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라는 호들갑과 기술결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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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 논의가 유독 뜨겁다는 것은 구글 트렌드 검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글 ‘4차 산업혁명’의 관심도가 영문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을 크게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영어 사용자가 한글 사용자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차이는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과학사·과학철학을 전공한 홍성욱 서울대 교수는 “지금 문재인 정부가 외치는 4차 산업혁명은 박근혜 전 정부 시절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나온 ‘지능정보산업 발전계획’이 진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도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나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처럼 정치적 유행어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는 4차 산업혁명에 유독 열광하지만 정작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에 기반이 되는 기초과학에 대해서는 충분히 관심을 갖고 투자하지 않는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여러 기술들(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등)이 획기적인 ‘혁신’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예를 들어 《3차 산업혁명》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조차 “4차 산업혁명 주장은 불발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이라는 “물리, 디지털, 생물학적 세계의 융합”이 사실은 3차 산업혁명의 특징이라는 게 리프킨의 주장이다.
로버트 고든 같은 경제학자는 ‘IT 혁명’(리프킨이 말한 ‘3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에도 비판적이다. 고든은 최근의 정보통신기술보다는 전신, 전구, 실내 배관이나 도시 정화시설처럼 20세기 초에 개발된 기술들이 생산성 향상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기술결정론
홍성욱 교수는 “4차 산업혁명론은 기술이 발전하면 산업이 발전하고 사회가 변할 것이라는 기술결정론식 발전관을 피력하고 있다” 하고 올바로 지적했다(사실 이런 문제점은 ‘4차 산업혁명’을 부정하는 제러미 리프킨이나 로버트 고든도 공유하고 있다). 인공지능 같은 과학 기술이 누적적으로 발전한다면 언젠가는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전망도 기술결정론에 기반을 둔 주장이다. 이런 기술결정론은 기술 혁신을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믿는 네오슘페터주의이다.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기계가 언어 같은 인간의 독특한 사회적 특징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기술 발전이 곧장 사회 관계를 결정하거나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흔히 증기기관과 방적기의 발명, 석탄의 사용 같은 기술 발전이 산업혁명을 초래한 (거의 유일한) 원인이라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했던 중국 당나라나 송나라에서는 왜 산업혁명 같은 사회 변화가 없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산업혁명이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까닭은 17세기에 일어난 영국혁명(이른바 청교도혁명)으로 시장 관계와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기반을 둔 사회가 이미 확립됐었기 때문이다. 이제 (옛 지배계급을 포함한) 유산 계급의 부(富)는 시장의 힘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느냐 못하느냐에 좌우됐다. 유산 계급은 이윤 추구를 위해 생산을 조직했고, 인클로저 운동(제2차 인클로저)으로 근대적 노동계급을 형성했다. 요컨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등장·확대가 기술 혁신과 결합하면서 거대한 사회 변화를 초래한 것이다.
기술결정론에 따르면, 과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생산력이 크게 증대되면 사회도 이런 발전에 부응해 정의롭고 합리적이며 평등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기술 발전보다 더 중요한 점은 과학 기술을 둘러싼 사회 관계의 변화라 할 수 있다.
탈숙련화
한편, 많은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특히 숙련도가 낮은 직종일수록 이런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될 것이라고 여긴다.
2013년 칼 베네딕트 프레이와 마이클 오스본이 발표한 자동화와 일자리 변화에 대한 연구 결과가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것 같다. 그들은 임금과 교육 수준이 낮은 직종일수록 자동화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기술 발전이나 자동화가 필연적으로 일자리를 줄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기술 발전은 일부 부문의 일자리를 줄이지만 다른 부문의 일자리는 늘린다.
또 자본주의 역사는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전체 일자리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보여 줬다. 예컨대, 19세기 방직 공정의 자동화로 면직물 가격이 하락하자 오히려 면직물 수요가 늘어났다. 그래서 1830~1900년 방적공은 4배 이상 늘어났다. 20세기 말 PC의 보급으로 사무 자동화가 진전됐지만 PC 관련 다양한 직종이 생겨나면서 일자리는 더 늘어났다.
기술 발전이 숙련 노동을 끊임없이 단순반복적 반숙련 노동으로 해체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프로그래밍 직무는 초기에는 숙련 노동에 해당됐지만 지금은 전형적인 단순반복적 반숙련 직무가 돼 버렸다.
하지만 일부 직종에서 숙련노동이 반숙련 노동으로 대체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업의 많은 핵심 부문은 숙련노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예컨대 조선, 자동차, 기계 등 제조업의 핵심 영역은 여전히 숙련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이 체득하고 있는, 매뉴얼로 표현하기 힘든 기술 습득의 노하우를 로봇이 대체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비정규직이 기계로 대체될지도 의문이다. 비정규직의 많은 업무들 또한 단순 반복이기보다는 그 나름으로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하거나 인간관계 속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감정노동’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든가, 모든 숙련 노동력을 미숙련 또는 반숙련 노동력으로 대체하고 이마저도 로봇이 대체할 것이라든가 하는 전망은 일면적일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과장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저항할 자신감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4차 산업혁명이나 자동화 그 자체보다는 이런 일면성과 과장이 더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