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방한에 대한 진보·좌파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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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트럼프 공동행동’ 중심으로 벌어진 트럼프 방한 반대 운동에는 규모보다 훨씬 큰 정치적 의미가 있다.
11월 7일 문재인 정부는 혹여 트럼프 방한 일정에 차질을 빚을까 봐 광화문광장에 이중 삼중의 포위벽을 쳤다. 경찰은 광화문 일대를 진짜 “진공 상태”로 만들고 싶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촛불”의 현장인 광화문광장을 둘러싼 문재인의 “차벽”은 트럼프 방한 반대 운동의 정치적 파장을 역설적으로 보여 준 것이었다.
한 인상적인 장면을 소개하면, 그날 트럼프와 그 일당들이 탄 차량들이 광화문광장을 빠르게 지나가는데, 한 쪽에서 노인들이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었지만 반대편에서 젊은이들이 ‘트럼프, 돌아가라’,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적힌 팻말을 흔들었다.
이런 트럼프 방한 반대 운동은 날카로운 논쟁 속에서 건설된 것이었다. 평화주의적인 온건진보 단체들은 “트럼프 방한 반대” 요구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들은 “트럼프 방한 반대”가 그를 국빈 초청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을 내포한다는 점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11월 5일 온건진보 단체들은 “트럼프 방한에 즈음한” 평화 집회를 따로 열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촉구하는 데 주안점이 있는 집회였다. 수천 명이 참가했다. ‘NO 트럼프 공동행동’이 4일과 7일에 개최한 집회보다 더 컸다. 그러나 트럼프 방한 찬성이냐 반대냐로 양극화한 상황 탓에 그 집회의 정치적 파장은 ‘NO 트럼프 공동행동’의 집회에 훨씬 못 미쳤다.
정의당은 공식정치 안에서 트럼프 방한에 대응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다보니 아쉽게도 트럼프 방한 반대를 표방하지 않았다. 6일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트럼프한테 보내는 공개서한을 내놔, “긴장과 갈등 심화라는 악순환의 촉발자가 아닌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마중물”이 돼 달라는 공허하고 맥없는 메시지를 발표하는 데 그쳤다.
지난 대선에서 200만 표 이상 얻고 사드 문제 등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온 정의당이 트럼프의 방한과 국회 연설에 반대했더라면, 트럼프 방한 반대 운동 건설에 좋은 효과를 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원내 정당 중 민중당만이 훌륭하게도 트럼프의 국회 연설에 반대했다.
근조
한미 정상회담과 트럼프의 국회 연설은 트럼프 방한 반대 운동 진영의 주장이 옳았음을 보여 준다. 북한에 대한 적의를 마구 쏟아내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트럼프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반갑지 않은 손님에게 소금 뿌리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한테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트럼프의 국회 연설을 듣고 “30분 내내 반공교육 받는 것 같았다”고 비난했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교수의 9일자 〈한겨레〉 칼럼 제목은 아예 “근조, 한반도 평화는 죽었다”였다.
트럼프 방한은 진보·좌파에게 다시 한 번 평화 운동 건설의 필요성을 입증해 줬다. 진보·좌파는 문재인 정부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적이고, 트럼프의 패권 정책에 반대하고, 한국 정부의 협력에 반대하는 평화 운동을 건설할 때 이번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
조직 노동운동의 좌파들도 반제국주의 문제에 심각하게 임해야 한다. 자본주의와 전쟁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으므로, 자본주의를 반대한다면서 군사주의와 제국주의 문제를 부차화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