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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기간제교사 노동조합의 창립을 축하하며
전교조 조합원들이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더 큰 단결로 나아갈 수 있다

1월 6일 전국 기간제교사 노동조합이 창립했다.

수모와 차별을 견뎌 온 사람들이 마침내 저항에 나서고 스스로 조직하는 과정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그럼에도 기간제교사 노조 창립이 각별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첫째, 기간제 교사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동댕이쳐져 고립감과 분노에 몸부림쳤을 텐데도, 주저앉지 않고 꿋꿋하게 투쟁해 나아가기로 한 것이다.

전국기간제교사노동조합 창립 총회를 열고 있는 박헤성 초대 위원장과 조합원들 ⓒ이미진

마치 문재인이 ‘비정규직 대통령’이라도 되는 듯한 분위기가 팽배했을 때,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서 배제됐다는 것은 ‘앞으로 죽 비정규직이어도 마땅한 집단’이라는 낙인과도 같았다. 임용시험을 치르지 않은 자들이 정규 교원 되게 해 달라는 것은 후안무치한 짓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조차 비정규직을 대폭 양산하는 것이 정부 정책이었으면서, 이제 와서 비정규직 교사의 존재가 개인 능력 탓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야말로 뻔뻔스러운 짓이다.

김초원, 이지혜

실업이 늘고 교사들마저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게 된 것은 결코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경제 위기가 질질 끌고 교육보다 이윤이 우선인 체제 하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체제의 옹호자들은 끊임없이 개개인을 탓한다. 개인들이 자신을 탓하며 자포자기하거나, 시험 같은 개인적인 해결책에 매달리게 만들고 싶어서다. 그들이 들이대는 ‘공정성’은 시장을 전제로 한 것인데, 시장은 소유와 권력 때문에 결코 공정할 수 없다.

기간제교사 노동조합의 출범은 기간제 교사들이 개인적인 굴종을 거부하고 집단으로 뭉쳐서 저항하겠다는 선언이다. 여러 어려움을 딛고 새로운 결의로 출발한 기간제 교사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되고도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순직을 인정받지 못했던 김초원, 이지혜 교사가 누구보다 기간제교사 노동조합의 출범을 기뻐하지 않을까.

그들의 억울함에 몰래 눈물 지었을 기간제 교사들, 촛불 덕택에 정권이 바뀌고도 ‘네 탓’이라는 외면에 두 번 울었을 수많은 기간제 교사들이 더 많이 조직되어 함께 투쟁하게 되기를 응원한다.

또, 기간제교사 노동조합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맞서 다른 노동자 부문들과 연대를 구축해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그럴 수 있는 잠재력은 전보다 더 커지고 있다.

몇 개월 전에만 해도,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기간제 교사를 비롯해 한줌에 불과한 듯이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고, 정규직 전환 방안도 너무 불충분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시밭길

둘째, 기간제교사 노조 창립이 각별하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서 기간제 교사들을 배제했을 때 기간제 교사들은 기존 교직원노동조합인 전교조로부터 방어받지 못했다. 전교조 지도부는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 전환을 지지하지 않음을 밝혔다.

노동자들이 사용자의 공격을 받을 때 노동조합이 방어막이 돼 주지 않으면 홀로 싸우기가 매우 힘들다. 심지어 기존 노동조합 지도부가 은근히 지원을 회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 노동자들의 요구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솔직하게 밝히고 나서면, 노동자들의 저항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 된다.

사실, 근래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적잖이 이런 경험을 해 왔다. 최근에는 금속노조 산하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런 일을 겪었다. 이 노동자들이 인소싱 반대 투쟁을 하는 동안 한국지엠 정규직 노조 집행부가 이들의 요구를 정면 거슬러 사측과 인소싱을 합의한 것이다. 인소싱은 공정을 내부화하면서 거기서 일하던 비정규직을 내쫓는 것이다.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층 어려워진 조건에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들 가운데서도 좌파라는 전교조 지도부가 비정규직 교사·강사의 정규직 전환을 지지하지 않은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전교조 지도부가 이런 입장을 취하자, 다른 많은 노동조합이나 노동단체·정당들도 기간제 교사들에게 연대 표명하기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전교조 지도부를 모욕하는 일이 될까 봐 말이다.

이런 어려운 조건 하에서도 기간제 교사들은 스스로 일어나 투쟁을 시작하고 조직화에 나선 것이다.

기간제교사의정규직화를지지하는공대위가 국가인권위에 차별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고은이

또 하나의 교원노조, 분열인가?

어떤 사람들은 기간제 교사들의 염원을 이해하면서도, 전교조와는 별도의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최선인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특히 전교조 조합원들은 내심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노동자들이 하나의 노조 안에서 단결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별개의 노조를 만드는 것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기존 노조가 특정 집단(가령 비정규직이나 이주자)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거나 그들의 요구를 받아안지 않을 때다.

어떤 사람들은 전교조 안에서 기간제 교사 위원회를 만들어 기간제 교사들을 조직하자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염원을 외면하는 조직에 누가 가입하려 하겠는가? 요구는 지지해 주지 않으면서 조합비만 내라는 말로 들리기 십상이다. 또, 기간제 교사들의 요구를 지지해 투쟁하지 않을 것이라면 조직화는 무엇 때문에 하는가? 전국 기간제 교사 조직의 힘을 빼려는 것으로나 보이기 십상이다.

또 하나의 교원노조가 만들어진 것이 분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불가피성으로 말미암아 지금은 그것이 차선이 아니라 최선이다. 그것을 통해서만 기간제 교사들이 결의를 다지고 투쟁으로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크고 단일한 교원노조를 이루면 좋겠지만 지금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전국 기간제교사 노동조합의 잘못은 아니다. 만약 전교조가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화를 지지하면서 그들과 함께 투쟁했다면, 전교조는 기간제 교사들을 조합원으로 대거 충원하면서 더 크고 활력 있는 노동조합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친 것은 전교조다.(물론 언젠가 기회가 다시 올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전기련)가 “모든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라는 ‘과도한’ 요구를 제출해 상황을 꼬이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책임 전가다. 전교조 지도부가 비정규직 교·강사를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시키라고 정부에 요구하면 되는, 복잡할 것도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전교조 지도부가 정규직 전환 반대 입장을 처음 내부 문자로 공지했던 지난해 6월,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 방안과 범위는 쟁점도 되지 않았다.

전교조 조합원들은 설사 단일한 교원노조를 이루지 못한 것이 아쉽더라도 전국 기간제교사 노동조합을 확고하게 지지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서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 전환과 차별 폐지를 지지하는 한편, 전교조 자체의 요구들을 위해서도 투쟁해야 한다. 두 과제는 서로 연결돼 있다. 같은 계급의 다른 부분에 연대하는 것은 자기 부분의 건강성과도 연관돼 있다.

이미 전교조의 일부 선진적 조합원들은 전교조의 공식 입장과 관계없이 기간제 교사들을 물심양면 지지해 왔다. 서로 다른 노조 속에 있더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교사들의 연대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부르주아적 ‘정의’가 아니라 계급투쟁이 노동자들의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