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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반대 성소수자 연서명이 보여 준 가능성

트럼프 방한에 반대하는 여러 목소리 중에는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NO트럼프 공동행동’이 트럼프에 반대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호소했고 노동자연대 성소수자팀과, 제국주의 국가들의 ‘핑크워싱’을 비판해 온 김현우 씨(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소모임 ‘퀴어들의 스터디’ 회원)가 ‘트럼프에 반대하는 성소수자들’ 명의로 연서명을 발의했다.

이 호소에 불과 3일 만에 1백 명이 넘는 성소수자들이 호응해 줬다. 차별과 편견으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많은 성소수자들이 연서명에 참여했다. 정의당 소속의 성소수자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회원들, 여러 대학과 지역의 성소수자 모임의 활동가들, 노동자연대 성소수자 회원들 등이 함께했다.

특히 11월 4일 울산에서 열린 퀴어라이브에 참가한 성소수자들 다수가 흔쾌히 이 연서명에 동참했다. 대진대·차의과대학, 총신대의 성소수자모임은 단체로서 연명했다.

트럼프가 방한 11월 7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트럼프에 반대하는 성소수자들이 ‘NO 성소수자 혐오! NO 트럼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조승진

연서명은 11월 7일 트럼프 반대 집회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해 발표했고 리플릿으로도 반포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성소수자들이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것에 많은 응원과 박수를 보냈다.(생생한 현장 취재 기사: ‘11·7 “No트럼프Day” 현장 소식 ― “트럼프, 우리는 너를 환영하지 않는다”’ 4신) 몇몇 외신들이 이 기자회견을 주목해 보도했다.

일부 대학 성소수자 모임들에서는 연서명 취지에 공감하는 면이 있지만 트럼프 방문 자체를 반대해야 하는지를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미국의 대북 압박으로 한반도 긴장 고조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성소수자 운동 내에서 관련 토론이 더 활성화되길 바란다.

연서명에 동참한 성소수자들은 혐오의 아이콘 트럼프를 환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그의 방한이 한국에서의 동성애 혐오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 큰 공감을 보냈다.

실제로 트럼프를 환영한다고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온 우익의 상당수는 바로 얼마 전까지 ‘동성애가 에이즈를 낳는다’며 온갖 편견과 혐오를 퍼트리던 자들이다. 문재인 정부와 국회가 성조기와 태극기를 높이 달고 트럼프를 환영하는 한편 트럼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차벽으로 가둔 것은 이런 우익들을 더욱 고무시켰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대북 공세가 강화되면 군대 내 성소수자 처벌 같은 성소수자 차별과 억압을 지배자들이 강화할 수도 있다. 차별은 지배계급이 노동계급과 피억압자들을 분열시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진정한 국제 연대

한편 미국 성소수자들의 지탄 대상인 트럼프의 방한에 대해 국내 주류 성소수자 단체 대부분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아쉽다. 이번 연서명 발의자들은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행동(이하 무지개행동)’과 그 안팎의 여러 성소수자 단체들에 연서명 참여를 제안했지만 대부분 답변을 받지 못했다. ‘무지개행동’ 소속 단위로는 유일하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만이 트럼프 방한 하루 전인 6일 저녁 트럼프 방한에 반대하는 논평을 발표하고 7일 저녁 집회에 깃발을 띄우고 참가했다.

아마도 주류 성소수자 단체 리더들의 협소한 관심사와 미국 정부에 대한 우호적 태도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국 성소수자 운동 주류에서 계급, 자본주의, 제국주의 문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이는 성소수자들만의 ‘고유한’ 쟁점에만 치중하면서 정작 차별의 근원인 자본주의와 계급 사회에는 도전하지 않는 경향과 관련 있다.

게다가 무지개행동과 서울·대구 퀴어문화축제조직위 등은 미대사관과 다국적 기업 구글의 지원을 받기까지 했다.(관련 기사: ‘무지개행동과 한국 성소수자 운동 주류의 우경화’) 그러나 미국 정부가 아니라 미국의 기층 성소수자들과 연대하는 것이 진정한 국제 연대다.

트럼프가 중동에 떨어뜨린 폭탄이 성소수자를 피해가지 않았던 것처럼, 한반도 불안정과 국내 정치 상황은 대다수 성소수자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성소수자들의 차별에 저항하고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에 침묵해선 안 된다.

이번 연서명이 보여 준 작은 가능성을 씨앗으로, 앞으로도 트럼프에 반대하고 한반도 긴장 고조를 반대하는 성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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