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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 원 운동 평가 논쟁:
대중의 요구와 운동을 중시해야 한다

최근 최저임금 운동 평가를 둘러싸고 다시금 논쟁이 불거졌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노동과건강》 9월호에서 민주노총 집행부의 최저임금 운동 평가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쏟아 냈다. 그는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 위원이었기 때문에 비판의 무게가 남달랐다.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이남신 소장의 비판을 공개 반박했다.

그 뒤 민주노총 중집의 최저임금 운동 평가 토론에서도 집행부가 제출한 평가안을 둘러싸고 날카로운 이견들이 제기됐다.

민주노총 집행부를 겨냥해 안팎에서 제기된 비판의 핵심은 ‘최저임금 투쟁의 성과를 부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역대 최대 인상이라는 성과를 거뒀는데, 왜 최저임금 1만 원 요구를 성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과를 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느냐는 것이다.

이남신 소장 등은 최저임금 1만 원 요구는 “이상적인 목표”였고, “교섭 목표와 투쟁 목표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 1만 원 요구는 애초 가능하지 않았는데, (문재인의 공약 덕분에)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역대 최대 인상을 얻어낼 수 있었으니 대성공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지극히 일면적이다. ‘최저임금 1만 원’은 그저 이목이나 끌어 보자고 높이 ‘올려친’ 요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최저임금이 가구 생계비는커녕 노동자 1인 표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처지 개선을 위한 절실한 필요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또, ‘최저임금 1만 원’을 운동의 요구로 채택한 것은 그 절실한 ‘필요’를 노동운동이 진지하게 성취해야 할 목표로 설정했음을 뜻했다.

최저임금 1만 원 요구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특히 지난해 퇴진 운동에서 광범한 지지를 얻었다. 그러자 부르주아 정당의 대선 후보들조차 눈치를 보며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공약했지만, 늘 그렇듯이 미온적이었다.

그래서 노동운동은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 원으로 단계적 인상을 하겠다는 문재인을 비판하며 “지금 당장” 올리라고 요구했다. 문재인의 공약은 많은 저임금 노동자와 청년의 필요에 비춰 보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저임금 1만 원 운동 연대체인 ‘만원행동’의 집행위원장까지 역임한 이남신 소장이 이제 와서 ‘최저임금 1만 원’ 요구가 ‘이상적 목표’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운동의 의미를 무색케 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1만 원’을 위해 투쟁해 온 대중 운동을 무시하는 처사인 것이다.

운동 지도부는 그 요구를 성취하지 못했을 때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운동을 하다 보면 세력관계 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최선을 다하고도 불가피한 결과였는지, 투쟁을 확대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은 자기제한적인 투쟁의 귀결이었는지에 따라 지도부에 대한 대중의 평가와 신뢰는 달라질 것이다.

교섭장에서도 운동의 요구는 ‘이상적 목표’로 치부돼서는 안 되고, 교섭위원은 그 요구를 올곧게 대변했는지 여부로 평가받아야 한다.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이 이남신 소장을 비판하며 꼬집었듯이, “투쟁목표와 교섭목표가 다른 것이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변명과 합리화의 근거로 차용하는 논리인 경우가 많다.”

교섭 완승?

어떤 사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서를 아전인수 격으로 끌어와 최저임금 투쟁에 대한 성과 일면적인 평가를 정당화하려 한다. 올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6·30 비정규직 파업의 성과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결과에 만족하는데도, 민주노총 집행부가 대중 정서와 괴리된 부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남신 소장은 민주노총 집행부가 “상식적인 수준에서 조합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지 않고 “근본주의적 입장만 고수”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마치 자신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와 정서를 대표한다고 가정하고, 민주노총 집행부(와 노동조합 좌파)를 대중과 괴리된 집단 취급하는 것은 지나친 독선이 아닐 수 없다. 최저임금 투쟁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6·30을 비롯한 비정규직 자신의 투쟁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도 억지일 뿐이다.

오히려 최저임금 투쟁에 대한 성과 일면적 평가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6·30 파업 같은 노동자 투쟁의 확대에 별 열의를 보이지 않았던 경우가 많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노동운동이 새 정부를 흔들지 말아야 한다’는 개혁주의 전망 속에서 도리어 ‘총파업이 웬말이냐, 투쟁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마저 있었다.

그래서 민주노총의 “사회적 총파업”을 지지하지 않거나, 최저임금 1만 원 운동 연대체의 명칭에 “사회적 총파업”이 포함되는 것을 반대하기도 했다. 영세 중소 상인들과의 동맹에 방해가 된다는 것도 “사회적 총파업”을 반대하는 이유의 하나였다. 영세 상인들에게서 최저임금 1만 원 요구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는 것은 좋지만, 이것이 노동자들의 투쟁보다 중요한 과제일 수는 없는데 말이다.

대신에 그들은 문재인 당선 직후부터 최저임금위원회 복귀를 거듭 주장하고 재촉했다. 양대노총이 최저임금위원회 제도 개선 없이는 복귀하지 않겠다며 탈퇴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6월 초 양대노총은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최저임금위원회에 복귀했고, 전과 마찬가지로 불리한 조건에서 교섭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런 불리한 조건을 감안하면 협상장 밖 투쟁 조직이 더욱더 중요했지만, 교섭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면서 투쟁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그럴수록 협상장 안의 후퇴 압박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남신 소장은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를 “가장 극적으로 노동계가 완승한 교섭의 장”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민망할 정도의 자찬이다. 실제로는 공익위원들의 꼼수 압박 때문에 노동 측은 옴짝달삭 못했다. 노동계는 사측의 안으로 결정되는 것을 피하려면 공익위원 측이 제시한 상한선(문재인의 공약) 수준의 수정안을 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이런 식으로 노동계가 문재인의 공약 수준으로 끌려간 것이지, 그 역이 아니었다.

남정수 대변인은 민주노총이 ‘경매입찰식 결정과정’이라고 평가한 이와 같은 문제를 이남신 소장이 공개적으로 밝히거나 비판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복되는 한계를 극복하기

올해 최저임금이 16.4퍼센트 인상된 후 사용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하려 애쓰고 있다. 문재인 정부 자신도 ‘속도조절론’을 언급하며 후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동부장관 김영주는 “2~3년 안에 1만 원에 맞춘다기보다는 그때 보면서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없이는 노동자도 없다”면서 말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에 기대서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성취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이런 점에서 올해 투쟁을 돌아보면서 곱씹어 봐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최저임금 1만 원은 어떻게 해야 성취 가능했느냐 하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최저임금 1만 원은 절실한 필요에서 제기된 것이었고 민주노총이 그것을 자신의 요구로 채택한 것은 올바랐다. 그러나 ‘좋은’ 요구 선정이나 생색내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최저임금 1만 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요구를 성취하기 위한 걸맞은 수단이 진지하게 추진돼야 했다.

민주노총은 올해 최저임금 투쟁을 “전 조직적 투쟁”과 “사회적 총파업”으로 이끌어 해마다 제기된 투쟁 동력 형성의 어려움을 극복하겠다고 계획했다. 그러나 조직력을 실제로 동원하는 투쟁이 조직되지 못하다가 결국 대의원대회의 파업 방침이 중앙집행위회의에서 비정규직만의 파업으로 축소·변경됐다.

‘해마다 제기된 투쟁 동력 형성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핵심은 바로 민주노총 조합원의 대다수인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투쟁에 적극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최저임금 1만 원 요구와 함께 정규직 노동자들의 다른 요구들을 결합해 투쟁을 조직해야 했다.

민주노총의 정규직 조합원 상당수가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는 현실에서, 최저임금 1만 원 요구만 내걸면 다수 노동자들의 파업 참여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이를 두고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들에 연대하자고 정규직 노동자들을 설득하면서도, 정규직 노동자들의 다른 요구를 함께 내걸고 싸우도록 하는 것이 투쟁 확대를 위해 필요했다. 노동 개악의 조속하고 완전한 폐기나 구조조정 반대 같은 것이 그런 요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집행부는 주로 최저임금 1만 원 요구만을 강조하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강조를 확고히 보여 줄 수 있고 그래야 ‘계급 대표성’ 획득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정규직을 참여시키기 위한 요구 결합 등을 진지하게 추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역설이게도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민주노총의 강력한 조직 동원 능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여러 산별 지도자들이 ‘최저임금 요구로 정규직 노조들의 파업을 조직하는 것은 가능치 않다’며 파업 지침 변경을 추진한 것에도 맞서기 어려웠다.

결국 그동안 반복돼 온 최저임금 투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점은 또다시 과제로 남았다. 최저임금을 ‘전 조직의 요구’로 내세운다고 자동으로 ‘전 조직적 투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요구를 결합시켜 두 세력이 함께 투쟁에 나서고 운동을 강화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추구해야 한다.

또 민주노총이 주도적으로 건설한 ‘만원행동’이 미조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홍보와 조직화하기에 활동의 초점을 둔 것이 효과적이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민주노총은 미조직 노동자 조직 성과가 미미했다고 평가했다.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서도 조직 노동자들이 강력한 힘을 보여 주고 자신감 있게 투쟁에 나서야 한다. ‘만원행동’이 주로 미조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활동함으로써 조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긴밀히 연대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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