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학교, 단계적 전환 아니라 전면 폐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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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2019학년도부터 외고·국제고·자사고의 학생 우선선발권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특권학교의 일반고 전환은 “학교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희망 학교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우선선발권을 없애고 일반고와 동시 전형을 한다고 해도, 특권학교가 존재한다면 그쪽으로의 쏠림은 여전할 것이다. 벌써부터 “주요 대학 진학률이 높은 대원외고, 전주 상산고, 민족사관고 등 상위권 특목고는 살아남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으로 대학서열화가 더욱 공고해지고 특권학교로 인한 고교 서열화까지 확대되면서 교육 불평등이 커졌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로 자사고와 특목고는 ‘우선적인 학생 선발권’과 ‘교육과정 편성 자율권’, ‘특별 재정 지원’이라는 3종 선물 세트를 받았다.
특목고·자사고가 매년 11월에 일반고보다 한 달 먼저 학생을 뽑아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점하면서 일반고 슬럼화가 진척됐다. ‘다양성’의 이름으로 허용된 학생 선발권과 교육과정 편성 자율권은 학교를 입시학원으로 만들었다. 전체 수업에서 국영수가 차지하는 비율이 50퍼센트를 넘는다. 이 학교들은 법인의 교육전입금은 별로 늘리지 않고 학부모의 고액 납부금에 의존하는데, 이런 재정 구조는 노동계급의 자식들에게는 높은 진입 장벽이다.
교육부의 ‘2013년 학교별 연간 학비 현황’을 보면, 일반고보다 특권학교가 대략 8배 정도 학비가 많다. 청심국제고는 1천5백만 원, 경기외고는 1천2백만 원을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야말로 특권층을 위한 ‘귀족 학교’라 할 수 있다.
2009년 민주당 김춘진 의원실이 발표한 ‘외고생 학습실태와 교육만족도 조사 결과’ 자료를 보면, 수도권 외고의 경우 월 평균 1천만 원 이상의 고소득 가정 출신이 16.8퍼센트에 이른다. 부모의 경제 수준이 높을수록 특권학교에 갈 확률이 높아짐으로써 계급 차별 교육이 공고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탓에 사교육비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중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2007년 23만 4천 원에서 2016년 27만 5천 원으로 늘었다. 2015년 조사에서 광역 단위 자사고로 진학하길 바라는 중학생 중 91.4퍼센트가 사교육을 받았다.
주춤
이러한 교육 불평등과 사교육비 증가의 고통 속에서 ‘촛불 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일 때 “외고·국제고·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고 일반고와 특목고, 자사고 고교 입시 동시 실시”를 공약했다. 그러나 전환 시기, 방식, 대상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개혁 의지에 의구심을 갖게 했다.
이번에 발표된 교육부의 안도 특권학교의 교장·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일괄 전환이 아닌 단계적 전환이다. 그조차도 보수적 반발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특권학교 폐지는 단계적 전환이 아닌 전면 폐지가 답이다. ‘좋은교사운동’이 외고, 자사고 전환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을 조사했는데 ‘법적 근거 삭제를 통한 일괄 전환’(49퍼센트)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정부 출범 초기를 흔히 개혁의 골든 타임이라고 한다. 지금 특권학교를 전면 폐지하지 못하면 보수적 압력으로 동요하다 좌절되고 말 것이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2014년 당선 후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중하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자사고 지정 취소를 1년 유예하다, 결국 한 곳도 취소시키지 못하고 완패한 경험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진보 교육감 출신인 김상곤 교육부장관도 벌써부터 주춤하고 있다. “2015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수능은 절대평가로 추진”하겠다는 공약에서 후퇴해 일부 과목만 절대평가 하는 안이 함께 제시됐고, 절대평가 등급도 9등급으로 설정해 그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그러나 이런 미미한 수능 개편 조차도 눈치를 보다가 1년 유예를 했다.
무엇보다, 현행 대학 서열 구조를 유지한 채, 특목고 폐지, 수능 개편, 고교학점제, 혁신학교 확산 등 고교체제의 개편은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대학서열 체제를 혁파하지 않는 교육 개혁은 물거품이 되기 일쑤다.
대학을 포함해 모든 학교를 평준화하고 유아 교육부터 대학 교육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무상교육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