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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 ①:
민족은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왔을까?

민족 문제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을 다룬 글을 격주로 연재한다. 앞으로 제국주의와 민족 문제, 오늘날의 민족 문제, 한국의 민족 문제 등을 다룰 것이다.

민족을 분할선 삼아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오늘날 일종의 상식이 돼 있다. 오늘날의 세계가 국민(민족)국가 중심으로 조직돼 있기 때문에 이런 상식은 현실에 들어맞는 듯 보인다. 특히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민족 문제가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이런 세계관은 세부 내용은 천차만별이어도 몇 가지 가정을 공유한다. 첫째, (사회 형태와 무관하게) 특정 ‘민족성’을 공유하는 민족 공동체가 수백에서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왔다. 둘째, ‘민족성’이 개인(과 집단)의 성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다. 그러므로 셋째, 민족 공통의 이익(‘국익’)이 중요하고, 그에 견줘 개별(특히 계급) 이익은 부차적이다.

우파뿐 아니라 진보·좌파 일부도 이런 가정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트럼프를 환대한 문재인 정부는 ‘같은 민족’인 북한의 보통 사람들(그리고 동아시아 군사 긴장에 반대하는 남한의 노동자들)과 어떤 공통의 이익이 있을까? 남한의 평범한 노동자는 박근혜와 이주노동자와 중 어느 쪽과 공통점이 더 많을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뭇 다른 관점으로 민족 문제를 이해해 왔다.

국민(민족)국가를 만들기 위해 이질적인 사람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묶게 됐다 11월 11일, 구속된 독립 운동 지도자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하며 카탈루냐인 75만 명이 바르셀로나를 행진했다. ⓒ출처 ROSER VILALLONGA

민족은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됐나?

민족은 대체로 “동일한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언어, 풍습, 종교, 정치, 경제, 문화, 역사 등을 갖는 인간 집단”으로 정의된다(《21세기 정치학대사전》). 그러나 이런 규정은 여러 난점이 있다.

지역적 공통점을 민족의 기준으로 삼으면, 짧게 잡아도 수백 년 이상 같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살아 온 카탈루냐인과 스페인(카스티야)인이 다른 민족으로 인식되는 점을 설명할 수 없다.

언어와 풍습도 마찬가지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민족(예컨대 아랍 내 쿠르드족)도 있고, 최소한 수백 년 동안 둘 이상의 언어를 사용한 ‘단일’ 민족도 부지기수다. 예컨대 독일 민족은 200년 전에만 해도 최소한 너댓 개의 언어를 사용했다. 프랑스 민족의 4분의 1은 18세기 초반까지도 프랑스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한민족(韓民族)도 마찬가지다. 19세기 후반까지 수천 년 동안 한반도의 지배층은 한문(漢文)을 주로 사용했고(한글이 국가 공식 문자로 채택된 것은 1894년이다), 다른 국가(특히 중국)의 지배층과 풍습을 공유하려 애썼다.

지금 쓰이는 민족 개념을 설명하려면, 이 개념이 만들어지고 통용된 특정한 사회 형태와 연관해 봐야 한다.

형성

오늘날의 민족 개념은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졌는데, 이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게 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민족 개념은 자본주의가 탄생한 서유럽에서 처음 나타났다.

중세 봉건제가 위기에 처하게 된 것과 동시에, 상업(유통)으로 농업 공동체들을 연결하는 경제권이 형성됐다.(그 경계가 중세 봉건 왕국의 지배 영역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유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각 경제권마다 특정 방언이 공용어 구실을 하게 됐고, 상업 부르주아지(자본가들)는 공용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경쟁자들을 자기 권역에서 축출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권을 넓히는 데에 국가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려면 기존 국가를 지배하는 봉건 지주·왕가의 권력을 빼앗아야 했다. 부르주아 혁명이 발발했다.

부르주아들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수 인민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야 혁명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민족 개념이 새로 만들어졌다. 부르주아들은 ‘민족’을 (씨족·혈족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국민국가의 구성원(국민) 전체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민족이 국민이 된 것이 아니라, 국민(국가)을 구성해야 할 필요성에서 민족이 생겨난 것이다. 처음 경제권이 형성될 때 나타난 공용어, 공동 화폐, 지역적 연결 등이 민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이 과정은 전혀 순탄하지 않았다. 부르주아들은 짧게 잡아도 17세기 후반(영국 혁명)부터 19세기 초(프랑스 혁명)까지 100년 이상 쟁투를 벌여야 했다.

그러나 일단 자본주의 국민국가가 확립된 이후에는 프로이센의 융커든, 일본의 사무라이든, 이탈리아의 왕당파든, 심지어 스탈린주의 관료든 후발 주자들은 모두 국민국가라는 형태를 채택해야 했다.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사회를 발전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용어나 경제적 인프라 같은 ‘민족적 요소’가 없었던 곳에서도 그랬다. 이탈리아 왕당파는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통일하며, 사실상 단절됐던 1500년 전 과거(로마 제국)를 ‘발굴’해 정통성의 근거로 삼았다. 한민족의 뿌리가 고조선이라는 주장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 있다.

이를 두고 역사가 베네딕트 앤더슨은 이렇게 썼다. “신생 국가들의 ‘건국’ 정책에서는 흔히 … 대중 매체, 교육 제도, 행정 규제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심지어 마키아벨리적으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주입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민족주의와 노동계급

민족주의는 (파시즘 같은 특수한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체제 유지를 위한 지배계급의 일상적 노력으로 강화된다. 징병하고, 세금을 걷고, 다른 민족 출신을 천대하도록 조장할 때 지배자들은 민족주의(‘국익’)를 동원한다. 마르크스가 일반적으로 표현했듯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민족 의식이 지배자들에게 쓸모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개별 민족(국가) 자본가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자들은 민족주의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민족 공통’의 이익이 아니라 자기 계급의 이익을 위해 ‘자기 민족’ 자본가들에 맞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민족 공통의 이익(‘국익’)은 사실 자본가들의 이익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자본주의는 세계적 체제이므로 민족성이 어떻든 모두 마찬가지다. 바로 그래서 마르크스주의는 국제주의를 지향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역설한 이유다.

그러나 피지배 계급이 민족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지배자들의 세뇌 때문만은 아니다. 체제가 아무리 싫어도 (바꿀 수는 없고) 타협하고 적응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노동자들에게 민족주의는 소외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집단적 소속감과 심리적 보상을 어느 정도 제공한다. 이런 의식은 흔히 ‘우리 (민족)국가’의 정책에 영향을 미쳐 개혁을 성취하는 것을 최선의 과제로 여기는 개혁주의와 연결된다.

그러나 민족주의에는 다른 측면도 있다. 억압받는 민족의 민족주의가 노동자들을 체제에 맞선 투쟁으로 이끌기도 한 것이다. 이런 점에 주목해 마르크스는 영국 노동자들이 아일랜드의 독립을 지지하며 투쟁해야 한다고 봤다.

세계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변모하면서 민족 억압과 해방 문제는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됐다. 이는 다음 연재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