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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운노조 비리 - 노조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공격

노무현 정부는 항운노조 비리를 빌미 삼아 노동조합에 대한 정치적 공격을 가하고 있다.

항운노조 관료들이 자본의 대리인 구실을 하며 구린 뒷거래를 한 것은 노동 계급의 대의라고는 조금치도 없으므로 전혀 옹호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그닥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상사가 되다시피 한 기성 정치인들의 뇌물 수수와 기업주들의 인사 전횡과 비교하면 정부와 언론의 비난은 터무니 없다.

메시지는 매우 간단하다. 정치인과 기업주 들에 적용되는 잣대가 따로 있고, 노동조합에 적용되는 잣대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기아차 채용 비리에 이어 항운노조에 대한 정부의 사법적 공격은 정치적인 목표를 갖고 있다.

지금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노동법 개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공격은 양대 노총 모두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정부는 반발의 강도를 무디게 할 요량으로 양대 노총의 핵심 노조들을 공격했던 것이다.

따라서 투사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사법적 공격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행여 항운노조가 한국노총 작업장이라고 해서) 노동계 전체를 비리 집단으로 싸잡아 매도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무기력하게 된다.

우리 지배자들은 너무나 자주 그런 비열한 공작을 벌이곤 했다. 1998년에 미국 연방 검찰은 전미트럭운송노조(팀스터즈) 전 위원장 론 캐리가 위원장 선거에서 부정을 저질렀다며 기소했다.

이것은 론 캐리가 1997년에 UPS ― ‘기업의 천국’ 미국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기업 중 하나인 ― 를 상대로 파업을 벌인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론 캐리의 선거 부정은 표면적 이유였을 뿐, 조직 노동자의 핵심을 겨냥한 정치 공세였던 셈이다.

일부 활동가들은 잇달아 터지는 노동조합 비리에 실망한 나머지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데, 내 보기에 이것은 위험한 접근이다.

정부가 노조 내부 문제에 개입할 때는 반드시 불순한 의도를 숨기고 있기 마련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검찰의 론 캐리 기소는 우파 지도자 제임스 P 호파의 위원장 당선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호파도 조합비로 선거 캠페인을 했음에도, 그가 기업 이사회와 협력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인물이라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았다.

항운노조 관료들이 론 캐리처럼 투쟁을 이끈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 정부가 항운노조를 공격하는 목적은 빌 클린턴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다른 한편, 부산 항운노조가 지난해 탄핵 정국 때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전력도 노무현의 보복 심리를 자극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투쟁을 단속하는 한편, 이 참에 국가가 주도해 위로부터 노조를 ‘개혁’하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회계·재정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노조에 대한 정부의 감독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 되면 노동조합이 국가에 종속될 위험이 있다.

국가와 자본에 종속된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결성했던 것이 이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열우당 이목희는 항운노조의 노무 공급권을 박탈하고 클로즈드숍(조합원만 취업할 수 있는 제도)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노조에 독점적인 노무 공급권을 부여한 것은 국가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는 핵심 기간 산업의 노조를 친국가 노조로 묶어둘 수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조합이 채용권을 갖게 되면 불가피하게 타락하게 된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은 채용권을 갖기보다는 기업주에게 더 많은 인력을 채용할 것을 요구하고 투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부두 노동자들의 구체적 조건 ― 작업할 때마다 고용주가 매번 바뀌는 ― 을 개선하지 않고 노조의 노무 공급권만을 박탈한다면 많은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거나 비정규직이 될 것이다.

클로즈드숍이 꼭 현장 조합원에게 이로운 것만은 아니다. 이 제도는 노조내 좌파를 단속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예컨대, 1940∼50년대 프랑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사실상 이와 유사한 노조 체계 때문에 공산당이 주도하는 CGT(노동총동맹)에서 활동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도 철도노조가 민주화하기 전에 이 제도가 그런 식으로 악용됐다.

그럼에도, 이것은 현장 조합원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을 통해 결정할 문제이지, 국가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국가가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노조 개혁을 반대해야 한다. 민주적이고,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조합을 건설하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투쟁만이 진정으로 노조를 개혁할 수 있다. 이것이 2001년에 철도 노동자들이 보여 줬던 교훈이다.

정부의 노동조합 비리 공격은 그런 운동을 겨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