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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자들의 투쟁과 삶 세종호텔노조 박춘자 위원장:
“투쟁을 통해 편견을 깨고 단결을 배웠습니다”

다음은 노동자연대가 3월 8일 주최한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집회] 차별과 착취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연설한 내용을 녹취한 것이다.

세종호텔노조 박춘자 위원장 ⓒ이미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세종호텔노조 위원장 박춘자, 투쟁으로 인사 드리겠습니다. 투쟁!

제가 짧게 발언하기로 유명한데 10분이나 발언해야 된다고 해서 굉장히 떨고 있습니다. 저는 현장 노동자였고, 대의원으로 [노조 활동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이렇게 위원장까지 될 거라고는 상상을 안 해봤습니다.

저는 오늘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중에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지만 세종호텔의 우리 여성 조합원들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제가 언니, 동생, 동료, 동지라고 부르는 우리 세종호텔의 여성 조합원들이 계십니다. 임금이 삭감 당하고, 일하던 곳에서 쫓겨 나서 로비를 청소해도 여전히 싸우고 있는 우리 조합원들이 투쟁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꿔갔는지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호텔 업계는 1988년도 올림픽 전후로 굉장히 호황을 누렸습니다. 그때는 많은 여성 노동자들, 특히 나이든 여성 노동자들이 재취업 수단으로 호텔에 많이 취직했습니다. 그런데 객실 청소나 식당의 설거지를 하시는 분들은 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원이었습니다. 지금의 여성 부위원장님이 15년쯤 되셨고 제가 한 5년쯤 되었을 때 팀장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왜 도대체 우리는 다른 남성 직원들처럼 승진이 없어요?”

“왜 우리는 저 선배님이 30년이 되고 내일모레 정년을 하시는데 캡틴조차 달 수가 없습니까?”

그렇게 우리는 싸웠고 당시 노동조합에도 얘기를 했습니다. “노조가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고요. 그래서 한 명을 캡틴으로 승진시켰습니다. 그 분은 캡틴으로 정년을 마쳤습니다.

또, 제 파트인 객실 쪽에서 분실 사고가 일어나면 저희가 [분실액을] 무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손님이 잃어버려도 메이드가 책임지고 70만 원이건, 100만 원이건 물어내야 했습니다. 일하는 게 두렵고 사무실이나 회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부서는 그런 게 없더라고요. 저희한테만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여성 부위원장님이 “절대 낼 수 없다” 하고 항의했고, 그걸 시작으로 그 다음부터는 누구도 우리한테 그런 일을 강제하지 못합니다.

“소수여서 쉽지 않지만 당당하다”

그렇게 싸움은 시작됐고 저도 같은 길을 가게 됐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같이 싸우고 있습니다. [2012년] 파업을 거치고 여러 투쟁을 함께하면서 굉장히 내공이 쌓여서 이제는 모두가 싸움을 잘합니다.

저희가 파업이라는 걸 처음 했을 때 우리 조합원들이 경험이 없어서 굉장히 걱정했어요. 같이 일하는 구사대가 몰려와서 저희 조합원들을 깼을 때 다쳐서 병원에 간 분도 있었어요. ‘내일 저 분들이 농성장에 다 와 주실까?’ 하고 걱정했지만 다 오셨어요. 식구들과 남편들이 말렸는데, “내 일이야! 내 싸움이야!” 하면서 한 명도 빠짐없이 농성장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나오셨던 분들이 정규직이 됐습니다. 2013년에 호텔 업계가 다 비정규직을 늘릴 때 저희 세종노조는 정규직화를 쟁취해냈습니다. 그 분들이 여전히 같이 싸우고 계십니다. (청중 박수)

많은 남성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지만 여성 노동자들이 상급자들한테 따지거나 대드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 [상급자가] 선배들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파업이라는 큰 투쟁이 저희들을 강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파업이 끝나고] 복귀했을 때 팀장들이 모여서 휴대폰을 압수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여서 의논했습니다. 손님한테 매너가 아니라면서 우리 휴대폰은 빼앗아 가면서 상급자들인 남성 직원들한테는 빼앗아 가지 않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국가인권위에 갈 거고, 가만 있지 않겠다고 단체적으로 협박했죠, 이렇게 [단체로] 대항해서 결국 휴대폰을 돌려 받았습니다. 싸우니까 되더라고요. 그런 투쟁들이 하나씩 저희 조합원들을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회사에서 점점 저희를 두려워하더라고요.

세종호텔은 저희들을 등급으로 나눠요. A, B, C, D, S로요. 저희 조합원들은 거의 C, D, S입니다. 그렇게 평가를 내리고 차별적으로 대합니다. 임금도 삭감하고요. 물론 소수여서 쉽지 않지만 우리는 당당합니다. 그리고 [그런 조합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투쟁이 가져 온 변화들

또, 투쟁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매주 목요일 세종호텔 투쟁 집회가 열립니다. 물론 집에서 아이와 남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전화가 많이 왔어요. 남편이 전화 오고, 애한테 전화 오고. 그래서 막 고민들을 하더라고요.

허 조합원 같은 경우는 아이가 어려서 집회 중에도 계속 전화가 와요. 이 조합원님은 [노조의] 집회나 선전전을 나오기 위해서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점심, 저녁까지 준비해 놓습니다. 물론 다른 조합원들도 똑같습니다. 특별한 사항이 없으면 모든 조합원은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원칙인데, 조합원들이 이렇게 노력하면서 투쟁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투쟁이 목요일 날 전화 오지 않게 만듭니다. 허 조합원님은 신랑에게 “목요일은 볼링 치지 마. 나의 싸움이고 나의 투쟁인데 당연히 나를 도와 줘야 되는 게 맞지 않나? 목요일은 애들 보고 밥을 먹여라. 나는 뒤풀이까지 하고 늦게 들어 갈 거야” 했습니다. 이제는 남편의 전화가 안 옵니다. (청중 웃음과 박수) 또 한 조합원님은 퇴사하고도 별일 없으면 옆 호텔에서 알바 하다가도 뛰어와서 집회에 참가하고, 투쟁 기금을 주시고 합니다. 이 분들은 저희 싸움할 때 정규직으로 전환되셨던 분인데 끝까지 저희와 함께 싸우고 계십니다. 내년이 정년인 언니 조합원이 있는데, 퇴근 시간이 조금 늦어지면 집에서 예민하게 반응하시지만 목요일에는 전화 오지 않습니다. [언젠가 목요일에 전화가 오자] 언니가 굉장히 화를 내시더라고요. “투쟁 중이야!” 하고요. (청중 웃음) 이렇게 말씀하시니 전화가 안 오더라고요.

이런 소소한 것들이 저는 결코 작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싸움들을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만들어가는 우리 세종노조의 여성 조합원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지금은 우리를 조금 멀리서 바라보고 [회사를] 두려워하고 있는 다른 동료들한테 힘을 줄 것이고 언젠가 같이 할 날이 있을 거라고 서로 믿으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는 우리 세종호텔 여성 조합원들을 자랑하고 싶어요. 특히 오늘 [세종호텔 목요] 집회를 하면서 느낀 건데, 시간이 지나서 많이 아프고 힘들 텐데도 늘 밝은 웃음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 조합원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특유의 여성들의 인내심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제가 그런 조합원들의 위원장이 된 것에 너무 오늘 감사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저희 남성 조합원들도 이 투쟁을 통해서 많이 바뀌더라고요. 저희 부위원장님은 명절 음식을 하러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한다고 회의를 빨리 끝내자고 하실 정도로 많이 바뀌셨고요. 그러니까 이 투쟁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우리들의 편견을 깨고 우리를 얼마나 단결시키는지 저는 많이 배웠고, 또 배워 나갈 생각입니다. 저는 저희가 비록 작지만 오늘 이 주제[‘차별과 착취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 걸맞게 싸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많이 힘든 길을 가고 있지만 인내심을 갖고 이 싸움을 끝까지 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싸움 보고 다른 노동자들이 용기 얻길”

아직 시간이 남았네요. 한 가지 더 얘기하면 예전에는 회사가 병가나 육아 휴직을 나가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불이익을 줬습니다. 누군가는 [이 문제에 대해] 치고 나가 뚫어야 됐죠. 그런 일들을 세종노조가 하고 있습니다.

조합원이셨던 한 선배님은 어깨 인대가 끊어졌는데 한 번도 병가를 낼 생각을 못하신 거예요. 회사에서 병가 후 복귀하려면 완치 진단서를 내야 한다는 소리를 했거든요.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요? 저도 처음에 그런 줄 알고 아파도 참고 약 먹고 일했거든요. 그 선배님은 완치해서 복귀한 뒤에도 팀장은 ‘나이도 많은데 그냥 퇴직하지’라는 둥 압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세종노조가 같이 투쟁하면서 [병가와 육아 휴직이] 우리의 당연한 권리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병가를 나가고 당당하게 “나 이제는 나아서 복귀할 만해. 완치 판정서 따위는 없어” 하고 외치고 [회사가 어쩔 수 없이] 받아주고 나니, 그게 선례가 돼서 이제는 육아 휴직과 병가를 당당하게 나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이 꼼수를 부리고 협박해서 아직도 못 나가게 하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일이 있을 때는 세종노조와 상의하십시오. 저희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세종호텔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이고 같이 싸우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걸 상담해 줄 수 있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또 저희가 [채워야 할] 업무량이 있어요. 저희는 그동안 이것을 한 번도 어겨 본 적이 없습니다. 7시가 됐건, 8시가 됐건 다 하고 갔어요. 그런데 저희 조합원들이 이걸 거부하고 [제시간에 퇴근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7등급이 돼서 임금이 삭감되더라도 [제시간 퇴근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의 싸움을 보고 다른 노동자들이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구호 하나 하고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단결된 노동자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