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보도:
민주노총 임원선거 후보자 언론사 합동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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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일) 오전 성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민주노총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민주노총 임원선거 후보자들 간의 토론회가 열렸다.
선본당 두 명의 패널이 나왔다. 1번 김명환과 김경자(수석부위원장 후보), 2번 이호동과 고종환(수석부위원장 후보), 3번 윤해모와 유완형(사무총장 후보), 4번 조상수와 이미숙(사무총장 후보) 등이었다(존칭 생략하고 열거함).
선관위는 먼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 문재인 정부 하에서 민주노총의 전략과 투쟁, 활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
가장 온건한 윤해모 후보는 노사정위원회 참가를 강조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노동조합 하기가 좋아졌고, 친노동 정부이므로 문재인 정부와 함께 민주노총의 현안 문제를 풀어 가야 한다.” 윤해모 후보는 80만 조합원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름 전에 열린 전국노동자대회는 문재인에 대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기대가 오히려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줬다.
한편 좌파인 이호동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민주정부 3기라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민주노총이 정확하게 판단하고 분석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6개월이 그런 시간이었다. 이제 일정한 비판적 문제 제기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김명환 후보는 현재 문재인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꼬집으며(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지지부진, 단시간 근로자 유연 근무제, 야간 연장 확대, 한상균 구속,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법외노조 상황), 현 상황에서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덧붙였다. “대화와 교섭, 비판과 투쟁, 대안을 제시해 … 문재인 정부를 견인하겠다.” 그리고 ‘사회적 대화’의 새로운 틀로 ‘신8인회의’를 제안했는데, 그는 이것이 새로운 노사정위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문재인과 그의 정당이 비록 한국 지배계급의 두 번째 선택지이긴 해도 확고한 자본주의 수호 정당이므로, 문재인 정부를 견인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견인하려 (헛되이) 애쓰는 과정에서 노동자 측이 타협하고 양보하라는 압박을 받을 것이다.
조상수 후보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정부이자 자유주의 정부라는 두 가지 성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촛불혁명’ 과제의 완수(적폐 청산, 사회 대개혁)에는 협력하고, 자유주의적 한계에 맞서서는 투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그 자신이 설정한 적폐의 청산에도 미온적이다. 게다가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는 촛불 100대 과제 이행률이 2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기구의 대부분은 문재인 정부와의 협치를 바라는 입장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노동자 운동이 적폐로 여기는 미해결 과제를 청산하고 노동계급에 이익이 되는 사회 개혁을 이루려면 먼저 문재인 정부와 투쟁을 해야 한다는 점이 압도적으로 강조돼야 하지 않겠는가.
조 후보는 투쟁 전략으로 ‘연대노총’과 ‘사회세력화’를 제시했다. ‘사회세력화’는 자유주의 정부가 탄압 전에 사회적 여론을 동원해 민주노총을 고립시킬 수 있으므로 사회적 여론을 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 후보의 연대노총 전략은 고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과 관련해 양보의 여지를 살짝 열어 두고 있다.
재벌 개혁
선관위는 후보들에게 어떻게 재벌체제 개혁을 할 것인지 물었다. 모든 후보가 재벌체제 개혁에 동의했다.
재벌체제 개혁이 공상(그것도 불필요한)일 뿐이라는 점은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조상수 후보는 “재벌의 소유구조, 경영구조, 사업구조를 변화시켜야” 하는데, 자신은 우선 경영구조를 변화시키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재벌 계열사의 단위노조들이 불법경영 철폐를 임단협 요구안으로 제시하고 민주노총 지도부가 이를 사회·정치적 쟁점으로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조 후보는 공공부문에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 노동이사제를 민간 재벌기업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불법경영이 판치는 한국에서는 노동이사제가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유럽의 선례를 보면 노동이사제는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개악의 조력자 구실을 했다. 장기화하고 있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기업(서로 경쟁하는 다수 자본들)은 노동자들을 더 쥐어짜야 하기 때문이다.
김명환 후보도 노동자 경영참가가 민간 부문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용자단체에 노동 존중과 경제 민주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고 있는 삼성에게 노조 할 권리 실현을 요구해야 하고, 현대 자본에 산별교섭 참가를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김 후보는 재벌개혁과 관련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정기적으로 면담을 하며 대기업의 ‘사회적 역할’, 중소기업 육성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경영참가와 공동결정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윤해모 후보조의 유완형 사무총장 후보도 “노동자 경영참가와 공동결정제는 선진 유럽에서 20여 년 전부터 도입했고 박원순 서울시장도 도입했다”며 노동과 자본이 “서로 협심해서 함께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호동 후보도 재벌체제 개혁을 필요한 개혁 과제로 꼽았다. 노동자와 양심적 세력들이 합심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 중심의 재벌체제 청산”을 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말이다.
이 후보는 경영참가도 반대하지 않았다. 노동계가 노동이사 한 명 참가로 자족적인 평가를 하면 안 되고 경영에 최대한 실질적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법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재벌 개혁 문제와 대조적으로, 재벌 기업 노동자들의 투쟁과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다들 말을 아꼈다. 결국 기자 질의 시간에 정규직 양보론과 임금체계 개악, 정규직 노조 집행부의 비정규직 노동자 지지 회피 등의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윤해모 후보는 “임금체계를 개선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며 아예 노골적으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를 “무리한 요구”라고 비판했다.
반면 이호동 후보는 정규직 양보가 아니라 재벌 양보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이 후보는 정규직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비정규직 노동자 외면 문제에는 우회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해당 단위들과 소통을 강화해 그런 일들을 막겠다.”
대기업 노조위원장들과 연대해서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나서겠다는 조상수 후보의 답변도 회피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금속노조의 비정규직 자동차 영업사원 가입 불허 조처나, 기아차 김성락 전임 집행부의 비정규 노조 분리, 전교조 지도부의 비정규 교·강사 정규직화 지지 거부 등에 대해서는 공개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계속해서 모두 공개적 비판을 삼간 채 침묵의 카르텔을 유지한다면 아무리 뒤로 논의해 봤자 소용없을 것이다.
김명환 후보는 자신이 전교조 위원장이었다면 기간제 교사 정규직 전환 문제에 어떻게 대처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지금의 전교조 결정과는 다른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가, 나중에 사실상 주워담았다.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 등 집행부의 고민을 이해한다. 장시간 숙의하면서 대안을 마련해 보겠다.”
민주노총 개혁
선관위는 민주노총 내부 민주주의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총파업이 ‘뻥파업’이 되고 ‘결정 따로 집행 따로’인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 후보들에게 물었다.
이호동 후보는 강력한 지도·집행력을 갖추고 의결기구와 집행기구를 정상화하겠다며 민주노총 사무총국 쇄신을 강조했다. 이것이 “인적 청산을 뜻하는가?” 하는 질문에는 “그런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답변했다.
조상수 후보조는 민주노총 내부 민주주의와 관련해 팟캐스트와 조합원 백분토론 등을 이용해 조합원들과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제안했다. 또한 대의원대회에서 집단퇴장 등의 행동을 막도록 하겠다고 했다.
조 후보는 ‘뻥파업 해소 방안’으로 1만 명 이상 소산별과 지부 중앙위원회 논의를 통한 결정을 내놓았다.
그러나 결정을 집행하지 않는 지도자에 대해서는 공개적 비판과 규율 조치 부과가 있어야 한다. 가령 2015년 4·24 총파업은 전체 민주노총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결정됐는데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이경훈은 내놓고 이를 어겼다. 그때조차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생각이 앞선 나머지) 이경훈에 대한 공개적 비판을 삼갔다.
김명환 후보는 대의원대회 정상화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30일 전부터 공지와 안건에 대한 의견 수렴을 하고 사전 토론, 필요하면 안건 사전 설명회 의무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그는 한상균 집행부가 조직한 지난해 8월 정책대의원대회에 대한 아쉬움을 표명했다. 내실 있게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보대통합[정당]’ 안(案)의 부결을 아쉬워하는 자민통계의 정서를 대변하는 발언인 듯했다. 나중에도 김명환 후보는 조상수 후보의 ‘사회세력화’를 비판하며 ‘진보대통합’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상수 후보는 진보대통합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 방안의 재추진은 소모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명환 후보는 진보대통합을 “일방으로, 날짜를 박고 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단서를 달았다.
한편, 윤해모 후보는 “왜 ‘그들만의 민주노총’이 됐는지 잘 안다”며 민주노총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자신이 현대차지부장을 할 때 권역별 대의원 토론이 큰 도움이 됐다며 적어도 권역별로 모아서 대의원 간담회나 토론회를 개최해 의견을 듣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윤해모 후보는 현대차지부장 시절, 현장 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주간연속2교대 잠정합의를 추진하려 했다가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그는 지부장직도 사퇴하고 소속 조직인 민투위에서도 제명됐다.
맺음말
한반도 주변 정세에 관한 후보간 토론과 질의도 있었다. 모든 후보들이 평화협정 체결 등 평화주의적 입장을 밝혔다. 다만, 김명환 후보는 특별히 주한미군의 존재를 비판적으로 상기시켰고, 윤해모 후보와 조상수 후보는 북한 핵무기를 비판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했다.
노동조합이 한반도 불안정 문제 같은 명백하게 정치적인 이슈를 놓고도 공식적 의견을 형성해 공개적으로 내놓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에 값하는 단체행동을 하느냐는 별개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단체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이 효과적이 되려면 도대체 어떤 요구들을 둘러싸고 다른 단체들과 공동 행동을 해야 하느냐는 문제도 있다.
북한 핵무기가 트럼프의 제국주의적 공세를 막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은 개별 단체의 선전 차원에서는 제기할 만한 주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중적 평화운동이 북한 핵무기 폐기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운동의 진정한 표적을 흐리는 효과를 낼 것이다. 한반도 평화 운동은 제국주의에 저항해야 하는 것이지, 제국주의의 압박을 받는 북한에도 압박을 가하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
선전과 선동은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개별 단체가 핵무기 무용론이나 유해론을 선전할 수는 있어도 다른 단체들과 공동으로 대중 (평화)운동을 건설하고자 할 때는 당면하고 단일한 이슈에 집중하고, 투쟁의 (진정한) 대상을 향해 줌인(zoom in) 해야 한다.
현장 취재를 도와 주신 김광일 노동자연대 서울 서부2지회 회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