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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OUT! 노동시간을 대폭 줄여야 한다
주 68시간 행정 해석 당장 폐기하라

문재인은 “과로를 당연시하는 사회가 계속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말과 달리 실제로는 시급한 최소한의 조처조차 뭉그적대고 있다.

특히 주당 노동시간을 최대 68시간까지 허용한 노동부의 행정 해석을 당장 폐기할 수 있는데도, 문재인은 한가하게 국회에 책임 떠넘기기나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한국의 장시간 노동은 비극적 죽음을 낳고 있다 ⓒ조승진

그것의 효과는 그저 한두 달 시행이 늦춰지는 게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정부·여당의 노림수는 수년의 유예기간 두기(2019년부터 2021년까지 단계적 시행), 유연근무제 확대하기, 정규직의 임금·노동조건 저하시키기 등에 있다. 민주당은 국회에 이런 방안들을 내놓으며 “기업 부담 최소화”를 약속했다.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법에 명시된 주당 52시간 상한조차 2021년까지 미루겠다면, 도대체 “임기 내 연 1800 노동시간 실현” 약속은 어찌 되는 것인가?

한국의 장시간 노동은 세계적으로 악명 높다. 지난해 연간 총 노동시간은 2184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무려 420시간가량 길었다. 포괄임금제하에서 집계되지 않는 무보수 초과노동, 스마트기기를 이용해 시도 때도 없이 강요되는 연장근무 등은 빠진 수치다.

노동자들에게 “저녁과 휴식이 있는 삶”은 딴 세상 얘기다. 많은 이들이 만성 과로로 몸이 축나고 삶이 피폐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교대제 근무자들은 신체리듬이 깨져 일하지 않을 때도 쉽게 잠들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그 결과 정부 통계로도 매년 300여 명이 과로로 목숨을 잃는다. 이런 조건에서는 가족과 어울리고 문화·정치 활동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역대 정부들도 말로는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해 왔다. 일부 전문가들은 장시간 근무가 노동 생산성을 떨어뜨린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한국의 노동시간은 좀체 줄지 않았다. 오랫동안 더딘 감소 추세였다가 최근 몇 년 새 정체(혹은 약간의 증가세) 상태다. OECD 국가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이 2013년 이후 증가세로 돌아선 것을 보면 비단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사용자들이 노동시간을 연장해 착취율을 끌어올리는 방식에 여전히 의존하기 때문이다.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이윤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예컨대 자동차 기업들은 주간연속2교대제를 도입할 때 노동강도를 높였지만 생산량을 만회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점심·휴게시간과 휴일을 줄이고 주말 특근을 유지하는 데 공을 들였다. 버스·화물차 운송사업주들도 차량 운행 속도, 적재화물 무게 등을 무한정 늘릴 수 없기에 초장시간 노동에 의존한다.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을 최대한 쥐어짜려고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야간·휴일근무, 교대제, 낮은 기본급의 기형적 임금구조, 포괄임금제 등 다양한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자본의 이해관계에 진지하게 도전할 의사가 없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면 노동운동이 대중 투쟁 건설에 확고히 주안점을 둬야 하는 까닭이다.

노동자의 “선택권” 늘리는 유연근무제?

문재인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의 방법으로 유연근무제 확대를 말한다. 탄력근무제의 일종인 ‘노동시간 저축 휴가제’를 도입하고, “일·생활의 균형”을 위해 유연근무 관행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실제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노동시간 저축 휴가제는 초과근무를 적립해 뒀다가 일감이 줄 때 휴가로 대체·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 사용자가 필요할 때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고 초과근무에 대한 인건비 부담을 피할 수 있다.

재계가 이 제도 도입을 환영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유연근무제가 노동자들이 “원할 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영국, 독일, 미국 등의 유연근무제 경험을 봐도 노동시간 선택권은 노동자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있다.

반면 대다수 노동자들은 들쭉날쭉한 노동시간 때문에 일상을 계획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소득 감소로 불안정성이 더 커졌다.

사용자들이 유연성을 추구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필요에 노동자들을 종속시키려는 것이지, 노동자 개인(가정)의 편의를 봐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생활(가정)의 균형”을 더 위태롭게 할 것이다.

특례업종 폐지하라

근로기준법 59조는 노동시간 규제를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드는 별도의 영역을 두고 있다. 우편, 운송, 보건, 교육서비스, 금융·보험 등 26개 업종은 연장근로 한도가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전체 사업장의 60퍼센트, 노동자의 48퍼센트가 여기에 해당한다.

근래 벌어진 비극적 죽음들은 그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올해 들어 집배 노동자 15명이 과로사했다. 지난 7월 사상자 18명을 낸 고속버스 연쇄 추돌사고는 하루 15~16시간씩 계속되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졸음운전이 원인이었다.

정부가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런 죽음들을 방치해 온 것은 위험천만한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이 의료 사고를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설문조사).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휴식과 쾌적한 노동조건을 보장해야만 안전하고 질 좋은 공공서비스도 가능해진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특례업종조차 폐지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10개로 축소하겠다는데, 운수업, 보건업 등은 여전히 특례업종으로 남게 된다. 그러고도 “과로사 없는 사회”를 말할 수 있는가?

임금·노동조건 저하가 없어야 한다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 위원장 홍영표(민주당)는 휴일근무수당에 대한 중복 할증을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복 할증을 주면 노동자들이 일을 더 하려 할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뻔히 보이듯 그 속내는 따로 있다. 기업주들에게 인건비 부담을 덜어 주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할증 수당에 욕심을 내 초과근무를 하게 된다는 식으로 엉뚱하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말이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들은 저렴해진 휴일근무를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정말로 노동자들이 초과근무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노동시간이 줄어도 임금 저하가 없어야 한다. 임금이 줄면 그것을 만회하려고 노동자들은 연장근무나 투잡으로 내몰릴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노동자들더러 ‘임금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지만, 가뜩이나 경제 위기로 생계가 팍팍해지고 노후 복지도 보잘것없는 상황에서 임금 삭감에 초연할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편,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노동시간을 줄인 만큼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며 노동강도 강화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도입을 강조했다. 그러나 금융·보험업에서 흔히 그러하듯, 성과 경쟁은 연장근무를 조장하는 구실을 한다. 또 강도 높은 노동은 사고 위험과 각종 질환을 낳아 긴 노동시간 못지 않게 삶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이 실제 효과를 내려면, 임금·노동조건 저하가 없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

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만약 노동강도 강화가 수반된다면, 노동시간이 줄어도 기존 인력으로 업무 처리를 할 수 있게 돼 신규채용의 유인이 사라질 것이다. 임금이 줄어도 마찬가지의 효과를 낸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제시하는 ‘일자리 나누기’는 일자리 창출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노동시간 단축에 임금 삭감과 고통분담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운동의 일각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이 임금 삭감으로 귀결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제한된 개선만이 가능하다는 관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필연이 아니다. 투쟁 과정에서 계급 간 힘의 크기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오늘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노동계급에게 절실한 요구다.

한쪽에서는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청년들이 단기 일자리나 실업으로 고통받는 현실은 매우 불합리하다.

노동운동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유연근무제, 임금·조건 후퇴 압박에 단호하게 반대하며, 노동부 행정 해석 즉각 폐기와 대폭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걸고 진지하게 투쟁을 건설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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