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앞장서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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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대의 최저임금 인상”이라며 자화자찬했던 문재인 정부가 그럴싸한 포장으로 단물만 빼먹고는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삭감하려 한다.
최근 교육부와 시도교육청들은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이하 학비연대회의)와의 임금교섭에서 2018년부터 기존의 통상임금 산정 소정근로시간을 243시간에서 209시간으로 변경할 것을 강요했다. 이렇게 되면, 내년도 기본급 인상이 거의 없게 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사용자 측이 2018년 최저임금 16.4퍼센트 인상분을 무력화하려는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과 생활 안정으로 이어지도록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와 국가기관이 앞장서 무력화 시도에 나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내년 기본급이 꽤 오를 것으로 기대했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로서는 완전히 날벼락 맞은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에 알맹이가 거의 없음이 드러난 게 얼마 전인데, 최저임금 인상 효과마저 무력화하려는 교육부와 교육청들의 태도에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학비연대회의는 집단 단식농성을 하고 무기한 파업을 예고한 끝에 정부의 후퇴 강요를 일부 막아 낼 수 있었다. 보전수당을 마련해서 2018년에 한 해 최저임금 인상액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임금교섭을 마무리한 것이다. 또, 최저임금 1만 원이 되는 해에 근속수당을 4만 원으로 인상해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를 일부 만회하게 됐다. 그럼에도 최저임금과 근속수당 모두를 인상하기 바랐던 노동자들 사이에선 상당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이번에 교육부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항에 밀려 손실분을 보전하기로 했지만, 소정근로시간을 줄이는 방식을 관철한 것은 매우 괘씸하다. 그것이 다른 부문·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정부 부문에서 만들어진 선례를 따라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 할 것이고, 노조 조직이 없거나 취약한 곳에서는 노동자들이 그것을 막아내거나 보전 방안을 강제하기 어려울 수 있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후퇴는 이미 예견돼 왔다.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했던 문재인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속도 조절’과 ‘국민 부담 최소’ 운운하며 후퇴 가능성을 내비쳤다.
지난 10월 18일에는 어수봉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국정감사에서 “정기상여금과 현금으로 주는 고정적인 교통비, 중식비는 최저임금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급에 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포함시켜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하려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에도 명시됐다. 업종별·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차등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방식도 논의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에 기대서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온전히 성취할 수 없음이 더 명확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