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은행 채용 비리 수사 개시:
노조의 김정태(KEB)와 윤종규(KB) 사퇴 요구는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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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2월 5일 검찰에 시중은행 채용 비리 수사를 의뢰했다. 금감원은 1월 31일에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등 5개 은행의 채용 비리 22건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그중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의 비리가 심각하다. 두 은행이 채용 과정에서 ‘VIP 리스트’(국민은행 20명, 하나은행 55명)를 활용했다는 의혹까지 폭로됐다. 이에 따르면, ‘VIP 리스트’에 포함된 채용 지원자는 서류 전형에서 무조건 통과한 뒤에 필기 전형만 어찌어찌 통과하면 최종 단계에서는 면접 점수를 고쳐서라도 합격됐다.
이미 2016년에 우리은행의 채용 비리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공개해 수사 끝에 당시 은행장이 물러나는 일이 있었는데도, 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에 고발된 은행들은 특정 자원자를 단지 특혜 채용한 게 아니다. 사용자들의 필요나 인맥에 따라 특정 대학 출신이 아닌 지원자들을 부당하게 탈락시켰다. 이는 노동계급 청년들의 취업 기회를 빼앗고, 절망과 피해를 준 불의한 처사다. 고약하고 악질적이다.
이만한 채용 비리가 최고 경영자의 지시나 묵인 없이 벌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황상, 은행 내부 임원의 관계자들만이 아니라 정관계 고위층의 특혜 채용 비리도 의심해 볼 만하다.
KEB하나은행의 점수 조작 사례에는 박근혜 정부에서 최경환 등 일부 실세 인사들의 출신 학교인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출신자도 포함돼 있다. 하나은행은 이미 최순실의 해외 돈 세탁 과정에도 연루돼 있음이 드러난 바 있다. 특히,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노조 탄압을 위한 부당노동행위 등을 지시한 의혹도 받고 있다.
노조 탄압과 부패
KEB하나은행은 13건이 적발돼 전체 고발 건의 절반이 넘는다. 특히, “특정 대학 출신 지원자 7명의 임원 면접 점수를 올리고 수도권 등 다른 대학 출신 지원자 7명의 점수를 내리는 방법으로 합격과 불합격을 뒤바꾸기까지 했다.”(하나금융지주 적폐청산 공동투쟁본부)
하나은행 경영진은 은행이 입점한 대학에 특혜를 주는 내부 규정을 따랐다고 해명했다. 이런 규정 자체가 부당한데, 그나마도 거짓 해명이다.
“입점 대학인 명지대 출신 지원자는 면접 점수 조정 전에는 합격이었는데 면접 점수를 하향 조정해 불합격 처리하고 입점 대학도 아닌 서울대와 연세대 출신 지원자는 면접 점수를 임의로 상향 조정해 불합격을 합격으로 만들었다.”(하나금융지주 적폐청산 공동투쟁본부)
한국노총 금융노조 KEB하나은행지부와 하나금융투자지부,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 하나외환카드지부가 함께 구성한 하나금융지주 적폐청산 공동투쟁본부는 하나금융지주 회장인 김정태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공투본은 지난해 10월에 구성돼 ▲최순실 부역 적폐 ▲특혜 인사 적폐 ▲노조 탄압 적폐 ▲언론 통제 적폐 ▲황제 경영 적폐 청산을 요구해 왔다.
“경악을 금치 못할 채용 비리의 최종 책임자는 당연히 인사의 최종 결정자인 함영주 행장과 하나금융을 사유화하여 계열사의 인사에 관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한 김정태 회장이다.”(2.2 기자회견)
KB국민은행도 최고 경영자가 연루됐다. KB금융지주 회장 윤종규의 종손녀가 점수 조작 방식으로 합격했다는 것이 금감원의 적발 내용이다. KEB하나은행과 마찬가지로 KB국민은행도 은행이나 지주회사 내 계열사 임원 등 내부 인사들의 자녀나 지인들이 혜택을 입었다.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도 지난해 노조 위원장 선거 부당 개입 행위 등을 자행한 윤종규 회장 퇴진 투쟁을 벌이고 있다. 채용 비리가 확정된 뒤에는 윤종규 출근 저지 투쟁도 벌이고 있다.
KB국민은행지부는 폐쇄적인 경영진 선출 구조 자체가 부패 고리의 한 축이라고 지적했다.
“‘회장이 사외이사를 뽑고, 사외이사가 다시 회장을 뽑는’ 회장 선임 과정으로 문제가 된 두 은행[에서 채용 비리가 발생했다.] … 노동조합에서 지난해부터 줄기차게 지적해 온 사외이사 문제가 단순히 회장 선임 과정의 문제를 넘어, 은행과 KB금융그룹 전반에 걸친 비리와 부패의 문제일 수 있음을 드러내는 단면[이다.]”(1.31 성명)
노동자들과 노조를 무시한 은행 경영자들이 특권형 부패 고리에 한 축이었던 것이다. 결국 해당 은행들의 노조들이 그동안 최고 경영자를 문제라고 지목해 온 것이 옳았음이 입증됐다.(KEB하나은행은 은행 경영진에 비판적인 보도를 막으려고 돈까지 뿌린 정황이 폭로된 바 있다.)
은행 안에서는 노동자들을, 은행 밖에서는 취업에 목마른 청년과 서민들을 울리고 모욕한 것이다. 일각에서 정권 차원에서 벌이는 은행 CEO 교체 목적의 비리 적발이라고 은근히 물타기를 하는 것이 가당찮은 이유다. 그런 목적이 있든 없든, 계급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금융노조와 해당 은행 노조들은 최고 경영자의 사퇴와 엄중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이 정당한 요구는 마땅히 실현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