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담을 허물다》:
생생하게 담은 이주민들의 삶과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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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허물다》는 경기이주공대위의 이주민 구술 생애사 프로젝트 ‘담’ 기획단이 이주민들과 인터뷰를 해 만든 책이다. 이 책에는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겪은 끔찍한 차별과 억압이 생생하게 나온다. 이윤에 혈안이 된 자본가들이 이주노동자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고용허가제의 문제점, 축산업에서 노동시간 적용 제외 규정을 두고 있는 근로기준법 63조의 폐해 등도 잘 드러난다. 국가가 자행한 끔찍한 억압도 알 수 있다.
종교적 박해로 생명의 위협을 느껴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기간에 한국으로 와 난민 신청을 한 나이지리아인에게 한국 정부는 난민 인정은커녕 감옥보다도 열악한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감금했다. “한 달, 두 달, 길어도 삼 개월 정도가 지나면 밖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난민 신청했는데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 하다가 1년, 2년, 3년, 4년이 됐어요”.
무려 5년을 갇혀 있었지만, 그의 난민 신청은 불인정됐다. 대법원에서도 패소해, 현재 난민 재신청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난민 신청한 사람만 7291명이다. 한국 정부의 난민 인정률은 4.1퍼센트로 OECD 국가 중 꼴찌다.
“북한이탈주민들이 겪는 고충에 대해 알아주면 좋겠”다는 김복주 씨의 사연은 눈물겹다. 정부는 남한 체제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이용할 뿐, 평범한 탈북자들의 삶에는 관심도 없다.
탈북민들은 다른 이주민들과 달리 처음부터 대한민국 국적을 얻는다. 그러나 이들은 곰팡이 가득한 임대 아파트에 내던져진 채 하루 하루 생계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 김복주 씨는 “10년 안에 통일이 될 줄 믿고, 남한에서 자리 잡고 통일 되면 가족들이랑 행복하게 살자 마음”먹고 2007년에 남한으로 왔다. 그러나 북한보다 훨씬 잘 사는 한국에서 지난 11년 동안 먹고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한다.
지금은 통일이 안 돼 가족들 못 만나면 어떡하나 걱정에 잠도 못 자고 있다. 그녀는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며 가족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제 자가용으로 안산에서 출발하면 평양까지 2~3시간이면 갈 거예요. 대전보다 가깝죠. 그런데 거기에 갈 수 없으니 얼마나 비극적이고 통탄할 일이에요.”
70퍼센트가 항일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재중동포(조선족) 이주 청소년인 황윤호는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 때문에 혹시 외국인이냐고 물어보면 일본 사람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 책은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난민신청자, 탈북자, 동성애자인 조선족 이주 청소년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주민들이 그저 동정해야 할 ‘불쌍하고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조직을 결성하고 저항할 수 있는 투쟁의 주체라는 점을 느끼게 한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스레이나 씨는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의 단체인 ‘크메르노동권협회’를 이끌어가고 있다. 네팔에서 온 오쟈 씨는 열성적인 이주노조 활동가가 됐다. 버마에서 온 아웅틴툰은 산업연수생 제도로 한국에서 와서 2003년 명동성당 농성에도 참여했고 ‘스탑 크랙다운’이라는 밴드도 만들었다. 지금은 이주민 방송에서 영상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연대활동을 하면서 한국인 노동자도 차별 받고 무시당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일자리를 이주노동자가 빼앗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 땅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서로 이해하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 책은 수원이주민센터를 포함해 경기이주공대위 소속 활동가들이 기획하고, 구술 인터뷰를 진행하며 만들었다. 서점에서 구입할 수는 없지만, 구글 독스(https://goo.gl/forms/CfxYgQGrU3LkA7pI3) 에서 주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