 기념한 조처였다는 점에서도 상징적이다.

이 일이 그저 일개 지방정부 의회가 벌인 돌출 행동이라는 일본 정부의 말을 믿는 것은 음험하거나 순진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단지 몇몇 극우의 돌출 행동이 아니라 공식 정치 자체가 뚜렷이 우경화하는 흐름 속에 있다. 수상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소동이나 문부과학성의 왜곡된 역사교과서 검정 계획은 한 예일 뿐이다.

1990년대 동안 꾸준히 진척돼 온 일본의 군국주의 흐름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날개를 달았다. 고이즈미는 자민당 창건 50주년을 기념해 올 11월까지 평화헌법 개정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전쟁 포기 선언과 함께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 9조의 폐지는 경제력에 걸맞는 군사력을 갖추려는 일본 지배계급의 오랜 소망이다.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가운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까지 넘보며 군사대국화의 꿈을 향해 착착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독도 문제는 단순히 과거 식민지 시대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다시 제국의 영광을 구가하고 싶어하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세계 제패 야욕에 맞서는 문제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항의해 한국 정부에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에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것이 곧 우익 민족주의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한국 지배계급은 일본 지배계급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가운데 권력을 유지해 왔다.

해방 이후부터 역대 군사 정부에서 국가권력과 사회의 핵심 요직을 장악해 온 자들은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를 비롯한 친일파들이었다.

그래서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는 강경한 반일 정책을 내세우면서도 반민특위를 무산시켰고, 박정희와 김종필은 1965년 한일협정을 맺어 일본의 식민지 배상 책임을 면제시켜 주었다.

우익은 독도 문제에서 일본을 규탄하지만 친일 잔재 청산에는 적대적이다. 한승조, 지만원, 조갑제 같은 우익들은 지금도 일본 식민 지배를 축복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한국 자본주의가 일본 자본주의와 긴밀한 연관 속에서 발전해 온 데다가 지난 수십 년간 형성돼 온 한미일 군사동맹 때문에 한국 지배자들과 일본 지배자들의 이해관계는 긴밀하게 얽혀 있다.

물론,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는 아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 지배자들의 이해관계가 때로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협력하는 가운데서 갈등한다.

따라서 한국 지배자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일관되게 반대할 수 없다. 노무현이 얼마 전 일본과 “각박한 외교 전쟁”도 불사하는 강경 대응을 약속했으면서도 한일회담을 상반기 내에 추진하려는 것도 이런 일관성 없음을 보여 준다.

노무현은 고이즈미에게 “내 임기중에는 과거사 문제를 언급하지 않겠다”고 안심시킨 바 있다. 재작년 한일정상회담에서는 심지어 일본의 평화 헌법 파기도 문제 삼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국은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날개를 달아 주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 파병해 한미일 공조를 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무현의 ‘신외교 독트린’과 그에 대한 〈조·중·동〉 등 우익들의 비판은 모두 위선이다.

이런 점에서 독도 문제에 대한 대중의 항의가 지배자들이 계급 문제를 은폐하는 데 이용될 뿐이라는 일부 좌파의 시각은 틀렸다. 지배자들이 민족주의적 수사를 사용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지배자들이 처한 모순된 상황을 놓쳐선 안 된다.

독도 문제에서 한국인들의 분노가 민족주의로 표현된다고 해서 반동적인 것으로 기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다. 한국 민족주의의 기원과 모순을 이해하지 못하는 추상적 사고는 민족주의를 극복하는 데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국제주의는 현실에 대한 구체적 이해에 바탕을 둘 때 실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