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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기숙사 화재 사고:
안전한 주거시설 보장하고 숙식비 징수 지침 철회하라

12월 15일 새벽, 부산 사상구의 한 공장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잠을 자던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는 컨테이너에서 강추위를 막으려고 전기장판 등 전열기를 과도하게 사용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보일러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고 한다.

불과 나흘 뒤, 이번에는 부산 강서구의 컨테이너 건물에서 불이나 잠을 자던 러시아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 올해 1월에는 경기도 광주 가구공장 외국인 숙소에서, 2월에는 인천의 공장 컨테이너 이주노동자 대기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12월 15일 부산의 한 공장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난 화재 ⓒ출처 부산소방안전본부

이처럼 열악한 주거환경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위협받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0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외국인근로자 권익증진 방안’을 노동부에 권고하며 “상당수 외국인근로자가 사업주의 집, 컨테이너, 비닐하우스 등에서 생활함에 따라 화재나 건강 위협,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에 노출”돼 있고, “컨테이너 기숙사는 건축법상 …… 소방관련법 적용이 배제, 화재위험 가능성 상존”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2013년 이주민방송(MNTV) 등이 조사한 ‘외국인근로자 주거환경 및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기숙사 형태를 묻는 질문에 30.2퍼센트가 컨테이너, 4.1퍼센트가 비닐하우스라고 답했다. 32.3퍼센트는 남녀화장실이 분리돼 있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의 ‘건설업 종사 외국인근로자 인권상황 실태조사’(2015년)에 실린 다음 인터뷰는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기숙사 문제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취사시설이 없어요. 샤워할 곳이 너무 부족해서 일이 끝나고 와서 땀이 범벅인데도 씻기 위해서는 한참 기다려야 해요. 아침 일찍 출근할 때도 많이 기다려야 하구요. 겨울에 사람은 많은데 온수가 너무 적게 나와서 고생을 많이 해요. 겨울에 난방이 안 돼 얼어 죽을 뻔 했어요. 4~5명이 한 방을 쓰는데 조그만 히터 하나 밖에 없어서 겨울에는 다들 히터 주위에 붙어 있어요.”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주거환경은 더욱 심각하다. ‘이주여성 농업노동자 성폭력 실태조사’(2016년)에서는 55.8퍼센트가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받았다고 응답했다. 침실에서 남녀가 분리되지 않고(10.1퍼센트), 침실이나 욕실에 잠금장치가 없으며(각각 20.8퍼센트, 22퍼센트), 고용주가 숙소에 마음대로 드나들기도(27.7퍼센트) 한다. 이 때문에 여성 농업 이주노동자들은 성희롱이나 성폭력의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2015년에는 비닐하우스 안에 가설된 샌드위치 패널에서 전기가 누전돼 벽에 몸이 닿을 때마다 감전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는 이주민 지원 단체의 상담사례도 있었다. 고용주는 이런 기숙사의 주거비용으로 노동자 1인당 30만 원을 임금에서 사전 ‘징수’했다.

이런 위험하고 열악한 시설을 기숙사로 제공하는데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데에는 법률 상의허점도 작용한다. 근로기준법의 관련 규정은 1953년에 제정된 이래 개정되지 않아 당시 기준에 머물러 있는데다 매우 추상적이다. 고용허가제법에는 아예 주거시설 관련 규정이 없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제도를 정비하고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는커녕 올해 2월부터 이주노동자의 임금에서 숙식비를 사실상 강제로 공제할 수 있는 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고용주가 숙식비 명목으로 월 통상임금에서 최대 20퍼센트까지 공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심지어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등 “임시 주거시설”을 제공하더라도 13퍼센트까지 공제할 수 있게 했다. 위험한 시설을 계속해서 기숙사로 제공해도 된다고 인정해 준 것이나 다름 없다.

ⓒ조승진

이에 이주 운동 단체들, 민주노총 등 노동·좌파 단체들은 이 지침을 폐기하고 기숙사를 무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한 이주노동자들의 임금과 한국의 사정에 어두운 이주노동자들이 집을 구하기 어려울 것을 고려하면 이는 당연하다. 지난 12월 17일 열린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이주노동자대회’에서도 ‘숙식비 지침’ 폐기는 주된 요구 중 하나였다.

그러자 정부는 12월 22일 발표한 ‘18년도 외국인력 도입·운영 계획’에 ‘농업분야 외국인노동자 근로환경 개선방안’을 포함시켰다. “비닐하우스(비닐하우스 내 스티로폼·합판 등으로 주거공간을 임시 조성한 시설 포함)를 숙소로 사용하는 사업장은 신규 외국인력 배정 중단”하고 “자율개선기간 내 숙소를 개선하지 않는 경우 외국인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허용”하는 등 부분적인 개선안이 담겼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주거환경 문제는 농업분야에 한정된 것도 아닐뿐더러 단지 비닐하우스만 아니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비닐하우스를 컨테이너로 바꾸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정부는 안전설비, 튼튼한 잠금장치, 냉난방시설, 남녀분리된 쾌적한 화장실, 개인공간 확보 등을 어떻게 보장할지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없다. 그러면서 형편없는 기숙사 제공을 명분으로 임금을 삭감할 수 있는 현 지침을 폐기하라는 요구에는 묵묵부답이다.

주거환경은 안전 및 생명과 직결돼 있다. 정부는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시설을 이주노동자들에게 제공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또한 이주노동자의 처지를 더욱 악화시킬 숙식비 징수 지침을 폐지하고 이주노동자의 숙식비는 고용주가 부담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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