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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던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빛 좋은 개살구’ 방안에 분노한다

인천공항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을 가늠할 시금석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곳에서 정규직 전환 논의는 수개월째 난항을 겪고 있다. “올해 안에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약속과 달리, 인천공항 사측이 보잘것없는 안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는 협상에서 노사 간 핵심 쟁점은 직접 고용과 자회사 전환 대상의 범위와 규모, 채용 방식 등이다. 이에 따른 노동자들의 처우도 중요한 문제다.

인천공항공사 사측이 제시한 안은 비정규직 9947명 중 고작 900여 명만 직접 고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자회사로 채용하겠다는 것이다. 직접 고용된 이들은 별도 직군으로 채용해 정규직과의 차별을 유지하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그조차 자동으로 고용이 승계되는 것이 아니라 경쟁 채용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사측은 노조가 제기하는 ‘자회사 노조와 원청의 직접 교섭’ 요구도 수용하지 않고 있다.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인천공항 노동자들 ⓒ출처 공공운수노조

문재인은 지난 5월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하며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었다. 비정규직 비중이 전체 직원의 90퍼센트가량 되는 “비정규직 남용”의 대표 기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약속한 것이었기에, 노동자들의 기대는 상당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인천공항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의 한계를 보여 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인천공항 사측의 안은 정부 가이드라인에서 빗겨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기존 정규직과 차별을 두는 별도 직군, 자회사 고용을 모두 정규직 전환 방안으로 제시했다. 또 예산 부담을 이유로 재원 마련 방안은 일절 내놓지 않았고, 처우 개선은 뒷전으로 미뤄 버렸다.

물론 정부는 ‘가이드라인은 최소 기준이므로 취지에 맞게 기관별로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의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는 공공기관들의 인건비 증액과 정규직 증원을 억제하는 제도(총액인건비제, 총정원제)를 폐지하지 않고 있다. 결국 말이 좋아 “자율 협의”이지,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방해하는 핵심적인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

직접고용 최소화, 차별 온존하는 공사 측 방안

인천공항 사측이 제시한 방안은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첫째, 원청의 직접 고용을 최대한 피하려 한다.

사측은 생명·안전 관련 업무에서 일하는 이들만 직접고용 대상으로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상시·지속 업무의 정규직 전환’ 기준에서 크게 후퇴한 것인데다가, ‘생명·안전 업무’의 범위도 매우 좁혀 놨다.

사측이 직접고용 규모를 최대한 줄이려는 것은 비용 절감을 위해서다. 그러나 인천공항공사는 온전한 정규직화를 시행할 재원이 없는 게 결코 아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9649억 원이다. 이 돈의 일부만 사용해도 비정규직 노동자 전원을 직접 고용하는 데 충분하다.

둘째, 처우 개선 수준이 턱없이 부족하다. 사측은 용역 회사 운영에서 절감되는 관리비와 이윤만큼만 정규직 전환과 노동자들의 임금·복지에 쓰겠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는 만족할 만한 처우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직접 고용이 되더라도 별도 직군으로 차별을 두겠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최근 여러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공공기관의 자회사 노동자들은 열악한 임금과 낮은 처우에 내몰리기 십상이다.

2000년 우정사업본부, 2003년 철도, 2008년 도시철도에서 기존에 정규직이 하던 업무를 떼어 내 정규직을 줄이는 구조조정 방법으로 자회사가 설립됐다. 그리고 이 노동자들 대부분은 임금과 처우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고 있다.

서울시가 추진한 자회사 모델인 다산콜센터와 서울메트로환경에서도 노동자들의 처우는 별로 개선되지 않아 노동자들의 불만을 사 왔다. 최근 다산콜센터 노동자들은 임금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부분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인천공항공사 사측이 원청과의 교섭조차 보장하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임금과 처우를 개선해 나아가기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이번 대책으로 고용불안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다 해도, 결코 고용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철도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는 노동자 상당수를 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했다가 무기계약직으로 바꿨고, 우체국 시설관리단은 적자를 이유로 지속적인 인력 감축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노조의 추천으로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방안을 마련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와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가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36퍼센트에 해당하는 3600여 명을 자회사로 고용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

셋째, 인천공항공사 사측은 저임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임금체계 방안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이 연구용역을 의뢰한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의 임금체계로 직무급제를 제시한 것이다.

이는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 임금체계 신설 방안과 유사하다. 즉, 직무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동일 직무 내에서 다시 처우를 달리 하는 세분화된 지위를 부여하는 모델이다. 이에 따른 임금 수준은 내년 최저임금 수준이고, 기존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상회하지 않도록 설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정규직과의 차별을 해소하기는커녕, 차별을 유지하며 근속에 따른 임금 인상을 억제해 궁극적으로는 저임금을 유지하는 방안이다.

불만

노동자들은 시간을 질질 끌며 만족할 만한 안을 내놓지 않는 사측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 12월 14일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결의대회에는 1000여 명이 모였다.

특경대 부지회장은 말했다. “조합원들 사이에 실망이 많습니다. 사장이 쇼를 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와요. 일에 대한 사명감도 줄어드는 느낌이고요. 5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 후에도 계약 기간이 만료된 노동자들은 다시 비정규직으로 계약해야만 했습니다.”

사측의 완강함과 시간 끌기, 한국노총 소속의 정규직 노조의 노골적인 정규직 전환 반대 속에서 최근 공공운수노조와 인천공항지역지부 지도부는 부분적인 자회사 고용을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노동자들은 이에 대해서도 불만을 제기했다.

한 환경지회 노동자는 말했다. “자회사 고용안으로 기운 것을 느끼면서 조합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어요.”

한 소방대지회 노동자는 누구는 직접 고용이 되고 누구는 자회사 직원이 되는 식으로 갈리지는 것을 우려했다. “조합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고 있어 걱정입니다.”

한 토목지회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노조가 좀 더 일찌감치 투쟁을 조직했어야 해요.”

현재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핵심 쟁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노조는 정부에게 중재안을 내놓으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껏 정부가 취해 온 태도를 보면, 정부가 노동자들이 만족할 만한 중재안을 내놓을 것이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높아지는 실망과 분노를 투쟁으로 확대해 더 나은 정규직 전환을 쟁취할 힘을 키워 나가는 게 중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